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반세기 넘게 일본 ‘자니즈 사무소’란 최대 연예 기획사를 이끌면서 'J팝의 역사'로 불렸던 고(故) 자니 기타가와(본명 기타가와 히로무·1931~2019). 스스로를 드러내는 걸 극도로 꺼려 사진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기네스북에 오를 당시 찍힌 사진이 대중에게 공개된 유일한 사진으로 꼽힌다.

이달 일본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자니즈 사태’에 대해 조선일보 지면(紙面)에서 수차례 소개해 드렸습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6편은 한정적인 지면에 담을 수 없었던 사태의 면면과 일본인들의 자성(自省), 그리고 현지에서 등장한 ‘자니즈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K팝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낱낱이 다뤄보고자 합니다.

기타가와 히로무(喜多川擴)는 1931년 10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한 일본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일본에 돌아왔고, 도쿄 요요기의 한 소년 야구단 코치로 일하게 됐습니다.

1961년 개봉한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 영화 ‘웨스트사이드스토리' 포스터. 자니 기타가와는 이 영화를 보고 연예기획사를 세우겠단 꿈을 가지게 됐다.

그러던 기타가와가 평소처럼 야구장에 향한 어느 날, 갑작스런 비가 내려 연습이 취소됩니다. 이에 그는 직접 지도하던 중학생 선수 4명을 데리고 즉흥적으로 미 브로드웨이 뮤지컬 영화 ‘웨스트사이드스토리(1961년 개봉)’를 보러 가게 되죠. 이때 기타가와는 영화 속 미국 남자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연기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타가와가 영화관에 동행했던 소년 4명과 함께 이듬해인 1962년 설립한 것이 연예기획사 ‘자니즈 사무소’입니다. 자니즈는 기타가와가 미국에서 사용하던 영어 이름 ‘자니(Johnny)’에서 차용됐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가명인 ‘자니 기타가와’로 부르게 됐죠. 자니즈 사무소가 최초로 배출한 야구단 멤버 4명으로 짜인 남자 아이돌 그룹 자니즈(일본에선 통칭 ‘초대 자니즈’라고 부릅니다)는 1967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다 해체했습니다.

일본 자니즈 사무소 소속 남성 아이돌 그룹 포리브스(FOUR LEAVES·1968년 데뷔)
자니즈 사무소 소속 남성 아이돌 그룹 소년대(少年隊·1985년 데뷔)

이후 자니즈 사무소는 포리브스(FOUR LEAVES·1968년 데뷔), 소년대(少年隊·1985), 히카루겐지(光GENJI·1987), 스마프(SMAP·1991), 브이식스(V6­·1995), 아라시(嵐·1999), 킹앤프린스(King&Prince·2018) 등 배출하는 아이돌마다 일본 전역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흥행을 거두며 최고의 연예기획사로 성장했습니다. 일본 전역에서 언제든 TV를 틀면 무슨 프로그램을 보아도 자니즈 소속 연예인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가 돌 만큼이었습니다.

그렇게 ‘꽃길’만 걷는 것 같던 자니즈 사무소에 1999년 10월 첫 번째 위기가 닥쳐옵니다. 폭로 보도로 유명한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이 14주에 걸친 기획 기사로 “기타가와가 연습생들을 상대로 성 착취를 저질렀다”며 고발한 것인데요. 자니즈는 이때 영리한 방법을 씁니다. 슈칸분슌에 역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죠. 재판은 대법원까지 가는 장기전으로 흘렀고, 일본 국민들 인식에서 자연스레 잊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2003년 7월 도쿄 재판부가 기타가와의 연습생 성 학대 논란을 정식 인정했지만 이슈가 되진 못했습니다.

애당초 기타가와의 성 착취 논란이 처음 제기됐던 건 자니즈 창립 직후였던 1964년입니다. 당시 기타가와는 한 연예인 양성 학원에서 춤과 노래를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학원에서 “기타가와가 남자 연습생 15명을 성 학대했다”며 그를 해고했죠. 일부 주간지가 이러한 사실을 보도했지만, 당시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일본 사회 분위기 탓에 주목을 받진 못했습니다.

일본 자니즈 사무소의 초대 데뷔 멤버 나카타니 료(中谷良·80)가 1989년 기타가와의 성 착취를 고발하며 펴낸 책 ‘자니즈의 역습(ジャニーズの逆襲)’. 최근 자니즈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판매량이 오르고 있다.

이후 기타가와의 성 착취를 고발하며 세상에 나온 책만 최소 9권입니다. 초대 자니즈 멤버인 나카타니 료(中谷良·80)가 1989년 펴낸 ‘자니즈의 역습(ジャニーズの逆襲)’, 포리브스 리더였던 기타 고우지(北公次·1949~2012)가 같은 해 출판한 ‘8명째 히카루 겐지(8人目の光GENJI) 등 대부분이 자니즈 출신 연예인들이 쓴 것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논란은 움직일수록 더 깊게 파고드는 쥐덫과 같이, 제기될수록 주요 언론과 연예계에서 다뤄지지 않아 일본 사회에 깊숙이 은둔하고 맙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자니즈 사무소가 이면(裏面)에선 언론·연예·정치계 거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뒷거래’를 나누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였죠.

그렇게 자니즈는 일본 TV 음악과 예능 방송들을 장악하며 승승장구했고, 기타가와는 2019년 88세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지난 3월 7일 방영한 다큐멘터리 ‘포식자: J팝의 숨겨진 스캔들(Predator: The Secret Scandal of J-Pop)’

그런데 2023년 들어 판국이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시작은 지난 3월 7일 영국 공영방송인 BBC가 방영한 ‘포식자: J팝의 숨겨진 스캔들(Predator: The Secret Scandal of J-Pop)’이란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멘터리엔 자니즈 연습생 출신 남성 세 명이 익명으로 출연합니다. 이들은 자니즈에 소속됐던 1990년대 후반쯤, ‘합숙소’라고 불리던 기타가와의 도쿄 롯폰기 고급 자택에 불려갔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고 했죠. 침실에 불려가 기타가와에게 마사지를 하면 그의 손이 자신의 성기를 스쳤고, 13세 소년이던 자신을 침대에 눕혀 옷을 벗기고 강제 구강성교를 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당시 수많은 소년이 ‘합숙소’에 머물면서 피해를 봤지만 “지금 참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면서 외부엔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니즈 출신 가수 오카모토 가우안(岡本カウアン·27)이 지난 4월 12일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니즈에 소속됐던 때(2012~2016년) 기타가와로부터 15~20회가량의 성적 피해를 당했다”고 고백하는 모습. 외신 기자들만 모아 불러 이처럼 폭로했다./AP 연합뉴스

그동안 기타가와의 연습생 성 착취 의혹이 주간지 보도, 서적 등으로 제기된 적은 있지만 피해 당사자가 직접 TV에 출연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자니즈에 ‘직격탄’이 날라옵니다. 자니즈 출신 가수 오카모토 가우안(岡本カウアン·27)이 지난 4월 12일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니즈에 소속됐던 때(2012~2016년) 기타가와로부터 15~20회가량의 성적 피해를 당했다”고 고백한 것인데요. 이때 오카모토는 국내 언론에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외신 기자들만 모아 불러 이처럼 폭로했습니다.

자니즈란 ‘절대 권력’과 맞서 싸우면서도 익명이나 책 뒤에 숨어야 했던 다른 피해자들과 달리, 직접 얼굴과 신분을 드러내고 피해 사실을 고발한 오카모토의 ‘용기’는 문제를 쉬쉬하던 현지 언론들마저 마냥 침묵하기 어려운 도화선이 됐습니다. 슈칸분슌 선정 ‘한국 유일의 J팝 전문가’ 황선업 음악평론가는 기자와 통화에서 “기타가와의 성범죄는 암암리에 떠돌던 이야기였는데, 공개 고발이 없어 소문처럼 잊혀 왔다”면서 “그러나 해외에서 시작한 논란에 국내 공개 고발자까지 등장하니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퍼지기 시작했다”고 했죠.

자니 기타가와의 도쿄 롯폰기 자택이자, 그가 자니즈 사무소 소속 연습생들을 불러 성 착취를 일삼았다는 ‘합숙소’ 도면.

그렇게 BBC 다큐에 이어 오카모토 외신 기자회견으로 사건이 전 세계에 공론화되자, 유엔 인권이사회까지 나서 지난 7월 공식 조사단을 도쿄에 파견했습니다. 논란 이후 사과나 진상조사 등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았던 자니즈 측도 압박을 느껴 다큐 방영 2개월여 만인 지난 5월 말에야 자체 조사단을 꾸렸죠.

결국 자니즈는 지난달 30일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성 착취가 반복됐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유엔 인권위 조사단도 지난달 조사 결과 발표에서 “성적 착취에 휘말린 자니즈 연예인이 수백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자니즈 사무소 후지시마 주리 게이코 사장이 지난 7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는 모습. 이날 후지시마는 자신의 삼촌이자 회사 창업자인 고(故) 자니 기타가와가 아이돌 연습생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인정하고 사임한다고 밝혔다./AP 연합뉴스

그렇게 지난 7일 오후 2시, 자니즈가 기타가와의 외조카이자 사장이었던 후지시마 주리 게이코(藤島ジュリー景子·57)를 필두로 연 공식 사과 기자회견에는 300명의 보도진과 100대 이상의 카메라가 들어섰습니다. 공영방송 NHK와 테레비아사히, 닛폰테레비 등 현지 주요 방송들은 일제히 기존 편성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자니즈 사무소의 공식 기자회견장을 화면에 내보냈죠. 지금까지 자니즈 사태가 쉬쉬됐던 것을 생각하면 상반되는 모습이었습니다.

회견에 참석한 후지시마는 삼촌 기타가와의 성 가해 사실을 인정하면서 “모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장직에서도 내려왔고, 자신이 100% 보유한 자니즈 주식 지분에 대해 “앞으로 새로운 체제로 협의하고자 한다”며 일부 포기할 수 있단 의향까지 내비쳤죠.

“기타가와의 성 가해 사실을 정식 인정하는 것이냐” “그동안 묵인됐던 자니즈의 언론 외압(外壓)도 없앨 것인가” “현재 활동 중인 연예인 중 가담자나 피해자는 없는가”라는 등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 끝에 회견은 4시간 12분이 지나서야 종료될 수 있었습니다.

일본 자니즈 사무소 소속 아이돌 그룹 스마프 출신 배우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가 맥도날드 광고에 출연한 모습. 맥도날드 일본 지사는 최근 기무라를 포함한 자니즈 연예인들과 광고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사태는 일본 정부와 재계에까지 파장을 미치면서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선 자니즈가 사실상 ‘장악’하던 현지 기업들 광고에서 소속 연예인들이 속속 퇴출당하고 있는데요. 지난 21일 일본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자니즈 연예인을 광고에 기용하던 상장사 65곳 중 17곳이 방영 중인 광고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 기용하는 연예인과의 계약이 끝나면 갱신하지 않겠다고 밝힌 곳은 15사였죠. 절반이 ‘탈(脫)자니즈’를 택한 겁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2일 남성 피해자 전용 성범죄 상담 창구까지 개설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기타가와의 성 착취 증언이 쏟아졌음에도 오랫동안 은폐된 이유는 ‘동성 간 성범죄’에 대한 일본 사회의 문제의식이 희미한 탓이라는 지적 때문이었죠.

자니즈 사무소 소속 남성 아이돌 그룹 아라시로 데뷔한 일본 가수 겸 배우 마츠모토 준. 자니스 사태가 터진 이후인 지난 11일 마츠모토가 18년 동안 교제한 연인 이노우에 마오와 내년 초 결혼한다는 보도가 일본 언론 사이에 쏟아졌다. 자니즈 사태로 우려하는 팬들의 마음을 달래고, 미뤄왔던 결혼을 결심할 적기로 판단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니즈를 사랑하던 일본인들도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후지뉴스네트워크(FNN)가 지난 16~17일 일본인 101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자니즈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답한 비율은 과반, 56.3%였습니다. 기타가와의 성착취 피해자가 1000명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지난 7일 자니즈는 창업주 이름을 딴 현재의 사명(社名)을 유지하겠단 방침을 밝혔었습니다. “성착취범 이름을 당당하게 사용하려는 것이냐”는 비판 여론이 조성됐고, 결국 19일 “사명 변경과 구체적인 피해 보상 방책 등을 모든 각도에서 재논의해 내달 2일 진척을 보고하겠다”고 방침을 굽혔죠.

야후재팬에서 후지시마의 뒤를 이어 자니즈 사장직에 오른 소년대 출신 히가시야마 노리유키(東山紀之·57)의 행보를 기대하느냐는 질문엔 83%가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는데요. 이는 히가시야마 본인도 기타가와의 연습생 성착취에 가담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입니다.

자니스 사무소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창업주에 의한 과거 연습생 등에 대한 성착취 사실을 인정하는 모습. 후지시마 주리 게이코(오른쪽) 전 사장 옆으로 신임 사장직에 오른 소년대 히가시야마 노리유키가 서 있다./연합뉴스

2005년 출간된 ‘스마프에게, 그리고 모든 자니즈 탤런트에게(SMAPへ そしてすべてのジャニーズタレントへ)’라는 고발 서적에 그의 성 착취를 폭로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는데요. 당시 책을 쓴 피해자는 “히가시(히가시야마)는 남의 팬티를 벗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여러 차례 내 뒤에서 팬티를 끌어내렸다. 바지를 벗고 나에게 ‘이리 와’라고 명령하면서 내 손을 끌고 쟈니(기타가와)가 있는 방으로 끌고 갔다. 그 방에선 쟈니가 기다리고 있었고, 나를 보고 ‘꺄악’이라면서 소녀처럼 웃었다. (기타가와는) 몇 번이나 손을 내밀었고 내 성기를 잡았다. 히가시는 즐겁게 바라보며 배를 움켜쥐면서 웃었다”고 적었죠.

어느 날은 히가시야마가 연습생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 접시에 자신의 성기를 올리곤 “내 소시지를 먹어라!”라고 명령하기도 했다는 내용까지 이 책에는 쓰였습니다. 이 밖에도 입에 담기도 어려운 성착취 고발들이 담겨 있었는데요. 7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사실 여부를 묻자, 히가시야마는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다”고 답변을 흐려 논란을 키웠습니다.

지난해 12월 31일 저녁 방영된 일본 공영방송 NHK의 연말 가요 프로그램 '홍백가합전' 포스터/NHK

이제 자니즈 사무소는 기업 광고에서뿐 아니라 사실상 ‘독점’하던 일본 음악 프로그램들에서도 퇴출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지 연예·스포츠 매체 스포츠호치는 지난 22일 NHK 관계자를 인용해 “창업주 자니 기타가와의 연습생 성가해 문제로 자니즈 연예인들이 기업 광고에서 퇴출되는 움직임이 거세다.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자니즈 가수들도 예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는데요.

NHK 연말 가요 프로그램인 홍백가합전은 공영방송 위기론이 대두되는 요즘에도 30%대 시청률을 유지하는 등 일본인들의 연말 연휴를 책임지는 독보적인 입지의 방송으로 꼽힙니다. 당해 일본 가요계를 이끈 40여 팀의 가수들이 홍팀·백팀으로 나뉘어 공연을 펼치고, 시청자 투표로 승패를 가리는 방식입니다.

자니즈 사무소 소속 아이돌 그룹 스마프 출신 나카이 마사히로(中居正広)

1962년 창립 이후 일본 연예계의 ‘최강자’로 군림해 온 자니즈 사무소도 홍백가합전에 매년 최소 5~6팀씩의 가수들을 출연시켜 왔습니다. 2015, 2020년엔 백팀 3분의 1을 차지하는 7팀이 자니즈 소속 가수였죠. 가수뿐 아닌 사회 역할도 자니즈 아이돌 스마프 출신 나카이 마사히로가 6차례나 맡았고, 2010년부턴 마찬가지로 자니즈 소속인 아라시 멤버들이 5년 연속 차지하는 등 독점했습니다.

하지만 창업주 성착취 사태로 이미지가 폭락한 자니즈 소속 가수들이 홍백가합전 등 일본 대표 음악 방송에서 쫓겨나고 있는 것이죠. 홍백가합전을 주최하는 NHK는 지난 16일 성명에서 “소속사의 인권 존중 자세 등도 고려해 출연자 기용을 검토하겠다”며 자니즈를 직격했습니다. 지난 주말 발표된 일본 TBS 간판 음악 방송 ‘CDTV 라이브! 라이브!’의 100회 기념 방송(10월 9일 방영) 1차 출연자 리스트에서도 자니즈 소속 가수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일본 연말 음악 프로그램으로 매년 10팀 이상의 자니즈 가수들이 섭외돼 온 FNS가요제(후지테레비), 베스트아티스트(니혼테레비) 역시 자니즈 가수의 출연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고 히가시스포웹은 전했습니다. 다른 매체 닛칸스포츠에 따르면, 자니즈 사무소가 매년 연말연시에 자체적으로 주최하는 콘서트 ‘자니즈 카운트다운 라이브’도 올해 개최 자체가 사상 처음으로 보류되고 있죠.

K팝 아이돌 그룹 르세라핌의 단체 사진. 멤버 중 사쿠라와 카즈하(왼쪽에서 둘째, 셋째)가 일본 출신이다./뉴시스

이 가운데 스포츠호치는 “최근 세계 대중음악 트렌드를 주도하는 K팝 아티스트들이 (자니즈 가수들의 공백을 메울 것으로) 대두하고 있다”며 “자니즈 사태와 K팝 한류 붐으로 일본 연말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 스마트플래시도 “자니즈 가수들의 공백은 트와이스·아이브·르세라핌 등 K팝 아이돌 그룹이 메울 가능성이 크다”고 했는데요.

올 연말 일본 가요 프로그램에서 자니즈의 공백을 K팝 아이돌 가수들이 메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 것입니다. 일본 음악 방송에 미치는 K팝 가수들의 영향력은 이미 증명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1일 홍백가합전엔 트와이스·르세라핌·아이브 등 K팝 아이돌 그룹들이 대거 참여했고, 이들의 공연 하이라이트 영상은 유튜브에서 다른 일본 가수들보다 압도적으로 조회수가 높았죠.

K팝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중 일본 출신인 사나, 모모, 미나(왼쪽부터)

스마트플래시는 “엔카(일본 트로트)가 자니즈 공백을 메울 가능성도 있지만 젊은 층을 포섭해야 하는 음악 방송 특성상 K팝 가수를 섭외하려는 방송국들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정말 자니즈 사태가 K팝이 일본에서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이 밖에도 자니즈 사태 이후 한 현지 언론이 쏟아낸 자성의 목소리를 감상해 보시죠.

일본 언론 현대비지니스가 지난 23일 보도한 기사. "자니즈 문제에서 드러난 일본 사회의 불쾌한 풍조와 진보주의자들의 결정적 문제"라는 제목.

“일본 사회는 큰 권력과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뒤에서 나쁜 짓을 하더라도 다같이 못 본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회를 계속 지속해야 하는가. 많은 이들이 일본을 ‘근대적 민주주의 국가’라고 평가하지만, 실제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뒤에서 성적으로 부도덕한 짓을 저질러도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는 비민주적 나라가 아닌가.”…”일본인들은 ‘눈치 보기’에 뛰어난 대신, 일관성 있는 원칙은 결여돼 있다. 이는 권력자들에게 매우 편한 환경이다. 결국 자니즈 사태를 부상시킨 것도 일본 내부에서의 폭로가 아닌 타국에서 온 외압이었다. 이를 뒤집으려면 국민 전체가 좀 더 기본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원칙을 겸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전근대적으로 정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지난 23일 현대비지니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9월 27일 여섯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최근 불거진 자니 기타가와의 생전 연습생 성착취 사태 내막과 자니즈 사무소가 몰락하는 양상을 다뤄보았습니다. 자니즈 사태는 아직 일본에서 ‘현재 진행형’이니, 다음에도 굵직한 뉴스가 터져 나오면 지면 기사나 방구석 도쿄통신으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방구석 도쿄통신은 추석 연휴로 한주 쉬어갑니다. 10월 4일을 건너뛰고, 11일에 뵙게 되겠습니다. 계속해서 일본에서 핫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난 4~5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정치인 월급, 성과따라 주면 안되나요?” 나루토 보고 정계 입성한 日MZ의 소신발언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09/13/NX6V7CPZAFABPDXX4FV6YBHCAU/

“빵순이·빵돌이 필독, ‘찐 빵덕후’가 고른 도쿄 빵집 7선”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09/20/TC53SIHAFVDXLIYIKNCPGI7Y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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