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수 겸 배우로 30년 이상 최고 인기를 구가해 온 기무라 다쿠야(木村拓哉·51)가 소속사 ‘자니즈 사무소(이하 자니즈)’ 창업주의 성범죄 사태와 관련해 구설에 휘말려 연예계 퇴출 위기에 몰렸다. 기무라는 1988년 자니즈 소속의 6인조 아이돌 스마프(SMAP)로 데뷔, 장발의 수려한 외모와 노래 실력으로 1990년대 초·중반부터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롱 베케이션(1996)’ ‘히어로(2001)’ 등 드라마까지 잇따라 흥행하며 독보적인 입지에 올랐다.
리바이스 청바지 모델로 활동했고 2007년 ‘히어로 극장판’에 이병헌과 함께 출연하는 등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한국에선 ‘김탁구’란 애칭으로 많이 불린다. 2008년까지 15년 연속 일본 여성지가 선정한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 1위로 뽑힌 전무후무한 기록에 2010년대 이후 최근까지 일본 드라마 주연을 꿰차면서 ‘흥행 보증 수표’로 활약했다. 그러나 올 들어 자니즈 설립자 자니 기타가와(1931~2019)가 생전 연습생들을 상대로 저지른 성 착취 전모가 드러난 상황에서, 이달 초 기무라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말이 비판받으면서 그동안 출연해 온 광고·드라마 등에서 줄줄이 쫓겨나고 있다.
일본 스마트플래시 등 연예 매체들은 26일 “내년 방영 예정이던 기무라 주연의 후지TV 드라마 ‘교장(教場) 스페셜편’ 촬영이 잠정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교장’은 2020~2021년 방영된 1·2편이 큰 인기를 끌고 올 9~12월 스페셜편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이 드라마를 후원해온 일본 음료 기업 산토리의 니나미 다케시 사장은 최근 “자니즈가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프로그램 후원을 끊겠다”고 말했다.
광고도 끊기고 있다. 기무라를 메인 모델로 기용해온 맥도널드 일본 지사는 지난 12일 “자니즈 소속 연예인과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했고, 기무라가 광고에 출연한 닛산자동차도 같은 방침을 밝혔다. 화장품 제조사 시세이도는 고급 남성용 신제품 광고에 기무라를 기용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 3월 영국 BBC가 자니즈 연습생들에 대한 기타가와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자니즈 출신 가수 오카모토 가우안이 피해 증언에 나서며 파문이 커졌다. 기타가와의 조카인 후지시마 주리 게이코 사장은 지난 7일 회견을 열어 사과한 뒤 사임했다. 그런데 기무라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쇼는 계속돼야 한다(show must go on)”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일본 언론들은 ‘이것이 직격탄이었다’고 했다.
이 문구는 생전 기타가와의 좌우명이자 자니즈를 상징하는 캐치프레이즈로 연예인의 직업 정신을 담았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기타가와의 성범죄를 묻고 지나가겠단 것이냐” 등으로 분노했다. 기무라는 지난 10일 글을 삭제했지만, 제작사와 광고주들은 등을 돌린 뒤였다. 이후 기무라의 거취에 대한 보도도 엇갈리고 있다. 주간지 조세지신은 지난 12일 “기무라가 자니즈 아이돌 ‘소년대’ 출신인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신임 사장 체제에서 부사장직 같은 간부 자리에 중용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기무라가 지인들에게 “자니즈를 탈퇴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는 보도(고단샤 프라이데이디지털)도 나왔다.
이미지 타격을 받은 다른 자니즈 연예인들도 피해를 입고 있다. TBS 연예 프로그램에선 자니즈 소속 나카지마 겐토 출연 편의 녹화가 보류됐고, 5인조 아이돌 아라시의 니노미야 가즈나리는 맥주 업체 아사히의 광고 갱신이 중단됐다. 현지 매체들은 “방송사와 후원 업체들이 자니즈 소속 연예인들을 프로그램과 광고에서 배제하려 한다”고 했다.
한편 자니즈는 다음 달 2일 창업주 이름을 딴 사명(社名) 변경과 피해 보상안 등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1962년 자니즈를 세운 기타가와는 1960년대부터 연습생 성 착취 의혹이 제기됐으나 자니즈의 막강한 입지로 인해 언론·연예계 모두 쉬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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