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30년 넘게 장기 연재되면서 걸작으로 평가받았으나 작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결말을 맺지 못한 만화 ‘베르세르크’가 다시 연재를 시작했다. 만화 원작자가 2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생전 그에게서 결말까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동료 작가를 통해 작품이 부활하게 됐다.
4일 스포니치아넥스 등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일본 전역에 베르세르크 신작 42권이 발매됐다. 42권 표지에는 ‘원작: 미우라 겐타로, 감수: 모리 고지’라고 적혔다. 미우라는 사망한 원작자, 모리 고지(57)는 절친했던 만화 작가다. 모리가 미우라로부터 들었던 속편에 대한 줄거리를 최대한 따르고, 미우라가 생전 함께 작업했던 수하생들이 그림을 맡았다는 설명이다.
베르세르크는 1989년 10월 일본 월간지 애니멀하우스에서 처음 발간된 판타지 장르의 만화다. ‘베르세르크(Berserk)’의 어원은 북유럽 신화 속 용맹한 전사들을 뜻하지만 만화의 배경은 가상의 왕국과 제국들이다. 이곳을 무대로 외눈·외팔이 검사(劍士) ‘가츠’가 자신의 동료들을 죽이고 달아난 원수 그리피스에게 복수하는 여정을 그렸다. 일부 잔인한 장면에도 방대한 세계관과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그림으로 만화 마니아들 사이에 소문을 탔다. 작가가 사망한 2021년까지 32년간 장기 연재되는 동안 누적 발행 6000만부를 돌파했다. 일본뿐 아니라 해외 팬들에게도 인기였다. 영미권 최대 만화 커뮤니티 ‘마이 아니메 리스트’가 선정한 ‘최고의 만화’ 순위에서 평점 9.47로 1위를 유지 중이다. 2위 ‘죠죠의 기묘한 모험 7부(2004~2011)’, 3위 ‘배가본드(1998~2015)’, 4위 ‘원피스(1997~현재)’ 등 다른 일본 유명 만화들도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베르세르크는 회를 거듭할수록 복잡한 복선들이 짜맞춰지며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2021년 5월 6일 미우라가 급성 대동맥 박리로 55세에 숨지면서 연재를 멈추게 됐다. 그해 12월 미우라가 남긴 마지막 작업 분량으로 엮은 41권을 끝으로 미완의 걸작으로 남았다. 생전 미우라는 하루 15시간씩 스토리 구상과 그림 작업에 몰두했다고 알려졌다. 팬들은 그가 만화에 쏟아넣은 투혼 때문에 건강이 악화됐을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베르세르크가 점차 잊히던 와중, 지난해 6월 일본 만화 잡지 영애니멀이 “베르세르크 연재를 재개한다”는 깜짝 소식을 발표했다. 영애니멀은 베르세르크가 처음 실렸던 만화 잡지 애니멀하우스의 후신이다. 미우라의 고교 동창이자 만화 ‘홀리랜드(2000~2008)’ 등으로 활동해온 작가 모리가 재연재를 이끌기로 했다. 모리는 “미우라로부터 베르세르크의 결말을 들었다”며 “그에게 들었던 얘기만을 바탕으로 작품을 쓰고 절대 살을 붙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모리가 스토리 구상과 감수를, 생전 미우라와 함께 일했던 ‘스튜디오 가가’ 소속 어시스트들이 그림을 맡기로 했다.
그렇게 1년여를 거쳐 미우라의 손을 거치지 않은 베르세르크 신작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모리는 지난달 인터뷰에서 “누군가의 만화를 이어 그린다는 건 작가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털어놓으면서도 “하지만 같은 만화가로서 작품을 끝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미우라의 고뇌를 알 것만 같다”고 했다. 그는 “미우라에게 베르세르크 결말을 들은 건 나 하나뿐이다. 내 손으로 이 작품을 끝내지 않는다면 그 역시 나를 크게 혼냈을 것”이라고 했다.
미우라는 숨지기 전 베르세르크가 “5분의 3, 4쯤까지 전개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모리는 “앞으로 (연재 종료까지) 10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미우라 겐타로라는 위대한 만화가가 있었음을 독자들이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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