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지난달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TIFF)에 ‘더 콘테스턴트(The Contestant·참가자)’란 다큐멘터리가 공개됐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과거 출연진 인권을 갉아먹으며 시청률을 높인 일본 예능 프로그램, 그중에서도 ‘15개월간 나체 감금’이란 인권 유린으로 악명을 떨친 니혼TV 버라이어티쇼 ‘나아가라! 전파소년(進ぬ!電波少年·1998~2002년 방영)’과 실제 출연진 코미디언 하마츠 도모아키(浜津智明·48)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때는 1998년 1월입니다. 니혼TV는 새해 첫 예능 프로그램 출연진을 뽑겠다며 신입 코미디언들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실시합니다. 당첨자는 하마츠, 이른바 나스비(なすび·'가지’라는 뜻. 턱이 가지처럼 길다며 붙은 별명)였습니다. 니혼TV라는 일본 굴지의 공중파 방송 새해 첫 야심작에 출연하게 된 나스비는 “톱스타가 될 수 있다”며 기뻐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몰랐을 겁니다. 자신이 일본 예능 역사상 최악의 ‘인권 유린’ 대상이 될 것이라고는요.
이후 나스비는 안대와 헤드폰을 낀 채로 스태프들이 마련한 영문 모를 방에 도착합니다. 프로그램 콘셉트조차 듣지 못한 그에게 스태프는 대뜸 입고 있던 옷들과 소지품을 압수하더니, “앞으로 잡지·라디오 등에 경품을 응모해 얻은 물건들로만 살아가라”는 미션을 제시합니다. “당첨된 경품 가격 총합이 100만엔을 넘으면 성공”이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렇게 그가 당해 2월까지 응모한 경품 이벤트 수만 5748건. 경품은 젤리·바디워시 등 생활을 이어나가기엔 변변치 않았고, 가장 필요하다던 옷 당첨에선 번번이 떨어집니다. 쌀 5㎏에 당첨됐지만 밥솥이 없어 생쌀을 씹어먹던 그. 차츰 스파게티 세트와 접이식 자전거, 낫토 한 박스 등 경품의 수를 늘려갑니다. ‘물개 이름 짓기’ 공모전에서 수상해 받은 인형에 ‘비나스(자신의 별명 나스비를 변형한 것)’란 별명을 붙이고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은 이것이 예능인지, 사회 실험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로 압권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시청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에 ‘인권 의식’이란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넷플릭스나 왓챠 같이 전 세계로 방영되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도 있지 않은 시절이었죠. 그렇게 방송은 나스비의 감금 생활이 한 달, 두 달씩 길어짐에 따라 회당 1700만명의 시청자가 지켜볼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스타가 되고 싶다”던 나스비의 꿈은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었죠.
그렇게 텔레비전에 당첨됐지만 안테나가 없어 켜지 못하고, 쌀이 떨어져 경품으로 얻은 개 사료로 주린 배를 채우는 처절한 시간을 보내던 나스비. 한 시청자가 영상을 통해 그가 갇힌 집 위치를 알아내는 바람에 다시 눈과 귀를 가리고 이사를 가는 해프닝도 겪습니다.
그러다 제작진은 또 한 번 악독한 생각을 해냅니다. 인기가 절정에 오른 나스비의 감금 생활을 인터넷에서 24시간 생중계하기로 하죠. 그의 성기 등 중요부위는 제작진이 일일이 가지 모양의 스티커를 옮기며 가려주는 방식으로 방송했습니다.
나스비는 시간이 갈수록 감금 생활에 익숙해지는 한편, 일주일에 당첨된 경품이 한 건도 없을 정도로 불운(不運)을 겪으며 먹을 것을 잃어갑니다.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에 당첨돼 오락을 처음 접한 어린 아이처럼 사흘을 내리 게임만 하다가 “경품 응모에 방해된다”며 이마저 포기해버리죠.
약 1년이 지난 12월, 나스비는 어느새 ‘100만엔’이란 미션 성공까지 586엔만을 남겨놓게 됩니다. 이때 당첨된 쌀 2㎏을 마지막으로 그의 감금 생활은 끝이 납니다.(아니, 끝인 줄 알았습니다. 이후 악마도 혀를 내두를 제작진의 악독한 술수를 후술하는 글에서 확인해보세요.)
제작진은 나스비에게 1년 동안 고생했다며 한국 여행을 보내줍니다. 그가 방송하며 썼던 일기에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한국 ‘불고기’를 골랐던 것이 이유라고 하네요. 그는 한국에서 먹고 싶던 음식들을 먹고, 놀이공원도 가는 등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작진이 대뜸 나스비에게 또 한 번 안대를 씌웁니다.
나스비는 이번엔 한국에 있는 방에 갇혀버립니다. 새로운 미션도 제공되죠. 일본에서와 똑같이 경품에 응모해 ‘도쿄로 가는 비행기 티켓값을 벌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스비는 여행을 하며 사온 한국 김치로 연명하면서 타국에서의 감금 생활을 또다시 이어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제작진 기대(?)와는 다르게, 나스비는 도쿄행 항공권을 위한 4만6900엔어치의 경품을 약 한 달여 만에 모아버립니다. 한국어도 할 줄 모르는 그는 제작진이 남겨둔 한일·일한 사전을 보면서 경품에 응모했죠. 스태프들은 미션이 시시하게 끝난 게 아쉬웠는지, 성공액을 올려버립니다. 이코노미 좌석에서 비즈니스 좌석으로 조건을 바꾸더니, 후에는 파리를 경유하는 방식의 퍼스트클래스로까지 미션을 변경합니다.
한국을 여행할 때까지만 해도 무사히 귀국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스비는 점점 우울함에 빠집니다. 음식이 떨어지고 무료한 나날이 이어지는데도 애써 코미디언으로서 개구진 표정을 유지하던 그의 얼굴에도 어두운 낯빛이 드리우죠. 상황이 좀 어색하게 흘러가자, 제작진은 결국 미션을 멈춥니다. 그렇게 도쿄로 돌아온 나스비를 다시 어느 외딴 방에 가둬버립니다. 1998년 1월 감금 생활을 시작한 지 15개월째였습니다.
감금됐어도 다른 나라보단 고국에서의 생활이 편안했을까요. 익숙한 듯 방에 도착해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미션을 기다리던 그에게 ‘깜짝 이벤트’가 찾아옵니다. 그가 들어온 곳은 방이 아닌 방송 세트장이었고, 사방의 벽이 한순간에 넘어지더니 주변에서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제작진이 시청자 1000여 명을 방송국에 초대해 나스비의 미션 완수를 ‘축하’해주려 한 것이죠.
그렇게 그는 방송 마지막까지 속옷도 없는 전라(全裸) 상태로 팬들 앞에 보여지는 능욕을 당하게 됩니다. 미션 완료 소식을 듣고 좋아하는 음식인 낫토를 밥 위에 얹어 우걱우걱 먹는 모습은 기뻐 보이다 못해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이후 나스비는 어떻게 됐을까요? 스타덤엔 올랐지만 시청자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건 멀끔한 옷을 입고 공개 코미디를 하는 모습이 아니라 나체로 우스꽝스럽게 경품에 응모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나스비의 스타 생활은 말 그대로 ‘반짝’하고 끝났고, 대중들의 기억에서도 자연스레 잊히게 됩니다.
나스비는 방송이 끝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극단적 선택 시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전라 상태로 1년 넘게 생활해 옷을 입으면 간지러움을 견디지 못했다는데요. 후에 한 인터뷰에서 1년 3개월여 동안 가장 괴로운 것이 무엇이었느냔 질문에, 배고픔도 무료함도 아닌 “고독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방송이 끝나고 1년 이상을 사람과 대화하지 못하고 혼자 지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고향인 후쿠시마에서 조용히 방송 생활을 이어갑니다. 동일본 대지진(2011년 3월 11일) 피해자들을 위한 모금을 홍보하려 2016년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했습니다. 3번의 실패 끝에 얻은 성공이었는데요. 나스비는 “힘들고 괴로운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죠.
나스비의 감금 생활이 끝나고도 니혼티비 ‘나아가라! 전파소년’은 버려진 섬에서 탈출하기, 아프리카에서 유럽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종단하기 등 가학적인 콘텐츠를 계속하다 2002년에야 방송 규정 강화로 폐지됐습니다. 나스비는 2020년 5월 일본 매체 버즈피드 인터뷰에서 20여 년 전 방송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어느 날 먹던 쌀이 다 떨어지고 하루 세 끼를 개 사료로만 해결했을 때, “인간의 존엄성을 잃는 힘든 순간이었다”고 했죠. “(개밥을 먹는 것이) 부끄럽지만 살기 위해, 최소한 죽지 않을 정도로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참고 먹었다”고 했습니다.
나스비는 또 “시청자들은 극한 상황에서 나오는 사람의 움직임, 거기서 우러나오는 본성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며,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인간이 무섭구나’ 느낀 부분은, 내가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껄껄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방송이 끝나고도 ‘인간에 대한 불신’을 없앨 수 없었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남았다”며, “사실 촬영 도중에도 인근 파출소로 도망가버리고 싶었는데, 전라 상태인 바람에 경찰이나 시민들에게 신세를 지게 될까 무서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고 웃으며 털어놓았죠.
지난달 TIFF에서 상영된 다큐 ‘더 콘테스턴트’는 영국 감독 클레어 티틀리가 해당 방송에 관심을 가지면서 제작됐습니다. 당시 방송의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나스비의 최근 건강해진 근황도 담았다고 하네요. 평단은 “1990년대 일본 예능의 인권 유린을 고발했다”며 호평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영화 커뮤니티 IMDb에서 평점 7.5(10점 만점), 로튼토마토 신선도 점수에서 90%를 기록 중이죠.
여러분이라면 나스비와 같은 감금 생활을 버틸 수 있으신가요? 그가 니혼TV에서 받은 출연료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일부 현지 매체들이 “수백만엔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을 뿐이죠. 얼마를 받는다면 이러한 방송에 출연할 수 있으실 것 같은가요? 돈과 무관하게 인간성을 빼앗아 시청률을 올리는 방송이 불과 25년 전 일본에서 제작됐다는 것이 놀랍고 안타깝습니다.
일본 예능의 인권 유린은 사실 최근까지도 논란이 불거져 왔습니다. 2010년대 반짝인기를 끌었던 지바현 후나바시시 비공식 마스코트 후낫시(ふなっしー)는 출연하는 방송마다 눈밭 구르기, 폭파 현장 달리기, 남극에서 수영하기 등 인체 실험에 가까운 가학을 당하다 결국 최근 텔레비전에서 거의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예능에서 단골 벌칙으로 등장하던 ‘뺨 때리기’가 미디어 감시 단체에 의해 경고를 받은 것도 불과 지난해 5월의 일입니다.
이 가운데 나스비가 출연했던 1990년대 방송이 국제영화제를 통해 재조명받으니, 최근 창업주의 연습생 성 착취 논란으로 몰락 중인 일본 최대 연예기획사 ‘자니즈 사무소’ 사태에 이어 일본 연예계에 잠식하던 인권 문제가 완전히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일본 프라이데이디지털)도 나오고 있습니다.
10월 11일 일곱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최근 국제영화제에서 등장한 일본 연예계의 오랜 가학성 논란을 다뤄보았습니다. 지난 주 추석 연휴로 쉬었는데 기다려주신 구독자분들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핫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5~6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빵순이·빵돌이 필독, ‘찐 빵덕후’가 고른 도쿄 빵집 7선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09/20/TC53SIHAFVDXLIYIKNCPGI7YDU/
‘60년 철밥통’ 자니즈는 왜 BBC 보도 한방에 무너졌나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09/27/OT7SUXEX25E5XPNE7NBCC5Y4HA/
‘방구석 도쿄통신’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하단의 ‘구독’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메일 주소로 ‘총알 배송’됩니다.
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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