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일본 니가타현이 지난 9월 1일부로 '곰 출몰 경계 경보'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경고문. 일본어로 '곰(구마) 주의'라고 적혀 있다./니가타현

일본 후쿠시마현 모토미야시(本宮市)에 사는 50대 남성 A씨는 지난달 22일 오전 3시 20분쯤 새벽잠에서 깨 커튼을 걷었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가 사는 곳은 아파트 1층인데, 유리창 바로 앞에 키 1m쯤 되는 곰 한 마리가 서 있던 것이었습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란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A씨와 눈을 마주친 곰은 곧장 유리창을 깨부쉈습니다. 다행히 집안에 침입하진 않았지만, A씨는 깨진 유리를 밟고 오른발에 경상을 입었습니다. 이른 새벽 A씨 자택에 잊지못할 ‘노크’를 남기고 달아난 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에 의해 같은 날 4시30분쯤 인근 논에서 발견됐고, 이내 산속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지난달 22일 새벽 일본 후쿠시마현 모토미야시 주택가에 출몰한 곰이 이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로/후쿠시마민보

기시다 후미오 정권의 지지율 하락,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벌어진 새로운 전쟁, 수개월째 계속되는 엔저(円低)와 물가 상승 등 신경 쓸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인 일본에 뜬금없는 난제(難題)가 발생했습니다. 전쟁도, 외교도, 인플레이션도 아닙니다. 야생에서 나타난 ‘곰’입니다.

NHK·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최근 일제히 “올 들어 야생 곰이 출몰해 민가를 습격하는 일이 잦아져 사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4~9월 일본에서 갑자기 나타난 곰에게 습격당해 피해를 본 사람은 109명. 같은 시기 대비 사상 가장 많았는데요. 이 시기에 곰에 의한 피해자 수가 100명을 넘어선 건 통계가 시작된 2007년 이후 처음입니다.

최근 일본 아키타현에 출몰한 야생 곰./민영방송 ANN(올 닛폰 뉴스 네트워크)

문제는 곰들의 발길이 산이나 숲 속 같은 자연뿐 아니라 주택가, 맨션 단지 내 등 주민 거주 지역에까지 닿고 있어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16일엔 니가타현 북부 세키가와(関川) 마을 한 주택에 곰이 현관 방충망을 찢고 침입하는 위태로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키타현 미사토초(美里町)의 한 다다미(たたみ·일본 전통 바닥재) 작업실엔 지난 4일 곰 세 마리가 침입해 직원들 전원이 몸을 피해야 했습니다.

한국인 피해자도 발생했습니다. 지난달 27일 일본 신에츠방송은 나가노현 마쓰모토시(松本市)에서 산책을 하던 한국인 양모(남·39)씨가 곰에 습격당해 머리와 오른팔을 다쳤다고 전했는데요. 양씨는 당시 추석 연휴를 맞아 일본 여행을 갔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의식을 잃진 않았고, 생명에도 지장이 없었습니다.

일본 시마네현이 야생 곰 출몰에 주의하라며 공개한 반달가슴곰 사진./시마네

지난달에만 일본에서 38명이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8월 피해자 수(15명)보다 2.5배 많은 규모입니다. 현재까지 피해를 본 109명 중 홋카이도·이와테현에서 각각 1명이 숨졌습니다. 아키타현에서 28명, 이와테현에서 26명, 후쿠시마현에서 13명이 다치는 등 주로 도호쿠(東北·동북) 지방을 중심으로 피해가 늘어나고 있죠.

야생 곰 출몰 빈도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일본 환경성은 “도호쿠 지방에서 곰 주식인 도토리 등 열매가 흉작에 처해 먹이를 찾아 떠난 곰들이 민가에까지 침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올여름 일본에서는 8월 평균 기온이 30.6도로 1876년 관측 이래 역대 최고를 기록했는데요. 이러한 이상기후 때문에 너도밤나무 등 식물들이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했고, 열매도 제대로 맺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본 니가타현이 지난 9월 1일부로 「곰 출몰 경계 경보」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경고문. 종, 라디오와 같은 곰이 싫어하는 소리가 나는 물건을 가급적 외출할 때 들고 나가라는 등의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니가타

일본 환경성은 “과거 도토리 흉작 시절 곰 출몰 빈도는 10월에 가장 극심했다”며 “앞으로 피해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실제 야생 곰 출몰로 연간 가장 많은 피해자(158명)가 발생한 2020년엔 9월 말까지 피해가 86명이었고, 나머지 절반가량의 부상·사망자들은 10월 이후에야 발생했습니다. 이달 들어 이와테·아키타·아오모리 등에서 이미 10명이 곰에 의한 피해를 입었다는데요. 전문가들은 10월이 “곰이 동면에 들어가기 전 먹이를 비축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죠.

이에 일본 정부와 언론들은 전문가를 총동원해 “곰을 만났을 때 거리가 확보되면 조용히 자리를 뜨고, 가까이 있다면 급히 달아나지 말고 천천히 후퇴해야 한다”는 등의 주의사항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와테현은 최근 지역 곳곳에 “언제라도, 어디서나, 누구나 곰을 만날 위험이 있다”는 플래카드를 설치했고요. 아키타현은 곰 출몰 신고가 접수되면 관내 어린이집 등원을 즉각 중단시키는 등 지방 도시 당국들도 피해 최소화를 위해 대책을 꾸리고 있습니다.

독자분들 중에서도 겨울이 오기 전 홋카이도 등 일본 도호쿠 여행을 앞두셨다면 각별히 주의하셔야겠습니다. 이와테현 당국이 말했듯, “언제·어디서나·누구나 곰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니깐요. 여행 지역이 한 번이라도 곰이 출몰했던 곳이라면 가급적 단독 외출을 피하고, 방울처럼 곰이 싫어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챙기고 다니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곰과 조우하셨다면, 양팔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둥글게 말아 땅에 엎드리는 게 최선이라고 하네요.

여행 예정 지역이 곰 출몰 위험이 있는 곳인지 알아보기 여의치 않으시다면, 제 이메일 주소(boy@chosun.com)로 문의 주세요. 금방 찾아보고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난 5월 22일 일본의 한 네티즌이 마루가메제면 컵우동에서 살아 있는 개구리가 나왔다며 트위터에 올린 게시글./트위터(현재 X)

일본에서 야생동물에 대한 ‘비상’이 선포된 건 올 들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봄철에는 번식기를 맞이한 동물들이 골머리를 앓게 했는데요. 올 5월 일본 거대 우동 체인 마루가메제면 테이크아웃 제품에서 살아 있는 개구리가 발견됐습니다. 한 네티즌이 트위터(현재 X)에 사진을 올리며 이슈가 됐는데, 당사자는 “바닥까지 먹고 나서야 눈치를 챘다”고 했죠.

우동에 잠입한 개구리는 청개구리 종의 하나였는데, 전문가들은 당시 “5월 하순부터 6월까지는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가장 활발한 번식 시기에 접어든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움직임이 활발한 시기인 만큼, 바깥에서 채소에 붙어 있던 개구리가 공장에 혼입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죠.

지난 5월 일본 오사카와 후쿠오카, 도쿄 등 주요 도심에서 공격성 높은 까마귀가 발견되고 있다는 현지 방송 보도./닛테레뉴스

오사카 등 주요 도심도 야생동물의 습격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5월 오사카·후쿠오카에선 길을 걷던 시민들이 까마귀로부터 머리를 습격당해 부상하는 일이 수차례 벌어졌죠. 도쿄 신주쿠에서도 같은 달 도야마공원 내 까마귀 둥지가 발견되자 당국이 해당 산책로를 통행금지 조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 까마귀 피해 민원의 70%가량은 4~6월에 집중돼 있고, 이때는 “번식 및 양육 시즌인 데다 도심 내 음식물 쓰레기 증가로 까마귀의 활동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었죠.

니가타현에선 생태계 교란으로 ‘특정 외래생물’에 지정된 미국너구리(라쿤)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일이 급증했습니다. 니가타에선 2010년 현내 최초로 미국너구리가 발견됐는데, 이후 포획 수가 연 1마리를 유지하다 2018~2020년 연 10마리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하죠. 현 당국은 너구리 방제 계획안 마련에 나섰습니다. 1979년 미국너구리가 처음 정착한 홋카이도에선 이들로 인한 농업 피해액이 1억2000만엔(약 11억원)에 달한다고 하네요.

최근 일본에서 발견된 거대 말벌집. 폭염이 길고 심해지면서 예년보다 2주가량 빨리 둥지를 틀어 개체 수가 많고 흉포성도 높다./후지뉴스네트워크(FNN)

이 밖에도 올해 일본 폭염 영향으로 전국에서 ‘말벌집’ 크기가 거대해지고 흉포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12일 후지뉴스네트워크(FNN)는 전했습니다. 따뜻한 기후가 오래가자 말벌들이 예년보다 2주쯤 빨리 둥지를 틀며 성장력이 높아졌기 때문인데요. 둥지가 커지면 개체 수도 급격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가을 나들이 시즌과 겹쳐 피해는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일본 중앙부 기후현 다카야마시(高山市)에선 등산로 러닝 행사에 참가하던 주자 42명이 노랑말벌 무리에 습격당해 3명이 입원까지 했습니다. 지바현 남부 다테야마시(館山市)에선 3일 벌 구제(驅除)업자 1명이 장수말벌에 쏘여 사망했다고 하네요.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10월 18일 여덟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난데없이 등장한 일본의 ‘야생동물 대피령’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여행을 앞두신 분들이 참고됐다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핫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6~7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60년 철밥통’ 자니즈는 왜 BBC 보도 한방에 무너졌나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09/27/OT7SUXEX25E5XPNE7NBCC5Y4HA/

15달 감금생활, 24시 생중계… 얼마 받으면 하시겠습니까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10/11/46XVGAPHLZHNTOIDASPXLYYN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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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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