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요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 접속하면, 옛날처럼 친구끼리의 소통을 위한 게시글보단 과한 보정으로 얼굴을 꾸민 사진이나 식당 등 홍보 의뢰를 받은 글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기자는 두 SNS 모두 사용 중인데요. 우리 일상과는 동떨어진 과시용 투고나 무분별한 홍보들로 덮여 있는 피드를 보면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많습니다. ‘중2병’이란 신조어가 유행한 뒤로 때로는 오글거리기도 했던 시시콜콜한 일상 스토리와 진솔한 속마음이 SNS에서 사라졌다는 생각도 드네요.
일본에서 소셜미디어는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 요소입니다. 지난해 기준 소셜미디어 이용자는 약 827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65% 이상이었죠. 특히 X(옛 트위터)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데요. 2022년 1월 기준 이용자가 5895만명으로, 국민 2명 중 1명이 X를 사용합니다.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의 CEO(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인수한 뒤인 지난해 11월 사내 회의에서 “일본 인구는 미국의 약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미국과 거의 같은 수의 ‘데일리 액티브 유저(하루당 이용자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고 하죠.
이러한 일본에서도 X 등 소셜미디어는 주로 보정 등 후작업을 거친 사진을 투고해 ‘미(美)’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여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소셜미디어의 시대가 저물고, 실물 그대로의 사진만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 새롭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SNS는 ‘꾸며진 모습을 올리는 곳’이란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올려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메시지가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분석입니다.
화제의 소셜미디어는 2019년 프랑스에서 출시된 ‘비리얼(Be Real)’입니다. 한국어로 풀이하면 ‘현실이 되어라’ 쯤인데요. 이 소셜미디어는 이용자에게 하루에 한 번씩 무작위로 알림을 울립니다. 이때마다 2분 안에 즉석으로 촬영한 사진을 게시해야 하죠. 스마트폰 전·후면 카메라로 동시 촬영돼 얼굴을 찍지 않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제한시간이 지나 올리면 얼마나 늦었는지 게시글에 표시되고, 사진을 몇 번 다시 찍어서 올렸는지도 읽는 사람이 알 수 있습니다. 얼굴색을 밝아보이게 하거나 눈매·콧대를 도드라지게 하고, 때로는 다리 길이를 늘여 비율을 좋게 보이게끔 만드는 ‘필터’ 기능도 못 씁니다. 투고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게시글은 볼 수 없죠.
NHK는 최근 이 소셜미디어가 일본 애플리케이션 상점 내 소셜미디어 다운로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달 기준 전체 다운로드 수는 1000만회를 돌파했습니다. 일본 여론조사 업체 서클앱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현지 대학생 중 절반에 이르는 49%가 비리얼을 사용하고 있죠. 기존 대학생들이 자주 쓰는 인스타그램·X 이용률(각각 95·86%)보단 낮지만, 상승세만 따지면 가장 유행 중이라고 일본 매체들은 전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최근 대학생들 사이 비리얼이 유행한다”는 응답은 85.1%였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소셜미디어 주 사용층인 젊은이들이 실물과 동떨어진 사진을 올리는 것에 지쳐버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최근 비리얼을 사용한다는 도쿄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재학생 스즈키 리나씨는 지난 22일 인터넷 매체 리얼사운드 인터뷰에서 “비리얼은 다른 SNS처럼 ‘남들에게 예뻐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 편하다”며 “빈 이면지에 순수한 내 모습과 감정만을 담는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이용자 오쿠라하 유키노씨는 “코로나를 거치면서 SNS를 통한 소통이 활발해졌는데, 꾸며진 사진만 올리다 보니 정작 친구들과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며 “비리얼을 통해 ‘진짜 소통’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고 했죠.
미국 미디어 심리 전문가인 파멜라 라트리지는 NHK 인터뷰에서 “SNS엔 고독감 해소 등 장점도 많지만, 실제 얼굴과 다른 보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피로가 쌓이기 쉽다”며 “예쁘고 잘생긴 사진만 칭찬받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실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피로감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것이 비리얼이라는 것인데요.
비리얼은 이용자 주의사항에서부터 제작 의도를 드러내듯 “우리 SNS로는 유명해질 수 없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다면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을 써라”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동형 카메라 업체인 ‘고프로’에 재직하던 프랑스인 알렉시스 발레야가 개발했는데, 출시 반년도 안 돼 프랑스에서만 50만명이 내려받았고 이후 미국·영국 등에서도 급속도로 유행 중이라 하죠. 지난해 애플이 선정하는 ‘올해의 애플리케이션’ 5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NHK는 비리얼이 “1일 1회만 게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독 위험도 적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친한 친구끼리 소통하는 수단이었던 SNS는 코로나 등을 거치며 자기 어필과 홍보의 장으로 변모했고, 비방과 가짜뉴스, 개인정보 유출 등 단점들도 떠올랐다”고 했죠. 마지막으로는 다음과 같은 울림 있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때로는 꼴불견인 모습까지 드러내야 하는 비리얼의 유행은 ‘진정한 내 모습을 알아봐 달라’는 젊은이들의 외침인 듯하다.”
여러분은 소셜미디어를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하고 계신가요? 일본 대학생들처럼 실제 자신의 모습과 전혀 다른 게시글들에 지치셨다면, 비리얼을 한 번 깔고 경험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가짜’로 가득한 소셜미디어 세계에서 당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볼 사람이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흥미가 생기셨다면 ‘오겡키데스카’란 대사로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1995년 개봉)’의 감독 이와이 슌지의 2016년 작 ‘립반윙클의 신부’도 추천합니다. 거짓말로 가득한 소셜미디어 세계의 모순을 듬뿍 담았죠.
11월 1일 열한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일본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소셜미디어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핫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9~10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승차공유 합법화 놓고 쪼개지는 日사회, ‘타다사태’ 닮았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10/25/SCADXG5J35GBXJXOM2GXDX75I4/
“과거사 의견 분분하지만, 젊은층 미래로 나아가야”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10/28/5Y4D4XBZ6BG6JNY5PVITGLUE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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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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