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회에서 ‘일본의 힘 연구회’라는 국회의원 모임이 지난 15일에 열렸다. 주최자는 집권 여당 자민당 내에서 ‘가장 강경한 우익’으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2) 일본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이다. 일본에서 유력 정치인이 동료 국회의원들과 공부 모임을 여는 일은 ‘세력 확장’을 의미한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지지율 하락으로 기반이 흔들리자 다카이치가 차기(次期) 총리 자리를 노리며 노골적으로 자기편 끌어모으기를 시작한 것이다.
16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다카이치가 연 첫 모임에 아리무라 하루코, 야마다 히로시, 스기타 미오 등 의원 13명이 참석했다. 이 가운데 스기타 의원은 혐한(嫌韓)주의자이자 ‘넷우익(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일본 극우파)’의 대변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2016년 스위스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참석한 뒤 소셜미디어에 “회의실에는 지저분한 차림에 더해 (한복) 치마·저고리와 아이누(홋카이도 원주민)의 민족의상 코스프레 아줌마까지 등장해 품격이 떨어졌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며 한복을 조롱해 논란을 불렀다.
철저하게 파벌에 따른 정치를 하는 일본이지만, 다카이치의 이날 의원 모임에는 아베파(3명), 아소파(2명), 모테기·니카이·아오야마파(각 1명), 무(無)파벌 4명 등 파벌을 넘어 자민당 내 ‘강경 우익’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일본의 힘 연구회’는 매월 1차례씩 공부 모임을 열면서 다른 국회의원의 참여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다카이치는 현직 관료이자 의원으로서 매년 2차례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하는 우익 인사다. 야스쿠니신사는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을 합사(合祀·합동 제사)한 곳이다. 과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아베 신조 전 총리도 현직 총리 재직 때는 직접 참배는 하지 않고 공물을 보냈는데, 다카이치는 공적인 자리에서도 “총리가 되어도 참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다카이치는 자민당에 입당한 1996년부터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거의 빠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카이치는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총리가 되면) 한국이 더는 구조물을 못 만들게 하겠다”고 말했고,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강제징용도 전면 부정하는 입장이다.
다카이치는 ‘여성 아베’로 불릴 정도로 아베의 지지를 받으며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아베 내각 시절에 자민당 정조회장과 핵심 각료로 꼽히는 총무상을 지내며 ‘일본의 여성 첫 총리’ 자리를 노렸다. 2년 전 기시다가 총재로 당선된 선거에선 기시다, 고노 다로에 이어 3위였다. 당원 득표를 제외한 국회의원의 표만 놓고 보면 고노 다로도 이긴 2위였다. ‘우익 성향 국회의원’들이 다카이치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다. 당시 선거 초반에 아베는 다카이치를 ‘우익의 얼굴’로 인정한다며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현직 각료인 다카이치 의원이 공부회를 만든 건, 기시다 총리에게 직접 칼을 대는 행위”라고 보도하고 있다. 다카이치가 기시다 내각의 일원이면서 다음 총리 선거를 위한 행보를 하는 건, 일본 정치계에선 금도를 넘어선 행위라는 뜻이다. 다카이치는 주변에 “이번 모임은 말 그대로 ‘공부’ 모임”이라며 참가를 독려하면서도, 지난달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선 “다음번 총재 선거에선 기시다 총리와 다시 한번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