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친한파 종교인인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창가학회(創価学会·소카각카이) 명예회장이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다. ‘가치를 창조하고 배운다’는 뜻인 창가학회는 일본에서 신자가 800만 명이 넘는 대형 신흥 불교다. 한국을 포함해 192개 국가·지역에선 SGI(창가학회 인터내셔널)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는 창가학회의 기도문이 잘 알려져 있다.
1928년 도쿄도에서 태어난 이케다 명예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 민중에게 “현세의 행복을 추구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평화주의를 설파한 인물이다. 19세 때인 1947년 창가학회에 입회했고 32세 때 회장에 올라 신자 수 5000명도 안 되는 단체를 큰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1964년에 그가 주도해 창당한 공명당은 현재 자민당과 함께 일본을 이끄는 연립 여당이기도 하다. 1975년에는 해외 포교를 위해 SGI를 설립했다.
이케다 명예회장은 ‘전쟁 경험 세대의 마지막 친한파’로 꼽힌다. 군국주의 전쟁의 참혹함을 목도한 일본 지식인들은 전후에 평화헌법을 지지하는 최대 세력이었고 그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전쟁을 경험 못 한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전후 세대와는 다르다. 이케다 명예회장은 생전 “한국은 일본에 문화대은(文化大恩)의 나라”라고 말하며 일본 학생들에게 세종대왕·이순신·유관순·안창호와 같은 한국의 위인을 가르쳤다. 재일교포에게 참정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생전 SGI의 기관지인 화광신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출병(임진왜란)은 조선에서 받은 문화적 은혜를 짓밟는 침략이었다” “일본은 한국과 우정을 맺고, 한국을 존경하고, 한국의 마음을 배움으로써 평화와 번영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등의 글을 남겼다. 일본 우익으로부터는 공격을 받았다.
한일 가교의 공로를 인정받은 고인은 2009년 한국에서 국가훈장(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6자 회담의 제도화 등을 제안했다.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 등 글로벌 지성들과의 대담으로도 유명하다. 1970년대 토인비 박사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냈고, 냉전이 극에 달한 1970년대 중반엔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 구(舊)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과도 대담했다. 이후 미하일 고르바초프(전 소련 서기장), 후진타오(중국 전 국가주석), 코피 아난(전 유엔 사무총장) 등 각국 지도자와도 ‘평화’를 주제로 대담했고 이렇게 출판한 책만 70여 권에 이른다. 일본에선 노벨평화상 후보로 꼽혔던 인물이기도 하다.
요미우리신문은 19일 자 신문의 1면 머리기사로 그의 부고를 전하며 “고인은 본인의 자전적 소설인 ‘인간혁명’에서 ‘전쟁만큼 잔혹한 것도, 비참한 것도 없다’고 썼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에 “이케다 회장의 부고를 접하고 깊은 슬픔을 견딜 수 없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