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CEO

“과거엔 일본·한국처럼 국가 간 경쟁이었다. 다가올 글로벌 시대는 다르다. 도쿄인지 서울인지가 관건이다. 즉 도시의 경쟁력이 국가 위상을 좌우할 것이다.”

일본 도쿄에서 최근 만난 쓰지 신고(辻慎吾·63) ‘모리빌딩’ 최고경영자(CEO·사장)는 “글로벌 시대의 비즈니스는 국경을 넘은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며 “이렇게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글로벌 플레이어의 선택을 받는 도시가 국가의 경쟁력을 이끌 것”이라고 했다. 도시 개발 및 부동산 업체인 일본 모리빌딩은 최근 20여 년간 도쿄의 낡은 도심 재개발을 주도한 기업이다.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인기인 롯폰기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도라노몬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긴자 식스 등의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오는 24일엔 땅값을 제외한 건설비만 6400억엔(약 5조6000억원) 들인 모리빌딩의 또 다른 프로젝트 ‘아자부다이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가 도쿄 중심부 미나토구에 문을 열 예정이다. 모리빌딩과 토지 소유주 약 300명이 35년 동안 추진해 완성한 거대한 복합 단지는 도쿄의 풍경을 또 한번 업그레이드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리빌딩은 도쿄 미나토구 도라노몬, 아자부다이, 롯폰기 일대에 걸쳐 지어질 초고층 빌딩 사이를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기로 했다./모리빌딩

쓰지 CEO는 “도쿄는 현재 런던·뉴욕에 이은 도시 경쟁력 3위라고 평가되지만, 1위로 올라설 것”이라며 “국가로 경쟁해 일본이 미국을 넘어서는 건 무리여도, 도쿄는 뉴욕을 누르고 세계인이 살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인구 70억~80억명 가운데 80% 가까이가 면적 5%밖에 안 되는 도시에 몰려 산다”며 “결국 도쿄·서울·런던 같은 국가의 중추 도시가 해당 지역의 경쟁력을 이끄는 구조며, 예컨대 한국에선 서울이 망가지면 그 옆의 인천을 포함해 주변이 다 같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했다.

모리빌딩 산하 연구소인 모리기념재단이 매년 경제·문화·교통·환경 등 각 분야 경쟁력을 평가한 도시 순위에서 서울은 2010년대 줄곧 6위를 유지하다가 2018~2021년에 암스테르담·베를린에 밀려 8위로 떨어졌고, 지난해 7위로 한 단계 올랐다. 쓰지 CEO는 “(개발사가) 아파트 짓고 분양하면 돈 벌고 좋긴 하겠지만 그것으론 도시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서울의 도심 재개발에 대해 “(한국 건설사는) 아파트 팔아서 돈 벌겠다는 발상밖에 없다”며 “서울시 같은 지방정부가 ‘이런 도시를 만들자’는 구상을 갖고, 민간 건설사와 협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리빌딩그룹이 건립한 도쿄 도심 초고층 복합 시설 단지 아자부다이힐스의 전경을 담은 조감도. 아자부다이힐스는 낙후된 일본 도쿄 도심을 개발하는 사업으로, 1989년 재개발 조합이 설립된 이래 최근 34년 만에 완공됐다. 왼쪽의 높은 건물이 높이 330m로 일본 최고층 빌딩이 된 ‘모리JP타워’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도쿄 미나토구 모리빌딩 본사 사장실에서 만난 쓰지 CEO는 “도시 간 경쟁에서 이기는 도시는 성장하고, 패배한 도시는 쇠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코하마국립대 공학부를 졸업한 쓰지 CEO는 1985년 모리빌딩에 입사해 2011년 사장에 취임했다. 모리빌딩 창업자인 모리 미노루(森稔·1934~2012) 전 회장은 쓰지 CEO를 “타운 매니지먼트(민간 주도형 지역 개발·관리)라는, 전혀 새로운 사업 모델을 확립한 인재”라고 평가했다. 1980년대 말 시작된 아자부다이 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 프로젝트도 쓰지 CEO의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는 전체 면적이 8만1000㎡며 이 중 녹지가 2만4000㎡에 달한다. 높이 330인 일본 최고층 건물 ‘모리JP타워’ 등 10여 동 한곳에 사무실·주택·쇼핑·문화·교육·의료 시설을 모은 작은 도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롯폰기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나 아자부다이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 같은 프로젝트가 도쿄 경쟁력을 높이나.

“대도시인 도쿄에서 (아자부다이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 등은) 일개 밀집 지구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는 세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도쿄 주요 5구(區)의 사무실 연면적은 700만평(약 2314만㎡) 정도이니, 6만평 정도인 아자부다이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는 1%밖에 안 된다. 하지만 세계인의 눈에 비친 인지도는 (1%의) 수십 배는 될 것이다. 세계의 ‘VIP(주요 인사)’들을 롯폰기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가 끌어당겼는데 아자부다이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도 비슷한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롯폰기 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는 생긴 지 20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도쿄’ 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복합 단지다.”

그래픽=양인성

-아자부다이 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의 차별점은.

“아자부다이 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엔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 등 쇼핑 시설, 국제 학교인 ‘브리티시 스쿨’, 의료 시설인 게이오대의 예방의학센터 등이 입주한다. 아파트도 있다. 과거엔 도심 단지를 만든다면 기껏 사무실과 주거 건물, 쇼핑·상가 건물을 따로 세우고 한가운데 광장을 넣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일부러 마구 섞었다. 롯폰기 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도, 아자부다이 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도 그런 식이다. 왜냐면 사람은 집과 사무실·병원·레스토랑·호텔이 섞인 게 살기 편하니까. 대신 설계는 엄청 어려워진다. 예컨대 엘리베이터 문제만 해도 훨씬 복잡하고 (입구도) 넷으로 나눠야 한다. 매우 난해한, 모리빌딩의 노하우(요령)이기도 하다.”

아자부다이 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 프로젝트는 1989년 시작됐다. 그해 재개발 조합이 설립됐고, 토지 소유주 300여 명의 동의를 구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이 설득 작업만 수십 년이 걸렸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으로 작업이 지연되면서 결국 34년 만에 문을 열게 됐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나.

“어려웠던 이유가 있다. 부지는 크지만 땅의 모양이 사각형이 아닌 십자형이여서 설계가 힘들었다. 또 땅 주인만 300여 명이었이니 모두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를 검토하진 않았다. 포기하면 재개발에 동의해 준 땅 주인 300여 명을 배신하는 것이니까. 만약 금융 위기 등을 이유로 포기했다면 나중에 다른 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땅 주인들이 불안해할 것이다.”

-규제 완화도 도움이 됐나.

“2013년 아베 신조 총리 당시 정부가 ‘국가 전략 특구 제도’를 만들었다. 국가가 특구로 지정해 일정을 촉진하는 것이다. 특구가 지정되고 개발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다. 아베 전 총리는 2016년 긴자 식스 개장 행사 때 3대 은행장을 앞에 두고 ‘이런 도심 개발에 대출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등 도심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아자부다이 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의 아파트(일본어로 ‘맨션’) 한 채 값이 100억엔(약 800억원) 이상이라는 보도가 일본 언론에서 나왔다. 분양으로 돈은 많이 벌었나.

“모리빌딩은 보유한 아파트를 일부만 팔고, 절반 이상은 직접 보유해 임대한다. 건물의 ‘좋은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때때로 수선을 하고 돈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리빌딩은 땅도 소유하지 않는다. 아자부다이 아자부다이롯폰기힐스도 땅 주인들이 그대로 땅을 보유하고 있다. 땅을 사는 데 돈을 쓰면 건물을 제대로 올릴 돈이 모자라지 않겠나.”

그래픽=백형선

-서울도 도심 재개발을 논의 중이다.

“한국은 관공서의 권한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관공서가 주도하면 세금을 써야 한다. 도심 재개발을 하려면 지방정부가 민간 건설사에 보너스(혜택)를 주는 방식으로, 민간의 돈을 쓰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민간이라고 해도 대부분 재벌이 보유한 건설사 아닌가. (한국 건설사는) 도시 경쟁력에 대해 고민하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아파트 분양에만 치중하더라. 건설사가 복합 개발을 하도록 움직이려면 지방정부가 아파트를 지을 때 일정한 문화·상업 시설을 만들도록 정하거나, 복합 개발에 보조금이나 용적률 해택 등을 주어야 한다. 서울이란 도시의 힘이 세질수록, 투자자들은 자연히 모일 것이다.”

☞아자부다이(麻布台)힐스

일본 도쿄의 미나토구에 있는 한 지역인 아자부다이에 지어진 초고층 복합 단지로 초고층 건물과 녹지는 물론, 호텔·병원·학교·미술관·상가 등을 갖춘 ‘콤팩트 도시(도시 속 도시)’다. 일본 모리빌딩이 1989년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로 시작했고, 총 6400억엔(약 5조6000억원)을 투입해 이달 24일 문을 연다. 전체 부지 8만1000㎡ 가운데 녹지(綠地)가 2만4000㎡에 이른다. 높이 약 330m인 모리JP타워와 아파트 1400가구, 게이오대 예방의학센터,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를 비롯해 상점 150곳 등이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