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저출산 대응을 위해 2025년부터 3자녀 이상인 세대의 모든 자녀에게 대학 무상 교육을 제공키로 했다. 일본은 지난해 합계 출산율(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이 1.26명으로, 우리나라(0.78명)보다는 상황이 낫다.
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3자녀 이상 세대를 대상으로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4년제 대학·전문대·고등전문학교(직업학교) 수업료를 전액 면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자녀가 세 명일 경우에 셋째 뿐만 아니라, 첫째·둘째의 대학 수업료도 면제한다는 것이다. 수업료 외 입학금도 면제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현재는 연 수입 380만엔(약 3500만원) 미만 저소득 가구에 한해 다자녀 대학 수업료를 면제하는데, 내년부터 연 수입 600만엔(약 5500만원)으로 기준이 완화되고 후년부터는 소득 제한을 아예 없애는 것이다. 사실상 자녀를 셋 이상 낳으면 대학 수업료 걱정은 사라지는 셈이다. 니혼TV는 “국립대는 물론이고 수업료가 비싼 사립대도 면제 대상”이라며 “의대도 지원 대상이긴 하지만, 정부 내에선 ‘최대 지원액’을 정하는 문제를 놓고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지난 30여 년간 1.3~1.4명 안팎의 합계 출산율을 기록, 인구가 서서히 줄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출생아 수가 작년보다 4.1% 감소했다. 작년 출생아는 79만명으로,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연간 신생아 수 70만명 선도 조만간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합계 출산율은 2.1명이다.
위기감 속에 일본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지난달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이란 이름의 정책으로 연간 3조5000억엔(약 32조원)의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인구 감소에 제동을 걸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젊은 층 인구가 급감하는 2030년에 진입하기 전까지 저출산 추세를 반전시켜야 하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적어도 교육비와 관련해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유치원부터 초·중·고와 대학까지 국가가 부모와 함께 책임지고 보장하겠다는 원칙이다. 통상 복지 정책은 소득 수준에 따라서 기준을 두고 혜택에 차등을 둔다. 하지만 이제는 자녀를 많이 낳기만 한다면 더 이상 소득 수준을 따지지 않고 혜택을 준다는 것이 이번 대책의 핵심 중 하나다.
일본 중앙 정부가 대학 수업료를 무상화하기로 함에 따라, 도쿄에 사는 다자녀 세대라면 자녀 교육비를 거의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방 정부인 도쿄도가 내년부터 고등학교 수업료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도쿄도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과 경기도 남쪽을 합친 크기다.
도쿄도의 교육비 지원은 자녀 수와 무관하게 모든 고등학생이 대상이다. 그동안 연봉 910만엔 이하 세대만 지원했지만, 내년부터 이런 소득 기준을 없애고 모두 지원키로 했다. 도립뿐 아니라 사립 고등학교도 지원 대상이다. 일본 도쿄에선 도립 고교 수업료가 연간 평균 12만엔, 사립 고교가 48만엔 정도다. 도쿄도가 저출산 해소를 위한 고교 수업료 지원의 첫발을 뗀 만큼, 다른 지방 정부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직접 현금으로 지원하는 아동 수당도 증액하고 있다. 아동 수당은 아이를 낳으면 조건 없이 매달 일정액을 정부가 주는 돈이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드는 실비 부담을 정부가 같이 지겠다는 뜻이다. 자녀 수와 관계없이 모든 아동에게 한 명당 매월 0~2세는 1만5000엔씩, 3세부터 고등학생까지는 월 1만엔을 지급한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녀를 3명 둘 경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정부에서 받는 돈은 총액 기준으로 1100만엔(약 1억원) 정도”라고 보도했다.
여기에 육아휴직하는 젊은 부부들을 지원하는 데도 내년부터 연간 7000억~8000억엔을 투입하기로 했다.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부모가 언제라도 시간 단위로 아이를 보육원에 맡길 수 있는 제도도 새로 도입한다. 심지어 아이 키우기 좋도록 보유한 주택(아파트 포함)의 인테리어 공사를 할 경우에도 일정 금액을 보조하는 제도까지 검토 중이다. 저출산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30여 년 전 ‘출산율 1.57 쇼크’를 겪은 뒤 끈질기게 인구 감소와 싸웠다. 2005년 출산율 1.26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1.3~1.4명으로 반등했다가 작년에 다시 1.26명으로 추락했다. 일본은 출산율 0.78명인 한국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일본 소멸’이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북한과 인구는 일본의 2대 국난”(아베 신조 전 총리)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중국의 해상 진출 등 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안보 위기감이 고조되자 일본은 작년 말 방위비를 5년 내 2배로 증액하는 중·장기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 때문에 방위비에만 연간 4조~5조엔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인데, 저출산 자금이 추가로 연간 3조5000억엔 들어갈 경우에 대한 재정 확보 방안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본 언론들은 “방위비와 저출산 대책에 쓸 비용을 마련하려면 증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증세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크기 때문에 기시다 내각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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