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갑진년 새해 첫 방구석 도쿄통신입니다.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셨나요?
‘방구석 도쿄 특파원’은 12월 31일까지 구마모토·기타큐슈·오이타 등 규슈 일대를 돌고 왔는데요. 귀국하자마자 이시카와 노토 반도에 규모 7.6 대지진이 발생했네요. 새해부터 일본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지진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힘찬 신년을 맞이하기에 일본의 벽두가 조금은 불길해 보입니다. 새해 뉴스들 중 그래도 가장 눈에 띄고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일본 47개 도도부현 중 68%에 해당하는 32곳이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버스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지난 1일 보도했습니다. 지난해 11~12월 전 도도부현 담당 부서를 조사한 결과라고 합니다.
자율주행은 운전 자율성에 따라 단계가 1에서 5까지 나뉩니다. 레벨 4는 경로·속도 등 일부 조건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운전을 대신할 필요가 없습니다. 긴급 시에도 사람이 운전대를 넘겨받지 않아도 돼 ‘완전 자율주행’ 이라고 평가되죠.
즉 관할 지역에서 완전 자율주행 수준의 버스를 운영하겠단 곳이 전국의 절반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처럼 지방도시들이 ‘대중교통 자율주행화’를 추진하는 배경엔 고질적인 저출산·고령화에다 올 4월 운송·건설업 등에 적용되는 ‘시간 외 노동 상한 규제’로 인한 인력난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2019년 4월 시행된 개정 노동 기준법에 따른 것인데, 운송 등 일부 업계엔 즉각 시정이 어렵단 이유로 적용이 미뤄지다 올해부터 실시하게 됐죠.
이에 따라 버스 운전사들의 연간 근무시간 상한은 현행 3380시간에서 3300시간으로, 택시의 경우 월간 299시간에서 288시간으로 줄어듭니다. 버스 운전사 한 명의 실운전 시간은 4주를 평균으로 주당 40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는 추가 제약도 붙고요. 이로 인해 일본 전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고가 많았습니다. 이른바 ‘2024년 문제’라고 불려 왔습니다.
이에 레벨 4 자율주행 버스 운영을 전국 최초로 도입한 곳은 인구 1만8000명이 조금 안 되는 소도시 후쿠이현 에이헤이지초(永平寺町)였습니다. 일본 유명 사찰인 영평사가 위치해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연간 50만명 이상의 참배객이 방문했던 관광지입니다.
불교문화라는 다소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 마을이 ‘자율주행 선진 지역’으로 성장 중이란 사실은 일본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진 않습니다. 지난해 5월 말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율주행 셔틀 서비스가 개시됐는데요. 7인승 전동 차량 세 대가 최대 시속 12㎞로 2㎞ 구간을 10분 동안 주행하는 방식입니다. 주말과 공휴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매시 00·20·40분에 출발했습니다.
에이헤이지초가 자율주행 선진 지역으로 거듭난 역사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정부의 자율주행 실증 지역 공모에서 20여 년 전 폐선된, 영평사 입구와 닿은 6㎞ 구간의 낡은 전철길이 뽑힌 것이었죠.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높고 폭우·강설과 같은 악천후가 드물어서 주변 환경을 감지하기 쉽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국가 연구기관인 산업기술종합연구소도 에이헤이지초의 자율주행 셔틀 운행 사업에 가세했고요. 일본 정부는 대중교통 노동력 부족 해결을 내걸고 레벨 4 자율주행 차량이 공공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도록 2022년 도로교통법을 본격 개정하고 나섰습니다. 이 소도시의 사례를 시금석 삼아 다른 지역들도 자율주행 대중교통 운행을 속속 검토하고 나섰다는 분석입니다. 후쿠이현 외에 후쿠오카현이 후쿠오카·기타큐슈시에서 우선해 도입할 예정이고, 다른 서른 지역도 “(자율주행 버스 도입을) 검토 중인 구역이 있다”고 교도통신에 답했습니다.
일본이 2024년 새해 신(新) 대중교통망 구축에 나서고 있는 분야는 버스에 그치지 않습니다. 현지 자동차 대기업 혼다는 지난달 19일, 오는 2026년부터 도쿄 시내에서 레벨 4 수준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는데요. 2026년 초 수십 대를 도입한 뒤 향후 500대까지 운용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택시 분야에서는 일본 사회를 둘로 쪼개놨던 ‘라이드쉐어(승차 공유)’ 합법화 논란에 대해 앞서 방구석 도쿄통신이 소개해 드렸습니다. 라이드쉐어란 택시기사가 아닌 일반인 운전자가 자가용으로 사람을 운송해주는 서비스로, 일본에서 최근 급부상한 ‘택시 부족’ 사태의 해결책으로 유력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로 제동이 걸린 상태였는데요.
결국 일본 정부는 택시 업계에도 시간 외 노동 상한 규제가 적용되는 올 4월부터 라이드쉐어를 부분 합법화하기로 했다고 요미우리신문 등이 지난달 보도했습니다. 안전 등 우려는 택시 업체들에 운전자 교육과 차량 정비를 맡기는 방식으로 해소하기로 했죠.
이 밖에도 일본 국토교통성은 올해부터 전철 등 철도 운전면허 취득 가능 연령을 20세 이상에서 18세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일본 경시청의 경우 택시·버스 운전에 필요한 2종 면허 시험을 일본어뿐 아닌 외국어로도 응시할 수 있게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올 3월까지 영어·한국어·중국어 등 20개 언어로 번역된 시험 예제를 전국 경찰 본부에 배포할 계획이라는데요. 외국인들의 택시 운전사 취업을 촉진해 가시화하는 운송업 인력난을 틀어막겠단 의도로 읽힙니다.
1월 3일 열아홉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대중교통 인력난에 맞서 ‘신교통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일본 정부와 지방도시, 민간 업체에 대해 소개해 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17~18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예술 좇아 한국 온 日청년, 이제는 ‘맛집 전도사’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12/20/EC557CMRLFHB7M3YZ4XVWP3ZSQ/
“성관계 동의맺고 하라”는 일본 新앱… 왜?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3/12/27/INLFZ2TZWVGINK3KCYB372NOLU/
‘방구석 도쿄통신’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하단의 ‘구독’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메일 주소로 ‘총알 배송’됩니다.
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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