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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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 미인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해 심사 자격 논란을 낳았던 우크라이나 출신 귀화 여성이 결국 수상을 철회했습니다. 이 소식에 대해선 지난 7일 조선일보 국제면 기사로 소개해드렸는데요. 지면 사정상 다 담기지 못한 자세한 일화와 이 사태로 말미암아 제기된 ‘미인대회 폐지’ 주장까지 얘기해드리려 합니다.
일본 사단법인 미스일본협회와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제56회 미스일본 콘테스트’에서 대상 격인 ‘미스일본 그랑프리’를 거머쥔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 시노 카롤리나(27)는 지난 5일 “일신상의 이유로 수상을 취소한다”고 밝혔습니다. 미스일본 콘테스트는 일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미인대회로, 대상 시상이 번복되는 건 이례적입니다.
1997년 8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시노는 다섯 살 무렵 어머니가 일본인 남성과 재혼하며 일본으로 이주했습니다.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자라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모델로 일했습니다. 25세였던 2022년 일본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그는 지난달 미스일본 그랑프리 수상 당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인으로 살아왔지만, 좀처럼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기억이 많다”며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일본에 ‘다양성’이란 시사점을 던진 그의 포부와 상반되게, 현지 네티즌들은 시노의 흰 피부와 깊게 팬 눈, 두꺼운 쌍커풀 등 서구적인 외모를 짚으며 “일본 미인대회 수상자로 부적합하다”고 비난했습니다. 미스일본 그랑프리의 주최 측 주요 심사 기준이 ‘일본다운 아름다움’이란 점은 이러한 논란을 더 부풀렸죠. 현지 소셜미디어엔 “수상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가 대회 출전 자격인 ‘일본 국적’을 지녔다는 점에서 “심사에 ‘인종의 벽’을 둬선 안 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습니다.
하지만 시노는 이러한 심사 자격 논란이 아닌, 다소 생뚱맞은 이유로 ‘일본 최고 미인’의 영예를 내려놓게 됐습니다. 발단은 지난달 31일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의 폭로입니다. 시노가 ‘미남 근육 의사’로 소셜미디어에서 이름을 알린 의사 마에다 다쿠마(46)와 불륜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슈칸분슌은 둘이 손을 잡고 데이트하는 모습을 공개하며 “(마에다가) 작년 5월부터 세 차례 시노의 집을 방문했다. 둘의 교제는 3년째”라고 보도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 일본 최고 미인대회 대상을 수상한 시노였기에 불륜 논란의 파급력은 거셌습니다. 심사 자격 논란은 온데간데없이, 그가 기혼 남성과 교제했단 소식에 “시상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불륜 사실을 먼저 인정한 건 마에다 쪽이었습니다. 그는 기사가 나온 당일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한때 만났던 건 사실”이라며 “어리석은 행동으로 폐를 끼치게 돼 죄송하다”고 소셜미디어에 사과했습니다. 마에다는 삿포로 성형외과 ‘르트로와 뷰티 클리닉 보그’ 원장으로, 아내와 슬하에 아들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사과문에서 “(아내와) 현재 이혼했다고 (시노를) 속였다. 기혼임을 속이고 카롤리나와 가까워지려고 한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이에 일본 사회의 여론은 다시 둘로 갈라졌습니다. 마에다의 사과문으로 미루어보아, 시노는 그가 기혼임을 몰랐다는 것이죠. 미스일본협회도 당시 논란에 대해 “시노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시노도 즉각 소속사를 통해 “불륜을 저지른 적은 없다”고 1일 밝혔습니다.
그러나 나흘 만에 판이 또 뒤바뀌었습니다. 미스일본협회 측이 ‘시노에게 문제가 없다’던 기존 의견을 철회하고, 그의 수상을 취소시킨 것입니다. 여론이 혼란스러워진 와중 시노가 인스타그램에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지난번 소속사를 통해 설명한 내용은 사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며, 사실상 마에다가 기혼이란 걸 알고도 교제했음을 시인했죠. 소속사 측도 “이대로 계속 거짓말하다간 더 많은 폐를 끼칠 것 같아 사실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시노는 이어 “마에다씨의 가족들에게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미스일본 그랑프리에서 사퇴한다. 소속사에서도 탈퇴한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심사 자격 논란을 시작으로 ‘인종 차별’과 ‘다양성’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부각시킨 시노의 미스일본 대상 수상 논란은 불륜 폭로로 허무하게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용두사미’가 된 꼴이죠. 미스일본협회는 “올해 미스일본 그랑프리는 공석으로 남겨둔다”며 “일련의 소동을 초래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습니다.
시노가 올해 미스일본 그랑프리 자격으로 예정됐던 정·재계와 자원봉사 활동들도 덩달아 무산되면서 그가 주최 측으로부터 손해배상을 청구당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만약 시노가 불륜 폭로 없이 대상 수상자 자리를 지켰다면, 지난해 수상자처럼 조만간 기시다 후미오 총리 관저를 찾아 그와 공개 대담했을 것입니다. 유명 패션 및 화장품 브랜드들과의 스폰서 계약도 줄줄이 예정돼 있었을테죠.
간노 류타로 법률사무소Z 변호사는 “(손해배상 청구 여부에서) 중요한 건 미스일본 사무국과 카롤리나가 어떤 계약을 체결했느냐”라며 “통상 이러한 대회에선 사무국이 최종 참가자들에게 서약서 제출을 요구한다. 사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를 저질렀음이 발각되면 이로 인한 (주최 측) 손해를 배상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올해 미스일본 시상식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자 일각에선 대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주간지 뉴스위크재팬은 지난 5일 “외모와 나이, 인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걸 금기시하는 현대 사회에 여성들을 외적 매력으로 순위 매기는 것은 더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며 “시대에 뒤떨어진 대회”라고 비판했습니다.
2월 14일 스물다섯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다양성’ 논란으로 시작해 ‘불륜 폭로’로 용두사미한 미스일본 대회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23~24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에어컨 고장났다” 119신고, 이제 7만원 벌금 뭅니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1/31/W5DOYS3NSNCLTP7JXLJ335NWGE/
교토 스타벅스 간판은 왜 녹색이 아닐까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2/07/IRREL6MC4ZFXNKCWIJBMRRFA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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