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5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일본 여성/파나소닉

일본인 A씨는 지난해 대형 구인 웹사이트에서 부동산 관련 벤처기업의 직원 모집 게시글을 봤습니다. 본사는 도쿄도, 고용 형태 정규직, 고용보험·건강보험·후생연금 등 사회보험 완비… 게시글을 내리던 중 한 근무 조건이 A씨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완전 재택근무’.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는 기업들의 근무 체계 중 하나로 완전히 자리 잡았겠다, 또 여러모로 일하기도 편하다’는 생각에 곧장 응모한 A씨. 이내 면접 제의를 받고 화상으로 ‘사장’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목소리뿐, 사장은 시종일관 자신의 얼굴을 비추지 않았습니다. A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용이 내정됐습니다.

일은 임대 물건을 찾는 고객을 화상으로 도와주는 것. 풀타임이며 회사에 출근할 필요는 일절 없었습니다. 사측은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근무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루, 이틀, 일주일… 근무일이 늘어감에 따라 A씨는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일본에서 기업은 고용한 직원에게 임금 등을 기재한 ‘근로조건 통지서’를 서면으로 교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후생연금 가입 절차도 안내받지 못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일본 남성/파나소닉

사장 혹은 상사를 지칭하는 이들이 이따금 화상회의나 소셜미디어 통화 기능으로 업무 지시를 해왔지만, 그 누구도 얼굴을 보여주진 않았습니다.

니시닛폰신문에 따르면, A씨를 포함한 사원 전원은 입사 2개월 안으로 모두 퇴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 중 급여를 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회사에 급여 이야길 꺼내면 ‘일은 제대로 하는 거냐, 너 때문에 적자다’란 꾸지람만 들려왔다고 합니다.

A씨는 한국 고용노동부 격인, 후생노동성 노동기준감독서(노기서)에 상담하기로 했습니다. 이내 들려 온 답변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본사 건물이 (회사) 등기부 주소와 동일하네요. 근데 이 회사, 이미 해체돼서 존재하지 않는데요.” 사장 주소로 알고 있었던 공영주택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산재보험도 가입돼 있지 않았고, 자신뿐 아닌 모든 직원이 임금 체납된 상태였습니다.

평소 연락을 주고받던 회사 측 소셜미디어 계정에 ‘급여를 달라’는 메시질 보냈지만, “확인하고 알려주겠다”는 답장뿐이었습니다. 사측 연락처라고 알고 있었던 휴대전화 번호는 전화를 걸어도 신호음이 울리지 않았죠.

임금체불 그래픽=일본 채용 전문 업체 아시로(アシロ)

다행히 A씨의 경우, 퇴직하고 몇 달 뒤 일본 노동 당국이 임금체불로 잠적한 사장 연락처를 알아내 겨우 급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A씨는 니시닛폰신문에 “(이런 회사에) 입사해 정말 후회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일했던 때를 생각하면 울화통이 치민다”고 했습니다.

A씨 외엔 아직도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한 직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일회용 인간’으로 전락한 기분이다. 반드시 벌을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일본 한 노동 단체 관계자는 니시닛폰신문에 “(최근 늘고 있는) ‘완전 재택근무’ 채용의 위험성이 단적으로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 사측과 연락을 나누는 수단은 오직 소셜미디어 혹은 휴대전화. 형편이 나빠지면 언제라도 직원과의 연락을 끊고 숨어버릴 수 있죠. 이 관계자는 “실컷 일을 시켜놓고 사측 의무는 다하지 않는 엄연한 사기”라고 비판했습니다.

이토 케이이치 일본 전국노동조합총연합 고용·노동법제국장은 “사장이나 상사가 (직원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도망칠 생각이었다는 의도가 읽힌다”며 “고용 계약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A씨 케이스의 경우 해당 회사의 정보를 게시한 구인 업체도 처벌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죠.

A씨 사건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일본에선 ‘재택근무 채용 주의보’가 불고 있습니다. ‘완전 재택근무’에 혹해 무턱대고 지원할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회사 정보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재택근무를 하며 통화 중인 직원/일본 와쿠후로(ワークフロー)

이 사건과 완전히 반대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재택근무로 채용한 직원이 실제론 펑펑 놀아놓고, 일을 한 것처럼 꾸며 ‘임금체불’로 회사를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의 한 웹 콘텐츠 제작 회사가 잡지 슈에이샤에 최근 이런 고민을 보내왔습니다.

이 회사는 직원과 아르바이트를 합쳐 전체 10명 미만인 소규모 회사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를 완전히 제도화해 고용인들 모두 사무실 출근은 주 1회만 하고, 그 외의 날들은 재택근무로 일하고 있다 하죠.

문제를 일으킨 이는 약 6개월 전 입사한 B씨. 20대 남성인 그는 주3일 아르바이트 스탭으로 고용됐습니다. 이중 하루만 회사에 오고, 나머진 재택근무를 한다는 조건이었죠.

B씨는 아무리 신입이라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끝낼 업무에 서너 시간을 들이는 것은 기본, 재택근무 날 제출해야 하는 업무 보고도 보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처리하는 업무는 기존 직원들과 비교했을 때 대략 3분의 1 정도. 약속한 사무실 출근일에도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측은 B씨에게 첫 달 급여를 제대로 지불했지만, 문제는 두 달째부터였습니다.

자취를 감추고 있는 캐릭터/toa-t-materials.com

B씨는 입사 두 달 차에 급거 자취를 감췄습니다. 후에 회사가 그가 제출했던 업무들을 검토하니,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비슷한 자료를 통째로 복사했거나 다른 직원의 것을 베껴온 것이었다고 합니다. 실질적으로 그가 한 일은 없었습니다.

약 한 달 후, 소식불통이던 B씨로부터 “6일치(두 달 차 근무일) 급여를 달라”는 메일이 날아왔습니다. 사측은 “재택근무로 숨겼을 뿐 실제 일한 게 없어 줄 수 없다”고 답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가 노기서에 ‘임금체불’로 회사를 신고했다는 통보였습니다.

사측은 노기서 측에 B씨 근무 실태를 설명하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돌아온 것은 ‘임금 지불 시정권고’. ‘근로기준법 위반’과 ‘최저임금법 위반’이란 경고도 함께였습니다. 그렇게 회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6일분 급여인 약 6만엔(약 53만원)을 B씨에게 입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백번 양보하고 (노기서) 감독관이 우리 설명을 듣고 B씨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뒤 임금 지불을 요구했다면 납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사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택근무’에 대해 당국이 아직 뚜렷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동 기준을 감독하는 기관’이라며 정작 최신 근로 방식을 따라가고 있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덧붙였죠.

슈에이샤는 “재택근무 제도는 회사와 직원 간 신뢰 관계가 있어야 성립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어느 한 쪽이 신뢰를 저버리고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 허점을 노릴 수 있는 ‘구멍투성이’와 같다”고 전했습니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2월 21일 스물여섯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최근 일본에 불고 있는 ‘재택근무 주의보’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24~25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에어컨 고장났다” 119신고, 이제 7만원 벌금 뭅니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1/31/W5DOYS3NSNCLTP7JXLJ335NWGE/

인종문제로 시작해 불륜으로 끝났다...日미인대회 뒷이야기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2/14/IYNA432OYREXDKPTAWFP34653A/


‘방구석 도쿄통신’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하단의 ‘구독’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메일 주소로 ‘총알 배송’됩니다.

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