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가 된 것을 실감할 수가 없다. 앞으로도 건강에 유의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고 싶다.”
지난 3일 100번째 생일을 맞은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는 장수 비결에 대해 “무리하지 않고 자연체(自然体)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어로 자연체는 검도 등에서 양발을 적당히 벌리고 자연스럽고 부담 없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욕심 없이 마음이 편한 대로 사는 게 장수의 비결이란 의미다.
4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무라야마는 전날 일본 규슈 오이타시(市) 자택에서 가족·친지들과 함께 100세 생일을 맞았다. 일본 역대 총리 가운데 100세를 맞은 경우는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전 총리(1887~1990)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1918~2019)에 이어 무라야마가 세 번째다. 무라야마는 “일주일에 3회 데이케어 센터를 다니고 매일 2차례 산책과 체조를 계속하고 있다”며 “즐거움은 TV로 스모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관련 입장은 딱 한 줄 밝혔다. “일본이 언제까지라도 평화의 나라로 계속 있기를 바란다.”
1924년 3월 3일 오이타에서 태어난 무라야마는 1994년 6월~1996년 1월 일본 총리로 재직했다. 트레이드 마크는 흰 눈썹이다. 일본의 50주년 종전 기념일인 199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두고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을 언급한 ‘무라야마 담화’로도 유명하다.
그는 2000년 정계 은퇴 이후 낙향했다. 그가 일본의 보통 노인과 별반 차이가 없는 ‘자연체’의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2005년 자전거 접촉 사고 때다. 당시 여든한 살이었던 무라야마는 자전거를 타다가 시내 교차로에서 마주오던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자전거와 부딪쳤다. 사고는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됐지만 전직 총리가 경호원이나 비서도 전용 차량도 없이 자전거를 직접 타고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전직 일본 총리들은 은퇴 이후에도 특정 단체의 고문 등 직함을 갖고 도쿄 시내에 별도 사무실을 내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신장이 173㎝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1920년대에 태어난 일본인치고는 키가 꽤 큰 편이지만 타고난 강골 체력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3년간 자전거로 신문을 배달했고 열네 살 때 도쿄로 상경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고등학교 야간부를 다니면서 유도부 활동을 하긴 했지만 남들을 압도하는 체력을 갖고 있진 않았다고 한다. 부친이 50대 때 세상을 떴으니 장수 집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남다른 운동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신 규칙적으로 매일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을 꾸준히 이어왔다고 한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해 인근 공원과 주변을 빠르게 걷는 산책을 즐긴다. 공원에선 동네 노인들과 잡담을 하거나 라디오 체조를 한다. 라디오 체조는 NHK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과 구령에 맞춰 13가지 동작을 하는 운동이다. 남녀노소 모두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동작이며 온몸을 움직이는 운동이다. 매일 2시간씩 산책과 잡담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검소한 생활도 돋보인다.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과거 총리였다고 일반인과 다른 점은 하나도 없으며 그런 생활에 불편한 점도 없다”며 “멀리 갈 때는 가끔 택시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론 모두 자전거로 다닌다”고 했다. 여든여덟 살 때 백내장 수술 일화도 무라야마의 청빈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의사가 “가까운 곳과 먼 곳, 어느 쪽을 잘 보이도록 수술할지 택해야 한다”고 묻자 “마트에서 장 보는 데는 자전거가 중요하니까 먼 곳을 잘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답했다. 의사가 “추가 수술을 하면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모두 잘 보이게 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무라야마는 거절했다. 추가 수술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100만엔(약 900만원)이나 드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며 거절한 것이다.
그는 평범한 어촌 집안 11남매의 여덟째로 태어났다. 역대 일본 총리 대부분은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와 같은 유력 정치인 집안 출신인데 그의 부모와 친·인척 가운데 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 1987년 일본에서 총리 재산 공개 제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총리 가운데 가장 적은 재산을 신고한 총리이기도 하다. 회색 기와가 얹혀진 2층 목조 주택인 오이타 자택은 130년 된 집으로 시세가 수십만 엔 수준에 그친다고 한다. 총리 시절 “나는 연중무휴로 일하는 어부 출신이니 휴가는 필요 없다”고 했다가 “해외 다른 정부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주변 만류에 도쿄 근교 하코네 료칸(여관)으로 휴가를 간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한 일본 신문에 “‘지위가 높다고 자랑하지 않으며, 가난해도 사상을 팔지 않는다’라는 중국 글귀를 좋아한다”고 적은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우연이 이어진 인생’이라고 표현한다. 욕심 없는 성격인데 대학 졸업 후 사회운동을 하다 보니 오이타 시의원, 현의원, 중의원을 거쳐 사회당 위원장이 됐다가 총리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는 총리 시절 “전혀 내 의지가 아니라 하다 보니 우연의 연속으로 총리가 됐다”며 “총리가 된 이상 전력을 다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무라야마 담화’도 그런 신념 속에서 나왔다. 후일 그는 “당시 (패전) 50년이 됐는데 지금 반성하지 않으면 다시 때가 안 올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의 모교인 메이지대학의 교우회장 등은 지난달 23일 무라야마를 찾아 100세 생일 선물을 증정했다. 생일인 3월 3일마다 발행된 100년 치 신문이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1924년 일본 오이타현의 어촌에서 태어났다. 메이지대 정치경제학과에 다니다 2차 대전에 강제 동원 및 징집됐다. 일본 사회당 소속으로 시의원, 현의원, 중의원을 지냈다. 자민당 등과 연립을 통해 1994년 6월부터 1996년 1월까지 총리를 지냈다. 일본의 패전 50년인 1995년 8월 15일,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현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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