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정상 간 합의를 통해 중국의 레거시(구형)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한국·대만·일본은 최첨단 분야에선 중국보다 월등히 앞서지만, 회로선폭 50~180나노미터(㎚·10억분의 1m)인 구형 반도체에선 중국이 세계 시장의 30%가량을 장악한 강자다.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굴기를 견제해온 미국·일본이 이어지는 수순으로 중국의 구형 반도체 옥죄기에 함께 나서는 것이다.
2일 요미우리신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오는 10일 미 워싱턴 DC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특정국에 지나치게 치우친 구형 반도체 공급망을 재정비하는 데 협력한다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명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일이 다른 G7(주요 7국) 국가와 협력해,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구형 반도체를 다른 국가에서 공급·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사이토 겐 일본 경제산업상이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 2월 일본 정부는 전력을 제어하는 파워반도체, 자동차 주행을 제어하는 마이콘과 같은 비첨단 반도체를 중요 물자로 지정했다. 일본 정부가 자국 내 구형 반도체 생산 시설에 보조금을 지급해 생산량을 늘리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미·일 협력은 사실상 중국을 직접 겨냥한 조치로 해석된다. 레거시 반도체는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견제에서 ‘뚫린 구멍’으로 여겨졌다. 최첨단 반도체는 첨단 반도체 기술·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낮은 기술력의 반도체는 마땅히 견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레거시 반도체는 저렴한 가격의 반도체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가전제품, 자동차, 방산 장비 등에서 폭넓게 쓰인다. 대형 전자 기기에선 선폭이 두껍더라도 반도체 자체의 크기를 크게 하면 충분한 성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30nm 이상의 구형 반도체 시장에선 중국이 대만 못지않은 제조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하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현재 31%인 중국의 세계 시장 구형 반도체 점유율이 2027년에 39%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중국은 앞으로 레거시 반도체 공장을 계속 늘릴 계획이며, 10년 후에는 제조 능력에서 전 세계의 46%를 장악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