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일본 히로시마를 찾은 나렌드라 모디(왼쪽에서 둘째) 인도 총리가 히로시마 평화공원 인근에 설치된 간디 흉상 옆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교도통신

일본 나가사키에 최근 인도 정부 기증으로 인도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 동상이 설치될 계획이었다가 주민 반발에 부딪혀 보류됐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8만여 명이 사망한 나가사키에 비폭력을 상징하는 간디 동상을 세워 ‘평화’의 메시지를 강조하겠단 취지였으나, ‘경관을 해친다’는 등 지적이 쏟아졌다.

3일 TV아사히 등에 따르면,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당국은 최근 지역 명소 메가네바시 인근 산책로에 간디 흉상을 설치하려는 계획을 중단했다. 메가네바시는 나카시마강을 건너는 교량으로 4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지역 랜드마크다. 이곳에 간디 흉상을 세우겠단 계획은 지난해 10월 나가사키를 찾은 시비 조지 주일 인도 대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당초 대사는 피폭 사망자 추도와 세계 평화 염원을 위해 1955년 세워진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흉상을 설치하려 했지만 “추상적인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공원에 특정인 동상을 두는 건 적절치 않다”는 시 판단에 장소를 옮겼다. 나가사키 평화공원엔 실제로 실존 인물 동상이 없다. 메가네바시는 지역 명소인 데다 원폭 투하 지점과 거리도 멀지 않아 설치 지역으로 낙점됐다고 한다.

나가사키시는 지난 2월 착공해 지난달 중으로 설치를 마칠 예정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주민 반발에 부딪혔다. 문제는 동상의 크기였다. 교도통신·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주일 인도 대사관이 나가사키에 기증한 간디 흉상은 높이가 2.4m, 폭이 1.7m다. 흉상 머리 부분만 실제 사람보다 5배가량 크다고 한다. 메가네바시가 위치한 사카에마치의 주민 자치회장 오노에 시게미치(75)는 요미우리에 “흉상이 너무 커 (설치되면) 위화감이 느껴지고 인도 폭도 5m로 좁아진다”고 했다. 메가네바시 인근 강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남성도 “(간디 흉상은) 경관을 해치는 물건일 뿐”이라고 했다. 앞서 인도 외교부는 G7(7국) 정상회의가 열렸던 지난해 5월 나가사키와 함께 원폭이 투하됐던 일본 히로시마에 간디 흉상을 설치했다. 다만 흉상 위치가 도심과 다소 떨어져 있는 히로시마와 달리, 나가사키 메가네바시는 주민 왕래가 잦아 반발이 거셌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인도가 ‘비공식 핵보유국’이란 점도 반발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간디의 비폭력 사상과 별개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의 기증품을 핵무기를 맞은 나가사키에 세우는 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나가사키시 당국은 결국 지난달 공사를 중단하고 장소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일부 시민은 ‘설치 자체를 철회하라’는 입장으로 알려졌으나 스즈키 시로 나가사키 시장은 지난달 소셜미디어에서 “나가사키를 ‘평화의 마을’로 조성하겠단 방침에 간디의 이념이 부합한다”며 철회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들은 “장소 협의 과정에서 시와 주민들 간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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