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가 설계한 한국 판교하우징 -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2010년 설계한 타운하우스 ‘판교하우징(경기 성남 산운2단지월든힐스)’의 전경. 100가구가 사는 공동 주거 시설인 이곳은 10가구씩 공유하는 정원들을 배치해 주민 간 소통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초기 분양 당시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미분양이 났지만, 지난 2020년 주민들이 야마모토 리켄을 초청해 감사 인사를 전할 만큼 주거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사진가 남궁선

“한국에도 좋은 건축가가 많은데, 정작 한국에선 한국 건축가들이 제대로 설계하고 건축할 기회를 갖지 못해요. 오히려 나 같은 외국인에겐 기회를 주고요. 이상해요.”

9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만난 야마모토 리켄(79) ‘야마모토 리켄 설계 공장’ 대표는 “자유도가 전혀 없는 한국 건축가들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야마모토 대표는 지난 3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선정 이유로 “사회성이 높은 건축물로, 사람들의 커뮤니티(공동체)를 재정의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1979년 프리츠커상이 제정된 이래 가장 많은 수상자(9명)를 배출한 국가다. 미국(8명)보다 많다. 한국인 수상자는 없다. 그는 “일본 건축가들이 건축물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건축 문화가 한국보다 나아서 수상자가 많은 게 아니다”라고 했다.

1945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야마모토는 1968년 니혼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예술연구과를 수료한 후 1973년 ‘야마모토 리켄 설계 공장’을 설립했다. 히로시마시 니시소방서(2000), 요코스카 미술관(2007), 취리히국제공항 더서클(The Circle·2020), 나고야 조형대 건물(2022) 등을 만들었다. 한국에선 판교하우징(판교 타운하우스·2010)·강남하우징(세곡동 아파트·2014) 등을 설계했다.

-’집’을 어떻게 정의하나.

“집은 커뮤니티로, 사람들 안에 있다.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땐 마을이 있고 나서 집이 있었다. 당연히 마을 안에 있는 게 집이다. 집은 마을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프리츠커상은 왜 당신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보나.

“집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받아준 것이다. 예전엔 마을 사람들이 같이 집을 지었다. 새로운 집은 기존 집의 바로 맞은편이거나 옆이거나 했다. 지금은 건축 허가 받고 땅 위에 초고층 건축을 올리고 사람들에게 팔고 끝난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사람들은 정말 (초고층 아파트 같은) 이런 곳에 살아 기쁜가. 나는 그런 거주 시설에 반대한다. 프리츠커상은 (건축에 대한 나의) 그런 생각을 평가했다.”

야마모토 리켄

−비(非)현실적이다. 서울·도쿄 같은 대도시엔 (최근 개장한 도쿄의) 아자부다이힐스 같은 초고층도 필요하지 않은가.

“왜? 땅이 부족하니까 몇 십 층짜리를 올려야 하나. 아자부다이힐스 꼭대기층의 집 하나가 얼만가. 100억엔(약 900억원)도 훨씬 넘는다. 장사를 하는 것이다. 원래 일본 국민 모두의 땅이어야 하는데 돈을 벌려고 (부동산 회사가) 누더기로 만들고 있다. 부동산 회사가 현지인들을 속여 땅을 매입해 초고층 건물을 올리곤, 본인들은 엄청난 돈을 번다.”

-한국인들은 초고층 아파트를 선호하는데.

“속고 있다. 초고층이니까, 앞으로 가격이 오른다고 부동산 기업들이 속여서 판다. 초고층 건물은 유지 보수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누군가는 지불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유지 보수가 될까. 10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유지 보수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겉모습만 보고 있다.”

−도심 재개발 방식으론 초고층 건물 외에 대안이 없지 않은가.

“초고층 건물을 도시 한복판에 만들면 주변엔 민폐다. 주변 시설이나 문화가 모두 망가진다. 그나마 남아 있던 에도 시대(1603~1868)의 주거 문화도 (아자부다이힐스 개발 탓에) 부숴져 모두 사라졌다. 롯본기힐스·아자부다이힐스 같은 초고층 건물이 세워지는 현실을 나는 믿을 수 없다. 거기엔 미국·중국 자본도 들어가 있다. 이전에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쫓겨났다. 한국도 그렇지 않은가. 한국은 일본에 점령당해 조선 시대 주거 시설과 문화가 부숴진 아픈 과거를 경험했다. 그렇기에 한국은 과거 문화를 부수는 행위에 더 예민해져야 한다.”

−한국에선 판교하우징을 설계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거 단지인데 2단지(경기 성남 산운월든힐스2단지)의 설계를 맡았다. 총 100가구의 공동 주거 시설로, 9~11가구를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고 가운데 공유하는 코먼(common·공동) 덱을 뒀다. 현관이 통유리로, 안이 보인다. 이 공간을 카페로 운영하는 분도 있었다. 공간이 공유되지 않으면 커뮤니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는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주택을 만든다. 투자 수단의 집을 만들어선 안 된다.” (판교하우징은 집 안이 훤히 보이는 구조 탓에 사생활 침해 우려로 분양 초기 미분양이 났다. 하지만 약 3년 만에 모두 팔렸다.)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를 맡아 2022년 준공된 일본 나고야 조형대학 건물. /프리츠커상 홈페이지

−판교하우징 같은 집을 대도시에 적용하기엔 초고층보다 토지 효율성이 떨어지지 않나.

“판교하우징은 3층인데 100가구니까 500명 정도 살고 있다. 5층 건물로 하면 1000명 정도 살 수 있다(그 정도면 충분히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사실 초고층 건물을 짓는 건 (건설 비용이) 싸기 때문이다. 설계도 굉장히 간단하다. 나라면, 그런 건물은 하루면 설계할 수 있다.”

−왜 사생활보다 커뮤니티를 중시하나.

“스승인 하라 히로시(도쿄대 명예교수) 건축가의 영향이다. 대학원 때 전 세계 마을을 찾아다녔다. 어디나 똑같이, 집은 커뮤니티 안에 있었다. ‘집과 커뮤니티는 어떤 관계여야 할까’라는 것이 내 연구 과제였다. 한국에선 수원에 갔는데 아쉽게도 전통적인 옛날 마을은 사라지고 없었다. 일본이 (일제강점기 때) 부쉈고, 나중엔 한국이 스스로 부쉈다.”

−한국에선 ‘적산가옥(敵産家屋·’적국이 지은 주택’이란 의미로 일제 시대 지은 집)’을 없애자는 주장도 많은데.

“적산가옥이 어떤 역사 속에서 나왔는지, 제대로 설명하고 남기는 편이 좋다고 본다. 한국인에겐 부끄러운 역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얼마나 나쁜 일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좋은 일만 남기는 게 메모리(추억)는 아니다. 일본은 히로시마의 원폭 돔(1945년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반파된 전쟁 유적)을 그대로 남겨놨다. 부수면 안 된다. (원폭을 떨어뜨린) 미군의 역사기도 하니까.”

−일본은 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많을까.

“건축물과 사회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작품을 프리츠커 측이 좋게 평가하는 듯하다. 예컨대 2013년 수상자인 이토 도요오씨는 ‘모두의 집’이라고, 모두가 함께 피난처로 살 수 있는 주택을 지었다.”

−왜 한국에선 수상자가 한 명도 안 나올까.

“한국은 한국 건축가들에게 제대로 설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온갖 제약과 규제에 묶여있다. 한국 건축가들이 불쌍하다. 자유도가 전혀 없다. 그러면서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자유롭게 건축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에서 유명한 건축물은 거의 외국인 건축가의 작품이다. 안도 다다오씨와 같이 말이다. 안도씨가 좋은 건축물을 만들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요지는 외국인에겐 자유로운 건축물을 지을 기회를 주면서 한국 건축가에겐 안 준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한국에도 이은경 이엠에이 건축사사무소 대표나, 최문규(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 가아건축 설립자와 같은 좋은 건축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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