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데이터 통신망(網)에서 중국이 점차 배제되고 있다.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해저 통신 케이블(해저케이블) 중 상당수는 과거 중국을 도착 지점으로 삼았지만 이제 중국을 피해 싱가포르·필리핀·일본·괌 등으로 행선지를 바꾸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정치·경제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중국을 인터넷 세상에서 고립시키려는 미국과 우방의 ‘물밑’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5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한때 중국은 국제통신의 ‘대동맥’인 해저케이블이 모이는 집적지였지만 앞으로 신설 예정인 해저케이블은 거의 대부분 중국을 거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변화의 배경엔 미·중 사이에 벌어지는 ‘해저 냉전’이 있다”고 보도했다. 해저케이블은 지역과 상관없이 이용자가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글로벌 기반 시설이다. 예를 들어 서울 사람이 미국 웹사이트에 접속할 경우 대부분 데이터가 해저케이블을 통해 오고 간다. 현재 세계에는 총길이 140만㎞에 달하는 해저케이블이 깔려 세계 인터넷 통신량의 99.4%를 책임지고 있다.

닛케이는 “2025년 이후에 미국 등과 아시아 간 신설될 예정인 1000㎞ 이상의 장거리 해저케이블 가운데 홍콩을 포함한 중국과 연결되는 건 3회선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에 싱가포르 7회선, 일본 4회선, 필리핀 5회선, 미국령인 괌 9회선 등이 신설될 예정인 것과 대조된다. 한때 중국이 인터넷 시장의 새 강자로 떠오른다는 기대감에 해저케이블 건설이 몰린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미·중 갈등 악화로 상황이 급변했다.

그래픽=김현국

기존의 설치분을 포함해도 미주 대륙과 이어지는 중국의 해저케이블은 적은 편이다. 중국 본토에서 미국 등과 이어지는 길이 1000㎞ 이상의 해저케이블은 2회선이고 홍콩은 16회선(신설 예정 포함)에 불과하다. 싱가포르(32)나 일본(29), 필리핀(22)보다 적고 괌(18)과 회선 수가 같다. 싱가포르·일본이 아시아의 데이터 거점으로 성장하는 반면, 14억명 이상 인구 대국인 중국은 데이터 케이블만 놓고 보면 작은 섬인 괌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한 셈이다. 정보의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성능 좋은 해저케이블이 가까이 있으면 다른 나라 웹사이트 등에 접속할 때 데이터 전송이 안정적이면서 속도도 빠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전 세계 해저케이블은 앞다퉈 중국으로 몰려들 분위기였다. 인구 대국인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데이터 접속량 급증이 예상되고 온라인 소비자도 늘어난다고 예상됐기 때문이다. 구글 등 미국 정보 기술(IT) 기업들은 중국의 잠재 고객을 잡기 위해 미국에서 홍콩으로 연결되는 해저케이블을 설치했고, 중국 통신 회사들도 막대한 설치 비용을 분담하며 환영했다. 예컨대, 2016~2020년에 신설된 31만㎞의 해저케이블 가운데 중국 기업의 비율은 19%로 미국(22%)과 거의 같은 규모였다. 중국이 곧 아시아의 ‘데이터 거점 국가’가 된다는 전망도 많이 나왔다.

2020년 반중(反中) 기조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클린 인터넷 계획’을 발표하면서 분위기는 반전했다. 이 계획은 통신 기반 시설 설치 시 중국 기업의 참여를 배제한다는 방침을 담았다. 이어 미 사법 당국은 2020년 구글·메타(페이스북 운영사) 등 빅테크 기업이 추진하던 로스앤젤레스(LA)와 홍콩 간 1만3000㎞ 길이 해저케이블 계획을 변경하라고 요청했다. 구글 등은 요청대로 홍콩을 배제하고 대만·필리핀으로 해저케이블을 연결했다. 이후 중국 본토와 홍콩은 해저케이블 설치 경로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세계은행이 추진한 남태평양 도서(島嶼) 지역 간 해저케이블도 지분이 많은 미국의 입김 탓에 중국과 연결하지 않았다.

2021~2025년에 건설됐거나 건설 예정인 해저케이블 46만㎞ 가운데 중국 기업의 비율은 8%로 대폭 감소해 미국(31%)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미 하원은 아울러 지난해 3월 자국 해저케이블 기술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해저케이블 통제 법안’까지 통과시키며 반중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한편으론 해저케이블 신설을 동맹 강화의 상징처럼 활용 중이다. 구글은 지난달 10일 총 10억달러(약 1조3600억원)를 투입해 하와이-괌-일본을 잇는 해저케이블 회선 둘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 DC에서 정상회담을 한 날 나온 발표다. 지난달 19일엔 미국 메타가 미국·필리핀 간 해저케이블 개통 행사를 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해저 신(新)냉전’에 중국은 마땅한 대항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구글·메타·넷플릭스·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미국 빅테크가 글로벌 인터넷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 중국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거액을 투입해 해저케이블을 증설한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이어지지 않은 해저케이블’은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인터넷 기업의 전문가는 “글로벌 인터넷 시장은 사실상 구글 같은 미국 빅테크가 과점한 상황”이라며 “미국 정부의 의도대로 미국 빅테크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중국이 없는 글로벌 인터넷망을 완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저 통신 케이블

인터넷에서 데이터가 오가는 ‘고속도로’ 역할을 하는 물리적 기반 시설. 세계 전역에 529회선, 약 140만㎞에 달하는 해저케이블이 평균 수심 3600m 해저에 깔려 있다. 이 해저케이블들이 세계 인터넷 통신량의 99.4%를 책임진다. 통상 데이터 센터가 몰린 거점 도시를 연결한 뒤 주변 국가·도시는 다시 해저나 육로로 연결하는 방식을 쓴다.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너는 장거리 해저케이블은 까는 데 수천억 원 이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