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인터넷 기업 네이버의 일본 내 관계사로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을 운영하는 라인야후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했다고 8일 밝혔다. 이데자와 다케시(出澤剛) 사장은 이날 열린 결산설명회에서 “대주주인 위탁처(네이버)에 자본의 변경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에 지분을 매각해달라고 공식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요구가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에 따른 조치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는 “총무성의 행정지도는 ‘위탁처(네이버)와 자본적인 지배 관계에 대한 재검토’”라며 “말하자면 라인야후가 대주주인 네이버에게 (데이터 관리를) 위탁하면서 위탁처인 대주주에 강하게 관리를 요구할 수 있겠냐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자와 사장은 “총무성 행정지도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라인을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키워낸 주역으로 꼽히는 신중호 최고상품책임자(CPO)도 사내이사에서 물러나기로 해 이사회가 전원 일본인으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한국의 기술력으로 개발돼 일본의 국민 메신저가 된 라인에서 한국 색깔을 완전히 지워내려는 일본 측의 작업이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라인야후는 네이버와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절반씩 지분을 가진 회사로, 일본 최대의 포털 ‘야후’도 서비스한다. 지난해 11월 네이버가 위탁 관리해온 개인정보의 유출 사고를 문제 삼은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네이버가 소프트뱅크로부터 지분 매각을 요구받았다는 사실이 그간 일본 언론 등을 통해 알려져왔다. 이와 관련해 일본 총무성 관계자가 국내 언론에 “라인야후에 대한 행정지도는 지분 매각 강요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라인야후 측이 일본 정부가 개입했음을 직접 밝힌 것이다.
이날 결산설명회에서 이데자와 다케시 사장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많은 이용자에게 폐를 끼친 점을 사죄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대주주인 소프트뱅크와 네이버가 (지분 매각·매입과 관련해) 협의 중”이라며 “(네이버에 대한) 우리의 요청은 소프트뱅크가 머저리티(majority·과반수 이상)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이데자와 사장은 “손 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보고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도 했다. 라인야후와 소프트뱅크가 ‘네이버가 라인야후의 지분을 팔고 경영권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는 데 같은 입장이라는 의미다.
일본 정부는 작년 11월 라인의 고객 정보를 관리하는 네이버클라우드가 해킹 당해 약 52만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자, 라인야후를 통해 네이버 측 지분 정리를 요구해왔다. 라인야후의 최대 주주는 지분 64.5%를 보유한 지주회사 ‘A홀딩스’다. 네이버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A홀딩스 지분을 50%씩 갖고 있어, 한 주만 팔아도 경영권을 잃게 된다.
네이버 지분 매각 여부와 상관없이, 라인야후는 네이버와의 기술 협력을 사실상 모두 끊는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데자와 사장은 “네이버와 위탁 관계를 순차적으로 종료해 기술적인 협력 관계에서 독립할 것”이라며 “한국 네이버와 연결된 네트워크도 차단하며, 네이버와 위탁은 앞으로 ‘제로’로 할 것”이라고 했다. 라인야후는 올해 약 150억엔(약 1300억원)을 투자해, 독자적인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만들 계획이다.
이사회 멤버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신중호 CPO의 사내이사직 퇴진도 이날 발표됐다. 네이버 출신인 신 CPO는 13년 전 라인을 일본에 세운 뒤, 줄곧 운영을 책임져온 인물로, ‘라인의 아버지’로 불린다. 2022년 일본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은 상장사 임원으로 조사되는 등 일본에서 샐러리맨 신화를 일군 기업인으로 조명돼왔다. 신 CPO도 이날 결산설명회에 참석, 이데자와 사장의 옆에 앉았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을 진 경질로 해석된다. 다만 현 직위(CPO)는 유지한다. 이데자와 사장은 “경질로는 보지 말아 달라. 시큐리티 강화 측면에서 사내이사를 줄이고, 사외이사를 늘리자는 논의에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라인야후의 이사회는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될 전망이어서 라인야후 내 한국 측 영향력은 급속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는 이날 오전에 예정에 없던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라인야후 발표가 사전에 네이버와 충분한 조율이 없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네이버 내부에선 “라인야후의 ‘네이버 지우기’가 이미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네이버 출신의 신 CPO가 사내이사에서 퇴임한 데 이어 소프트뱅크에 지분까지 넘기게 되면 라인야후에 대한 네이버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네이버로선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라인야후 이사회마저 네이버의 배제를 요청하는 상황에선 소프트뱅크와 협상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최대한 많이 받는 게 실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라인야후 운영에서 네이버의 기술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만큼, 네이버로서는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이런 부분을 고려해 충분한 값을 받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앞서 지난 3일 실적을 발표하며 “일본 총무성의 요구는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중장기적인 사업 전략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우리 기업이 해외 사업과 해외 투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두고 대응할 예정”이라며 “네이버의 의사결정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네이버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했다.
☞라인(LINE)
2011년 당시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NHN 재팬’이 개발한 메신저. 일본 내 이용자가 9600만 명으로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불린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기지국 파괴로 통신이 먹통이 되는 일을 겪은 후, 이해진 당시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재난 상황에서도 연락할 수 있도록 개발을 지시했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 일본인들은 구조를 요청하고 생존을 확인하는 ‘핫라인’으로 라인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