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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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음악계 거장 히사이시 조(74)/ontomo-mag.com

“작곡가 히사이시 조와 (소속사) 주식회사 원더시티는 히사이시가 작곡한 곡을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용하거나 편곡하는 것을 일절 허가하지 않습니다. 현재 허가 없이 히사이시의 곡을 편곡해 공연하는 행사가 세계 각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는 작곡가 저작권에 대한 침해이며,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난달 26일 일본 유명 영화음악가 히사이시 조(74)가 페이스북 등에 공개한 성명입니다. 히사이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전담 작곡가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2013년작 <바람이 분다> OST로 이듬해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통산 여덟 번째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야말로 일본 영화 음악계에서 ‘거장’이라 불리는 인물이죠.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2004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ハウルの動く城)' 일본 포스터.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주제가 '인생의 회전목마'가 한국에서도 유명하다./스튜디오 지브리

1999년 기타노 다케시 감독·주연작 <기쿠지로의 여름> OST ‘summer(여름)’, 2004년 미야자키 제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 등이 대표곡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05년 한국의 연극 원작 전쟁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OST도 그가 작곡했습니다.

그런 히사이시가 해외에서 자신의 이름을 도용해 열리는 콘서트들에 대해 ‘엄중 경고’를 날린 것입니다. 그가 성명에 덧붙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지난달 26일 일본 영화음악계 거장 히사이시 조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올린 성명. "최근 허가 없이 히사이시의 곡을 편곡해 공연하는 행사가 세계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며 "이는 작곡가 저작권에 대한 침해로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고 적혔다./페이스북

“공연명에 히사이시의 이름을 내걸어 관객 입장에선 히사이시 본인이 관여한 연주회처럼 보일 수 있으나, 당사(히사이시 소속사 원더시티)는 이들에 대해 승인한 적이 없습니다. 작곡가의 정식 허락을 얻어 저작권법에 준거하는 악곡 이용이 이뤄지길 거듭 호소합니다. 악곡 이용자와 저작권자 쌍방의 합의 아래 정당하게 이용하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그런데 최근 업계에선 히사이시의 이런 경고가 사실상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히사이시 조 오케스트라 콘서트 장면/spice.eplus.jp

지난 28일 기준 국내 한 티켓 예약 플랫폼에 ‘히사이시 조’를 검색하면, 오는 7월까지 전국 각지에서 예정된 관련 콘서트 11건이 나옵니다. 표값은 최저 5만원에서 최고 13만원. 콘서트 설명란엔 “영화보다 빛나는 영화 음악, 그 여운을 다시 한 번 (느껴보세요)! 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든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담당하며,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애니메이션 작곡가이자 지휘자 히사이시 조”라고 적혔죠. 근데 히사이시 측은 이러한 공연에 대해 단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 FNN(후지뉴스네트워크)은 지난 23일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이른바 ‘지브리 콘서트’들에 저작권법 위반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23일 일본 FNN(후지뉴스네트워크)가 보도한 '한국에서 무허가 히사이시 조 콘서트 횡행, 지브리 인기 편승?…' 제하 기사/FNN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한국 등 해외에서 히사이시의 음악을 사용하려는 경우 해당 국가 저작권 협회에 ‘악곡 이용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론 저작권 협회에 저작권료를 납부하는 것만으로는 권리관계를 정리할 수 없다는 게 이들 지적입니다. 히사이시의 원곡을 편곡하거나 공연에서 ‘히사이시 조’란 이름을 사용하려면 저작권자 본인의 허가가 반드시 필요하단 얘기죠.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후쿠이 겐사쿠(福井健策) 변호사는 “한국판 JASRAC(일본음악저작권협회)인 한음협(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악곡 이용을 신청하고 저작권료를 납부하더라도 편곡 허가가 나오진 않는다”며 “애초에 편곡권은 저작권 협회에 위탁되지 않아 이들이 편곡 허가를 내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서 열리는 지브리 콘서트에 ‘히사이시 조’란 이름이 내걸리는 것에 대해, “저작권 침해와 (이름) 부정 사용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죠.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왼쪽)와 그의 전담 영화음악가 히사이시 조/인스타그램

국내 지브리 콘서트 주최사는 저작권료 납부 등 의무를 다했기에 관련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히사이시 측이 “히사이시의 이름을 단 (해외) 연주회에 대해 승인한 적이 없다”고 밝힌데다 현지 매체들까지 이 이슈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예정된(혹은 이미 열린) 지브리 콘서트들은 저작권법 위반이란 의혹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입니다.

한 현지 네티즌은 “(문화 선진국) 한국에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라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비영리 목적이더라도 저작권 침해 여지가 다분한데, 더군다나 영리 목적이라면 더 엄하게 문책받아 마땅하다”고 전했습니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5월 29일 마흔 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일본 영화음악계 거장 히사이시 조가 최근 해외에서 열리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콘서트들에 날린 경고, 특히 이는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38~39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외국인에 음식값 더받고, 숙박세 과금하고… ‘접대 문화’ 사라지는 일본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5/15/5OUMX3BLY5CTHIDJTF2ZPGTB5I/

‘자니즈’ 간판스타, 30년 몸담은 소속사 탈퇴한 이유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5/22/IWKMWJAFMNH73KXULJ2ACAMX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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