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재선(再選)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주요 인사들이 기시다 총리와 거리를 두는 가운데 정적(政敵)으로 꼽히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사실상 총리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시바 시게루, 고이즈미 신지로, 모테기 도시미쓰, 고노 다로, 다카이치 사나에 등 차기 총리를 노리는 정치인들도 현직인 기시다 총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는 9월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24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스가 전 총리는 23일 한 온라인 방송에 나와 “(기시다 총리가 정치자금 스캔들의) 책임을 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고, 국민의 불신감이 상당하다”며 “이대로라면 자민당이 과반수 의석을 뺏길지도 모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새로운 리더가 나와야 하느냐는 질문에 스가 전 총리는 “그렇다”며 “국민이 ‘자민당이 바뀌었다’고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마이니치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각각 17%와 23%에 불과했다. 이런 최악의 지지율 탓에 자민당은 지난 4월 중의원(하원) 보궐선거 3곳과 5월 시즈오카현 지사 보궐선거에서 한 곳도 이기지 못하고 전패(全敗)했다.
일본 차기 총리는 오는 9월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사실상 결정된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현재는 자민당)의 총재가 관례적으로 총리로 선출되기 때문이다. 3년 임기의 자민당 총재는 통상 1·2차 선거를 거쳐 뽑는데, 2차는 국회의원만 투표권을 갖기 때문에 파벌 간 합종연횡이 당락의 열쇠다. 3년 전 총재 선거 때 기시다 총리는 기시다파·아소파·모테기파 등 3개 파벌의 연합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최근 아소파의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와 모테기파의 모테기 간사장은 기시다 총리를 빼고 둘만 별도로 3시간 30분 회동했다. 이후 모테기 간사장은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며 “도전하지 않으면 새 시대는 오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차기 총리 도전을 공식화한 것이다.
자민당 주류 3개 파벌이 분열 조짐을 보이자 비주류의 리더격인 스가 전 총리는 이달 초 가토 가쓰노부 전 후생노동상(모테기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무파벌),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인 다케다 료타 전 총무상(니카이파),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이었던 하기우다 고이치 전 정조회장(아베파) 등 유력 정치인 4명과 만났다. 일본 언론들은 “비주류의 차기 총리 후보를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이 이날 발표한 차기 총리 후보 선호도에선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23%로 1위,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15%)이 2위였다. 이어서 스가 전 총리(8%), 다카이치 경제안전보장상(7%), 고노 다로 디지털상(6%),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6%), 기시다 총리(6%)의 순이었다. 모테기 간사장은 1%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