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가운데 미국·일본 간 안보 협력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트럼프 시대의 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일본 정부가 각종 안보 협력을 문서로 확정해 쉽게 뒤집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보도하고 있다. 다자간 군사 협력의 필요성을 낮게 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해도 쉽게 바꾸지 못할 틀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28일 도쿄에서 ‘2+2′(외교·국방장관) 회의를 열고 이전의 양국 안보 협력을 한 단계 격상한 두 가지 틀을 결정했다. 연내 주일 미군에 군사 지휘권을 보유한 통합군 사령부를 신설하고, 미·일 동맹의 핵 억지력을 명문화한 공동 문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통합군 사령부를 창설하는 것은 1951년 미·일 안전보장조약 체결 이후 주일 미군에 생길 가장 큰 변화다. 현재 주일 미군은 약 5만명에 달하지만, 지휘권은 일본에서 7500km 떨어진 하와이의 인도·태평양사령부에 있었다. 현재 도쿄 외곽의 요코타에 있는 주일미군사령부(USFJ)는 일본 정부와 연락을 취하는 사무소 역할만 하고 있다.
주일 미군 통합군 사령부는 전쟁과 같은 유사 상황에서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일본은 연내 육상·해상·항공 자위대를 일원적으로 지휘하는 통합작전사령부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통합군 사령부와 일본 통합작전사령부는 서로를 파트너로 두고, 평시는 물론이고 전시에도 공동 군사 작전과 지휘를 펼 예정이다.
양국의 외교·국방장관 4인은 또한 이날 핵 억지력을 주제로 협의했다. 핵 억지력은 동맹국 일본이 적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핵 전력으로 보복하는 개념이다. 미·일은 그간 외교·국방 담당 실무자급에서 정기적으로 핵 억지력을 논의해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2회의에서 양국 장관들은 올 연말까지 핵 억지력 공동 문서를 작성하기로 했다”고 했다. 예컨대 일본이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미국이 제3국에 대해 핵 보복을 감행할지 여부 등을 담은 양국 간의 공동 합의 문서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 아사히신문은 “양국이 서둘러 안보 협력을 확정 짓는 배경엔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자간 안보 협력을 중시한 바이든 정권과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정반대인 셈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통합군 사령부 설치는 70년에 걸친 일본과의 군사 관계에서 가장 큰 개선”이라며 “어떤 리더가 등장해도, 이 훌륭한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익명의 한 일본 방위성 관료는 아사히신문에 “합의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빨리 결정하고 싶은 것이 일·미 양국 정부의 공통 인식”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