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시(市)에서 원폭 투하일인 9일 열리는 평화 기념 행사에 일본의 우방인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 국가가 이례적으로 일제히 보이콧을 선언했다. 나가사키시가 주요 국가의 주일(駐日) 대사들을 초청하면서 러시아·벨라루스·이스라엘 3국은 제외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동일하게 취급한 데 대해 서방국가들이 집단 항의한 것이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스즈키 시로 나가사키 시장은 행사를 하루 앞둔 8일 “이스라엘을 초대하지 않는다는 판단엔 변경 없다”고 말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집단 항의에도 이스라엘을 초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공격을 받은 나가사키는 매년 원폭이 투하된 8월 9일에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위령 평화 기념식’을 열고 있다. 2년 전 행사 때는 G7(7국) 가운데 독일·일본을 제외한 5국의 주일 대사가 모두 참석했다.
중동 분쟁의 불똥이 튄 건 지난달이다. 나가사키시가 초청 대상에서 이스라엘을 뺀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19일, G7 중 일본을 제외한 6국과 유럽연합(EU) 대사가 연명으로 스즈키 나가사키 시장에게 “이스라엘을 러시아, 벨라루스 같은 국가와 똑같이 취급하면 오해를 부를 것”이라는 서한을 보냈다. 이스라엘이 초대받지 못하면 불참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하지만 스즈키 시장은 “결코 정치적인 이유로 초대하지 않은 게 아니며, 평온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기념 행사를 원만하게 치르기 위해서”라며 “(서방국가들이) 우리의 진의(眞意)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주일 미국 대사관 측은 “앞서 6일 (역시 원폭이 투하됐던) 히로시마시에서 평화 기념 행사에는 이스라엘 대사가 참가했지만 어떤 혼란도 없었다”며 “평화 행사를 정치 문제화하는 (나가사키시의) 행동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G7의 보이콧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현재 주일 호주 대사도 불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전임 윤덕민 대사가 귀국했고 신임 박철희 대사는 9일에야 입국하기 때문에 일정상 나가사키 행사에는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논란에서 발을 뺐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기념 행사에 누구를 초대할지는 주최자인 나가사키시가 판단했다”며 “지방정부 행사에 각국 외교단이 참석하는 문제에 대해 중앙정부는 코멘트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