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 14일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한다며 연임 포기를 발표한 후 일본 정치권에선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차기 총리를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 언론들은 “역대 자민당 총재 선거 중 가장 치열한 선거가 될 전망”이라며 “전국시대(戰國時代)와 같은 정치적 합종연횡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내각제인 일본에선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며 현재 제1당은 자민당이다. 선거는 다음달 말쯤 치러질 예정이다.
현재 출마를 선언했거나 거론되는 후보는 고노 다로(61) 디지털상, 가미카와 요코(71) 외무상, 하야시 요시마사(63) 관방장관, 사이토 겐(65) 경제산업상, 다카이치 사나에(63) 경제안보상 등 현직 관료와 이시바 시게루(67) 전 자민당 간사장,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 고바야시 다카유키(49) 전 경제안보상, 모테기 도시미쓰(68) 간사장, 노다 세이코(63) 전 총무회장 등이다. 기시다는 15일 각료(장관) 회의를 열고 “여기 있는 각료 가운데도 총재 선거에 이름을 올릴 정치인이 있을 것”이라며 “직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당당하게 논전(論戰)을 벌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일본은 현직 총리가 차기 총재 선거에 나가면 내각 일원인 각료들이 관례에 따라 후보로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이날 본인이 불출마 선언으로 길을 연 만큼, 오히려 각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민당의 총재 선거를 흥행시켜 달라는 의미로 발언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각료들은 앞다퉈 차기 총재 도전 의사를 밝혔다. 고노 디지털상은 “(외무상·방위상 등) 많은 각료를 경험했다. 언젠가 이 경험을 살릴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미카와 외무상은 “심사숙고한 다음, 결단해 행동에 옮길 각오(가 됐다)”라고 했다.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다음번 총리가 국가관을 명확히 밝히면, 모두 그를 중심으로 힘을 합칠 것”이라고 했다. 사이토 경제산업상은 “주변에서 ‘총재 선거에 나가라’는 조언이 많이 오는데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날 고이즈미 전 환경상과 고바야시 전 경제안보상은 출마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合祀)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보수 성향 자민당 당원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다카이치 경제안보상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후보들에게 총재 선거의 첫 관문은 입후보 조건인 ‘국회의원 추천인 20명 모집’이다. 자민당 국회의원(372명)에게 추천인 서명은 중요한 정치 행위이며, 이 과정은 매우 신중히 진행된다. 20명의 추천인을 모을 수 있는 후보는 많지 않다. 일본 언론들은 “안정권은 모테기·고이즈미·고바야시·고노 등 네 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20명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고 전망하고 있다. 모테기는 본래 50여 명의 소속의원을 둔 모테기파의 수장이고, 고이즈미는 부친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후광 덕을 볼 것이란 전망이다. 고노는 3년 전 총재 선거 때 기시다에 아깝게 진 ‘2위’라는 관록이 있다. 고바야시는 4선 이하 젊은 의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내 ‘세대교체론’을 주도 중이다.
‘차기 총리 선호도’ 여론조사를 하면 줄곧 1위에 오르는 이시바 전 간사장도 당내 입지가 약해 20명을 모으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TV아사히는 “이시바가 최근 주최한 ‘공부회’에 국회의원 여덟 명 정도만 왔다”고 했다. 이시바가 추천인 확보를 위해 노다 전 총무상 등 다른 후보와 협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3년 전 총재 선거 3위였던 다카이치도 주변에 국회의원들이 모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알려졌다. 다카이치 측은 같은 보수 성향인 고바야시와 손을 잡는 ‘보수 단일화’를 모색 중이다.
국민의 관심이 자민당 총재 선거에 쏠리면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조바심을 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던 자민당이지만, 차기 선거의 흥행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신임 총리를 앞세워 곧바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보궐선거에서 연이어 자민당을 누르고 승리해 정권 교체를 노리던 입헌민주당으로선 기시다의 연임 포기가 예상 밖의 악재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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