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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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가 약 3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각제인 일본에선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므로 현재 제1당인 자민당 총재선은 곧 총리 선거와 같습니다. 이번 선거엔 역대 가장 많은 10여 명의 후보가 출마해 여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펼칠 전망인데요. 이 같은 난전(亂戰)이 촉발된 계기엔 지난달 14일 현직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불출마 선언이 있었습니다.
기시다는 당시 “자민당의 변화를 위해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말 불거진 당 의원들의 불법 정치자금 조성 문제로 추락한 국민 신뢰도를 책임지고 연임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이후 자민당 내부에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우선 같은 기시다파(派) 소속이었던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63) 관방장관과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71) 외무상이 ‘1파벌 1후보’란 관례를 깨고 각자 출격 채비에 한창입니다. 하야시 관방장관은 3일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치로 전력으로 (당)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며 입후보 의사를 표명했고요. 가미카와 외무상은 입후보에 필요한 20명의 추천 의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지난 1일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습니다.
몇 차례 레터와 지면 기사로 소개해 드렸듯, 3년 전 선거에서 기시다 현 총리에 맞서 후보를 단일화했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전 자민당 간사장과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43) 전 환경상, 고노 다로(河野太郎·61) 디지털상도 최근 각자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이번 총재선에 나서는 후보 대부분이 파벌이나 연합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각자 정책과 정치력으로만 승부하겠단 의지를 드러낸 셈입니다.
기시다의 불출마 선언이 없었다면 이번 선거는 과거와 비슷하게 현역인 기시다와 비(非)기시다 진영 간 맞대결로 흘러갔을 확률이 높습니다. 비기시다 진영은 기시다의 실정(失政)을 물어뜯고, 기시다는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는 뻔한 양상이었을 것입니다. 일본 국민 대다수가 자국 정치에 무관심한 건 이런 레퍼토리가 수십년 째 반복돼왔음과 무관치 않습니다.
하지만 기시다가 연임을 포기한 가운데, 최근 현지 여론조사에선 40대 ‘젊은 피’ 이미지를 앞세운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차기 자민당 총재 선호도 1위를 기록하면서 고일 대로 고인 자민당 지도부에도 ‘세대교체’의 가능성이 싹트고 있습니다.
같은 파벌 출신 의원들이 동시 출격하는 이례적 사태에도 기시다의 공(功)이 컸다는 평가입니다. 지난해 자민당 의원들의 비자금 조성 문제는 당내 최대 규모였던 아베파를 비롯해 주로 파벌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불거졌어요. 이에 기시다는 올 1월 수장으로 있던 본인의 파벌을 직접 해산했고, 아베파·니카이파 등도 속속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현재 존속 중인 파벌은 사실상 아소 다로(麻生太郞·84) 부총재가 이끄는 아소파 하나뿐입니다.
지난달 26일 출마 선언한 고노 디지털상이 아소파 소속인데, 파벌 정치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불신감을 감안하면 고노 역시 여기에 발목을 잡혀 올해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실 거란 관측이 많습니다. 고노 디지털상도 이러한 우려를 인지했는지 지난달 31일 요미우리TV 인터뷰에서 “총리에 취임하면 파벌에서 탈퇴하겠다”고 말했죠.
과거 자민당 총재선에선 의원 개개인이 지지 후보를 결정하기보다, 소속 파벌의 의견을 따라 표를 몰아주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파벌 결속이 허물어지면서 의원들도 보다 자유롭게 지지할 후보를 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게 닛테레뉴스 등의 설명입니다. 이에 같은 파벌 출신이더라도, 과거 합심해 후보를 단일화했던 이들이라도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각축전을 펼치게 됐다는 것이죠.
파벌을 넘어, 자민당의 아이콘이자 최장기간 재임 총리였던 아베 신조(安倍晋三·1954~2022)를 따르던 보수파 의원들도 최근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정책을 계승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3) 경제안보담당상은 직전 선거에서 기시다 현 총리에 이은 2위를 차지해 당시 도쿄 정가를 놀라게 했는데요. 이번 선거에도 출마를 준비 중이지만 20명 추천인 확보에 예상치 못한 고전을 하면서 공식 입후보 선언이 오는 9일로 미뤄진 상황입니다.
아베파 출신 의원들은 다카이치가 아닌, 지난 19일 일찍이 출마 선언을 한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50) 전 경제안보상에게 보다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지난달 28일 도쿄 아카사카에서 후쿠다 다츠오(福田達夫·57) 전 자민당 총무회장을 중심으로 한 4선 이하 의원들의 모임이 열렸는데, 참석 의원 20여 명 중 대부분이 “고바야시를 지지한다”고 밝혔고 “고이즈미를 지지한다”는 이들도 일부 있었다고 합니다.
고바야시·고이즈미 모두 올해가 첫 총재선 출마로, 이들의 ‘젊은 피’ 이미지를 통해 당 이미지를 쇄신해야 한단 의원들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뉴스였습니다. 게다가 과거 아베와 가까웠던 가토 가츠노부(加藤勝信·69) 전 관방장관, 아오야마 시게하루(青山繁晴·72) 참의원 의원도 최근 출마 의욕을 드러내 “자민당 내 보수파가 분열하고 있다”(지지통신)는 것이 현지 언론들 분석입니다.
기시다가 차기 총리에게 남긴 국정 과제로는 1970~90년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들의 귀환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불붙은 원전 재가동 정책 등이 꼽힙니다. 기시다와 윤석열 대통령이 다져놓은 회복된 한일관계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가 관건이죠.
역대급 난전이 전망되는 올해 선거에서 이러한 과제 해결의 적임자로 선택될 사람은 누굴까요. 오는 27일 투표날까지, 방구석 도쿄통신과 함께 선거 판도를 추적해보시죠.
9월 4일 54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3주 앞으로 다가온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판도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기시다의 불출마가 없었다면 뻔했을 선거 양상이 그간 볼 수 없던 모습으로 긴박해지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52~53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펀쿨섹’ 고이즈미는 자민당을 쇄신할 수 있을까 ☞ 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4/08/21/GJSLFDDQJVBGDFEZKZOIHKBNT4/
나가사키는 왜 원폭 추도식에 이스라엘 초대하지 않았을까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8/28/PAC3FH7V6VDKPPT7ABHNKKGC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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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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