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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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은 일본 공휴일 ‘경로(敬老)의 날’이었습니다. 덕분에 추석 연휴 미뤄놨던 일본발(發) 이메일 답장들을 하루 더 미룰 수 있었네요.
이날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자료 하나를 깊게 파볼까 합니다.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 추계였는데요.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3625만명으로 지난해보다 2만명 증가해 역대 최다를 갱신했습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사상 최고인 29.3%. 이탈리아(약 24.6%)와 포르투갈(약 24.5%) 등 주요국을 웃돈 세계 1위입니다.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2차 베이비붐 세대(1971~74년 출생자)가 65세 이상이 되는 2040년엔 이 수치가 34.8%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날 총무성 자료 중 주목할 점은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취업자 수였습니다. 914만명으로 역대 최다입니다. 모든 취업자 7명 중 1명(약 13.5%)은 고령자란 뜻입니다. 전체 고령자로 따지면 4명 중 1명 이상이 일하고 있습니다. 65~69세에 한하면 2명 중 1명(약 52%)으로 훨씬 많았습니다.
“노동시장의 일손 부족 등으로 고령자들이 활약할 장이 늘어났다. 상승세는 계속될 걸로 보인다”는 게 총무성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일손 부족 문제가 심각한 일본 의료·복지 업계에서 일하는 고령자 수는 10년 전의 2.4배인 107만명이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고령자가 일할 환경도 갈수록 잘 갖춰지고 있다”며 “일하는 고령자들의 열의는 일본 경제의 저력”이라고 전했습니다.
일찍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고령 취업자 수가 증가하는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이에 따라 사회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요. 일본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경제재정백서’는 고령자에 대해 “국제적으로 봐도 건강하고, 오래 일하겠다는 의욕도 강하다”고 적었습니다.
70세 이상이 일할 수 있는 기업 비율은 2022년 기준 약 40%로, 최근 10년 새 두 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정년이 65세를 돌파한 기업도 2012년보다 12%p 오른 전체 25%였어요. 일본 정부는 2013년 기존 60세였던 법정정년을 65세로 연장했는데, 약 10년 만에 기업들이 앞다퉈 정년 늘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미에현 욧카이치(四日市)시에 소재한 목재 판매 기업 ‘K&K 코야마’ 인사 담당자는 지난달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고령자들은 신입사원 교육에 능숙한 등 전력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2021년 고용 나이 상한을 없앤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 가전 양판점 ‘노지마’의 타지마 유타카(田島穣) 이사도 “나이로 일의 한계를 정하는 건 ‘인생 100년 시대’에 맞지 않는다. 고령자를 활용하지 못하는 건 회사의 손실”이라 했죠.
대개 정년을 넘겨서도 일하는 고령자들의 경우 ‘재고용’을 전후(前後)로 임금이 크게 줄어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근년에는 이 저하폭이 눈에 띄게 축소하고 있다고 지난달 20일 니혼게이자이가 보도했습니다. 일본 내각부가 올해 실시한 조사에서 정년 후의 임금이 정년 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던 기업 비율은 전국 15%로, 5년 전보다 5.5%p 증가했습니다. 임금이 60% 아래로 떨어진 기업은 전체 10%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정년 자체를 연장할 수도 있지만, 인건비 증가를 고려해 재고용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이 아직은 더 많다고 니혼게이자이는 덧붙였습니다. 다만 정년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이 기업 재정을 악화시켰느냐를 두고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자료가 없다고 합니다. 올해 경제재정백서엔 “고령자 추가 고용으로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는 있지만, (이들의 활약으로) 생산성이 개선돼 수익에 대한 악영향이 억제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쓰였습니다. 오히려 일하는 시니어들의 소득 증가로 소비가 확대해 경기(景氣)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현지 매체들 분석입니다.
최근 한국에선 세대별로 보험료 인상 속도를 차등화하는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화제인데요. 일본에도 비슷한 소식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지난 13일 각의 결정한 ‘고령사회대책’ 개요엔 “일하는 고령자의 증가를 근거로 ‘재직노령연금’ 제도를 재검토한다”는 내용이 적혔습니다. 일본 재직노령연금 제도는 임금과 후생연금 합이 월 50만엔(약 470만원)을 넘으면 연금 지급액이 깎이는 구조입니다. 고령자 취업자 수가 수십년 째 전년을 웃돌아 역대 최고를 갱신하는 상황에서, 고령자들이 연금 삭감을 피하기 위해 유급 노동을 피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를 손보겠단 의미였습니다. 실제로 일본 노무사 사무실에는 50~60대 직장인들로부터 “월수입이 얼마까지면 연금이 줄지 않는지 알려달라”는 문의가 많다고 합니다.
얼핏 생각해선, 정부가 연금이 깎이는 소득액 기준을 낮추겠단 계획으로 들리실 수 있는데요. 그 반대입니다. 해당 제도를 축소하거나, 아예 없앨 수 있단 얘기입니다.
“(재직노령연금 제도는) 오래 일하는 고령자들에게 늘 불합리해왔다”는 것이 관련 정부 회의에 참석한 일본 미즈호 리서치&테크놀로지스 후지모리 카츠히코(藤森克彦)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된 ‘고소득자 우대’란 비판에는 “출연(出捐)한 보험료에 걸맞은 급부를 실시하는 건 사회보험 원칙”이라며 “본래 원칙에 따른 급부로 되돌리는 것이지, 우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고령자 취업을 챙기는 배경엔 단연 저출산 심화로 인한 인력난 문제가 있고요. 나아가서는 사회보장제도의 지속성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60세 이상 국민이 계속 일해 후생연금 보험료를 내면 연금 재정 안정성도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걸맞게 고령사회대책 개요에는 75세 이상의 이른바 ‘후기 고령자’ 중 의료비의 30%를 직접 부담하는 대상자를 넓히겠다는 계획도 담겼어요. 지금까지 주로 ‘현역 세대’가 지탱해 온 사회보장제도를 연령에 무관하게 부담 능력에 따라 지탱하도록 하는, 이른바 ‘전세대형 사회보장제도’로 전환하겠다는 뜻입니다.
최근에는 내각 경제 자문 회의에서 ‘고령자’의 정의를 고쳐야 한단 의견도 나왔다고 합니다. 지난 5월 23일 열린 회의에서로, 한 민간 자문위원이 “늘어나는 건강 수명을 고려해 (현재 ‘65세 이상’인 고령자 정의를) 5세 늘리도록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본노년학회도 올 6월 보고서에서 “의사 등 의료계 연구자들의 분석에 따라 고령자 정의를 ‘75세 이상’으로 고쳐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매년 ‘체력·운동 능력조사’를 통해 65~79세 국민의 악력과 윗몸일으키기 등 6개 종목 수행 능력을 측정하고 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던 2021년을 제외하면 대부분 상승세였다고 합니다.
예컨대 ‘6분간 보행거리’ 측정에서 70~74세 국민의 수행 능력은 남성 605m, 여성 569m(2022년 기준)였는데요. 이는 약 20년 전의 65~69세 국민 수행 능력(남성 601m, 여성 570m)과 비등한 수준입니다. 고령자들의 체력·운동 능력이 21세기 들어 다섯 살쯤 젊어졌다는 거죠.
만약 일본 정부가 규정하는 고령자의 나이 기준이 높아지면, 연금 지급이나 간병보험 서비스 이용 개시 연령이 덩달아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일본 고령자 취업 환경에 대해 설명해드렸는데요. 다음으론 최근 일본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상반된 모습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15일 “일하는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조기 은퇴’ 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현지 여론조사 업체인 퍼솔종합연구소가 최근 15~69세 취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다룬 기사였는데요.
이 조사에서 ‘몇 살까지 일하고 싶은가’란 물음에 20대 남성들 평균 답변은 ‘58세’, 30대 남성들은 ‘62.4세’였습니다. 최초 조사였던 2017년엔 각각 63.8·66.6세였는데 모두 네 살가량씩 줄었습니다.
또 20대 남성 중 ‘50세 이하에 은퇴하고 싶다’는 응답 비율은 29.1%로, 2017년 조사에서(13.7%)보다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30대 남성 중에서도 ‘55세 이하’란 응답이 28.1%, 마찬가지로 2017년보다 두 배 증가했죠.
20~30대 여성이나 40대 이상 남·녀들의 응답은 직전과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연구소 관계자는 “20~30대 남성층에서 특이하게 조기 은퇴를 희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고령자 취업 환경이 개선되고 정년도 오르는 추세에 이들은 어째서 조기 은퇴를 바랄까요. 이유를 묻는 문항엔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공통되게 가장 많았습니다.(20대 29.9%, 30대 31.8%) 이어선 “가족이나 친구와의 시간, 취미 등 사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응답이 있었습니다.
“은퇴 이후 생활을 위한 저축을 충분히 해놓았다”고 설명한 응답자는 20대 중 13.8%, 30대 중 14.6%였습니다. 모두 직전 조사에서보다 5%p 이상씩 올랐어요. 주식 투자 등 각자 자산 운용을 철저하게 해왔거나, 맞벌이 세대가 늘면서 ‘반드시 남성만 가계를 지탱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퍼진 영향이라고 현지 매체들은 분석합니다.
카네모토 마리(金本麻里) 퍼솔종합연구소 연구원도 “(젊은 남성층의)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 건 아니다”라며, “‘사생활 중시’ 의향의 확산이나 최근 일본 노동 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장래를 그리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죠.
이는 한국에서도 5~6년 전쯤 유행한 미국발 사회 현상인 ‘파이어족(FIRE族)’ 유행 여파라는 관측입니다. ‘파이어’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경제 자립, 조기 은퇴)’의 준말인데요. 일찍이 재테크 등으로 자산을 모아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이를 밑천으로 은퇴를 앞당겨 자유로운 삶을 살겠단 겁니다. 글로벌 주가가 약세였던 코로나 팬데믹 시절 주식 등을 구매해 후에 차익을 본 젊은 층 사이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파이어족은 다분히 미국인다운 발상이다. 미국은 일본처럼 사회보험 제도가 잘 마련돼 있지 않아 노후 대비 대부분이 개인의 노력과 책임에 맡겨 있기 때문”(시노다 죠 아리스타고라그룹 최고경영자)이라는 쓴소리도 적잖습니다.
9월 18일,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찾아 뵌 56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계속 일하겠다”는 60대, “일찍 은퇴하겠다”는 20대의 상반된 모습을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주에도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54~55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기시다의 포기가 부른 자민당의 ‘새 바람’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9/04/ZPPKWYZEJNBQBPO5XB2SNLE76A/
日 시골 마을의 ‘최저 자살률’ 비결, 이웃간 ‘절묘한 거리감’ 이었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9/11/Y2NSEUK6JFGATPRI7DKNVDRN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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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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