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립 명문대 도쿄대가 20년 만에 등록금 인상을 단행했다. 후지이 데루오 도쿄대 학장(총장)은 지난 24일 현재 53만5800엔인 연간 등록금을 내년부터 64만2960엔(약 596만원)으로 올리기로 확정했다고 NHK 등이 보도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도쿄대 등 국립대 등록금 표준액을 연 53만5800엔으로 정하고, 대학별 사정에 따라 최대 20%까지 인상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각 대학은 학생 반발과 정치권 눈살을 의식해 표준액 이상으로 등록금을 높이기 어려웠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실제로 국립대 82교 중 표준액보다 높은 등록금을 받는 곳은 지바·도쿄공업대 등 7교뿐이다. 도쿄대도 표준액이 책정된 2005년부터 등록금을 동결해왔으나, 이날 인상 가능한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후지이 학장은 “고등 교육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만큼 학습 환경 개선을 주저하면 안 된다”면서 “등록금 인상은 이를 위한 기반 정비책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도쿄대 재정 상당 부분이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도 등록금 인상 배경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도쿄대 수입 2680억엔 중 등록금이 차지한 비율은 6%였다. 반면 정부의 운영비 교부금은 약 30%를 차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국가 교부금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며 “도쿄대는 국가 재정에 의존하지 않는 경영 모델을 구축해 국제 경쟁력을 높이겠단 목적”이라고 전했다.
학생들은 즉각 반발에 나섰다.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도쿄대가 등록금 인상안을 발표한 지난 10일 이후 상당수 학생이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 의견이 묵살됐다”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지난 6월 학장이 주최한 ‘학생과의 대화’에서도 “교육의 자유가 위협받게 됐다” “진학 기회의 격차가 확대된다”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일부는 캠퍼스에서 집회를 열거나 서명운동을 했다.
도쿄대는 등록금 면제 대상을 넓혀 논란을 진화하겠단 방침이다. 현재 연 가구 수입 400만엔 이하인 전액 면제 대상을 600만엔 이하로 확대하고, 600~900만엔 사이 학생들에 대해서도 일부 면제안을 마련해주겠단 계획이다. 나아가 최근 최고재무책임자(CFO)직을 신설해 재정 운용 관리·감독 체제를 강화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보도했다.
다른 대학들도 도쿄대를 따라 속속 등록금 인상 채비에 나섰다고 지지통신은 전했다. 시설 노후화, 광열비 인상 등으로 등록비 인상이 절박한 상황에서 도쿄대가 먼저 나서주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니혼게이자이가 지난 6월 국립대 82교를 상대로 등록금 인상 계획을 묻자, 도쿄대 등 15교가 “검토 중” 혹은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대학 등록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계속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2009년 교육부가 등록금 동결을 권고한 이후로 16년째 대부분의 대학이 인상안을 꺼내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는 또한 2012년부터 등록금을 올리면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등록금 동결을 강제해왔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등록금 인상이 막힌 동안 교수 급여는 열악해졌고 재원은 연구·취업에 용이한 이공계 학과에 주로 집중됐다”며 “현재로선 등록금을 올려야 왜곡된 학사구조를 정상화하고 수준 있는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를 비롯한 대학생 단체들은 여전히 학부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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