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에 다음 달 1일 오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자민당 신임 총재가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창설하고 이런 틀 안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나 핵 반입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일본의 차기 총리가 미국 전술핵의 일본 영토 내 반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일본 자민당에서 가장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 이시바가 강경 보수인 아베 신조 전 총리도 언급 못 한 ‘미국 전술핵 반입 허용’을 주장하면서 북한·러시아의 핵 위협에 맞서는 한·미·일의 핵 공조 및 동북아 안보에 획기적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이시바 차기 총리는 지난 27일 자로 미국 보수 성향 ‘허드슨 연구소’에 게재한 ‘일본 외교 정책의 장래’라는 기고문에 “중국 등을 억제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핵 공유·반입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아시아엔 나토 같은 집단적 자위(自衛) 체제가 존재하지 않고, 상호 방위 의무가 없어 전쟁이 발발하기 쉬운 상태”라며 “아시아판 나토 창설로 중국·러시아·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아시아판 나토’의 연장선에서 일본과 미국의 핵 공유와 일본 내 핵 반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유럽을 잇는 서방 자유 진영의 집단 방어 체제인 나토는 ‘회원국 중 한 나라가 공격당하면 자동으로 개입한다’는 원칙에 따라 운영되며 미국은 일부 회원국에서 전술핵을 배치·운용해 왔다.
이시바가 거론한 ‘미국 핵 반입’은 하지만 많은 일본인이 큰 거부감을 가진 이슈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수십만명이 사망한 비극적 역사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발표한 ‘(핵을)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 않으며, (영토에) 들이지 않는다’는 이른바 ‘비핵(非核) 3원칙’을 따른다. 다만 전쟁 발발 등 유사시 오키나와에 한한 미군의 전술핵 반입, 미군 핵항모의 오키나와 정박 등의 예외를 두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시바가 거론하는 ‘아시아판 나토’와 ‘미국의 핵무기 공동 운용(공유·반입)’은 이 같은 예외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주목받는다. 미국은 공식 핵 보유국이 아닌 벨기에·독일·이탈리아 등에 나토 차원에서 전술핵을 배치하고 미군이 관리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시바의 ‘아시아 나토’ 구상은 아시아 내 미국의 군사동맹국인 일본에도 이처럼 전술핵을 배치하고 미국과 공동 운용하는 방안까지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과거 방위상으로 일한 ‘안보 오타쿠(골수 마니아)’로 확신을 잘 바꾸지 않는다고 알려진 이시바는 총리 취임 이후 자신의 지론을 실행에 옮기며 일본 내 미국 핵 반입 문제를 본격적인 의제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나의 사명은 일본을 지키는 것’이라고 거듭 밝혀온 이시바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침략당한 이유를 핵무기 포기와 나토 미가입이라고 본다. 그는 지난 11일 자민당 총재 선거 관련 공식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를 중국, 우크라이나를 대만이라고 보면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아시아”라며 “동아시아엔 나토 같은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 지역의 평화·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시바의 안보관은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강경하다. 그는 “2선 의원 시절에 딱 한 번 북한에 간 적이 있다”며 “철저한 반일이고, 철저한 개인 숭배의 나라인 북한이 미국까지 발사 가능한 미사일을 가졌다는 사실은 ‘상호확증파괴(相互確證破壞)’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상호확증파괴는 핵무기 사용 시 둘 다 공멸하기 때문에 핵보유국끼리 핵전쟁을 피한다는 가설이다. 이시바는 하지만 북한이 ‘우리나라가 없어질 바에야 세상이 없어지는 게 낫다’고 믿는 비상식적 나라라고 본다.
☞일본의 비핵 3원칙
’일본은 핵을 보유하지 않고, 만들지도 않으며, (영토에) 들이지도 않는다’는 원칙이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발표했고 1976년 국회에서 결의했다. 사토 전 총리는 이 공로로 1974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