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흥 반도체기업 라피더스가 1000억엔(약 9000억원)의 추가 운영 자금 조달을 추진하고 있지만, 목표 금액의 4분의 1(250억엔)만 확보하는 등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9일 보도했다. 라피더스는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을 목표로 도요타·소니 등이 합작 설립한 회사다. 2027년까지 총 5조엔(약 45조3000억원)을 투입해, 최첨단인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를 대량 생산, 한국·대만·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일본의 야심에 ‘돈 부족’이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라피더스는 1000억엔을 확보해 기업 운영 자금과 일부 설비 투자에 쓸 계획이다. 대규모 투자용이라기보다는 현재 아무런 매출이 없는 상태에서 경영을 지속하기 위한 돈에 가깝다. 경영의 불안정성을 없애기 위해 라피더스는 당초 기존 주주사와 일본 시중은행 등에 지난달 말까지 ‘법적 구속력이 없더라도 상관없으니 출자 여부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추가 출자에 선뜻 나서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 현재 기존 주주사인 NTT·소니그룹·미쓰비스UFJ은행 등이 추가 출자를 결정했고, 미쓰이스미토모은행·미즈호은행·일본정책투자은행 등이 신규 출자에 참여하기로 했다. 여기에 후지쯔와 미국 IBM이 신규 출자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전부 합쳐도 최대 250억엔에 불과해 당초 목표와는 괴리가 크다. 라피더스는 내년에 추가 자금 조달을 마무리지을 예정이지만 여의치 않은 것이다.
일본 정부의 자금 지원도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내각은 연내 이른바 ‘라피더스 지원 법안’으로 불리는 최첨단반도체 양산 지원법안(가칭)을 통과시킬 계획이었다. 이 법안에는 정부 자금의 추가 지원은 물론이고, 라피더스가 민간에서 돈을 빌릴 때 정부가 지급 보증하는 방안 등이 포함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시다 내각이 물러나고, 이달 1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취임한데다 27일에는 중의원(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어 연내 통과는 어려울 전망이다. 앞서 지난달 20일 사이토 겐 당시 경제산업상은 “현실적으로 임시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2027년 대량 생산을 시작하는 (라피더스의) 스케줄에 악영향이 없도록 필요한 검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통과시키겠다는 새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라피더스가 2나노미터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5조엔의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회사 설립 당시에 8개 주주사가 출자한 자금은 73억엔에 불과하다. 이후 일본 정부가 최대 9200억엔의 보조금을 주기로 결정해 시제품 생산라인을 착공할 수 있었다. 현재로선 추가로 필요한 4조엔의 자금 조달 계획은 불투명하다. ‘2나노 반도체의 대량 생산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일본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이 점차 커지는 것도 자금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단렌의 도쿠라 마사가즈 회장은 “2025년에 시제품 생산라인이 가동하면,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민간 기업도 투자 판단을 내리기 편해진다”며 “정부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속 지원해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