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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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신임 총리가 취임한 지 약 2주가 지났습니다. 집권 자민당의 ‘아웃사이더’였던 이시바가 4전 5기 끝에 총리직을 따낸 가운데, 지난달 27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 여파는 일본 정치권에 아직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민당 아이콘이자 거물, 아소 다로(麻生太郎·84)의 거취에 현지 언론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앞서 이시바 신임 총리는 농림수산상을 지내던 2009년 당시 아소 총리에게 경제 침체와 지지율 급락을 이유로 “퇴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아소는 이를 두고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맞받아치면서, 둘의 관계는 정적(政敵)을 뛰어넘는 불구대천이 됐습니다. 아소는 지난달 총재선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을 물밑에서 도와 이시바를 견제했지만, 결선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시바가 다카이치를 꺾고 승리했죠. 이에 아소의 당내 입지는 축소할 수밖에 없고 그가 조만간 은퇴할 것이란 예측까지 도쿄 정계에 퍼졌었습니다.
일본 주간지 슈칸겐다이는 총재선을 앞둔 지난 8월 말 “아소가 오는 10월 정치 인생을 은퇴한다는 추측이 자민당 내에서 무성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는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 가장 유력한 총재 당선 후보로 점쳐지던 때였는데요. 고이즈미는 이시바와 마찬가지로 아소의 정적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지원을 받고 있어서, 그가 당선되면 아소의 설 곳이 사라질 것이란 근거에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고이즈미는 총재선 1차 투표에서 탈락했지만 요직인 자민당 선대위원장을 맡게 됐고, 스가에겐 당내 총재에 이어 ‘넘버 2′인 부총재직이 주어졌습니다.
아소가 고집하는 ‘파벌 정치’가 그의 은퇴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꼽혀왔습니다. 아베·니카이·기시다파 등 자민당 주요 파벌들은 지난해 말 불거진 소속 의원들의 불법 정치 자금 조성 문제로 올 초 해산했습니다. 하지만 아소는 이를 거부하고 아소파를 존속시키고 있어요. 이 때문에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와의 관계도 소원해졌었다는 게 NHK 등 현지 언론들 설명입니다. 이 가운데 무파벌인 이시바가 총리가 되고, 마찬가지로 무파벌인 스가·고이즈미가 이시바 체제하에서 중책을 맡으면서 아소파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전망이죠.
나아가 아소파 의원들도 최근 자민당 지지율 급락의 주범인 불법 정치 자금 파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달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 10명 중 8명은 이시바 신임 총재가 당내 의원들의 비자금 조성 문제를 재차 전수조사하고 그 실태를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시바는 높은 국민 지지율을 등에 업고 선거에서 이긴 만큼 이러한 민심을 따를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마이니치는 최근 아소파 의원 54명 중 상당수가 아베파 등 타 파벌과 마찬가지로 과거 정치 자금을 조성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아소파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시바가 전수조사에 나서면 이들을 향한 압박은 거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아소는 무성한 은퇴설을 뒤로하고, 이달 27일로 예정된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 15선(選)을 목표로 출마하기로 정했습니다. 이시바 총리도 총재선 승리 직후 정적인 그를 자민당 최고고문직에 기용했습니다. 아소파 소속 스즈키 슌이치 전 재무상도 당내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총무회장직에 낙점됐죠. 이시바의 용병술이 아소의 정치 수명을 당분간 연장해준 셈입니다. 이시바가 부족한 당내 결집력을 극복하려 아소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단 분석입니다.
앞서 이시바·아소는 총재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에도 회동했었는데요. 한 일본 유력 매체 정치부 기자는 “당시 회동에서 아소가 이시바에게 화해의 스탠스를 취해, 일종의 ‘정치 수명 보험’을 든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스즈키 테츠오 정치 전문 저널리스트도 “아소와 이시바의 관계가 극적으로 나아질 순 없겠지만,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이시바 입장에선 아소와 무난한 관계를 맺고 싶을 것”이라며 “반대로 아소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소는 최고고문 발탁 직후인 지난달 30일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임시총무회의에서 이시바 신임 총재와의 사진 촬영을 거부했습니다. 주위 의원들이 만류했지만, 이를 뿌리치고 이시바에게 잠깐 고개만 숙이곤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나아가 일본 민영 TBS에 따르면, 아소는 지난달 총재선이 끝난 뒤 자신이 도왔던 다카이치를 만나 이렇게 조언했다고 합니다. “자민당 역사에서 3년 이상 총리를 지낸 사람은 7명밖에 없다. 나도, 스가도 1년 만에 끝났다. 이시바는 그보다 더 짧을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를 준비해둬라. 동료 의원을 만드는 게 좋으니 반년 정도는 술자리를 자주 찾아라.”
결국 이시바·아소는 자민당이란 한이불 아래서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게 됐습니다. 아소가 사실상 공개적으로 이시바에 대한 견제 활동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그에게 최고고문직을 맡긴 이시바도 마냥 화해의 자세만을 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대표 정적인 둘의 ‘자존심 싸움’을 두고, 현지 언론들은 이시바의 손을 조금 더 들어주는 경향입니다. 스마트플래시 등 일본 언론들은 자민당 총재선이 끝난 지난달 27일부터 이미 아소를 ‘오와콘’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오와콘’은 ‘끝나다’란 의미의 일본어 ‘오와루(終わる)’와 ‘콘텐츠’의 합성어입니다. 한때 열풍이었다가 인기가 식은 상품을 뜻하는데, 주로 사람에 빗대어서도 쓰입니다. 도쿄신문도 최근 자민당의 한 각료 경험이 있는 정치인을 인용해 “자민당의 ‘장로 정치’는 끝났다”고 전했습니다. ‘장로’는 아소를 겨냥한 것입니다.
한 아소파 소속 의원은 슈칸겐다이에 “아소는 평소 ‘파벌을 통제하지 못하게 됐을 때 물러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했습니다. 아소가 물러난다면 그의 자리는 장남 아소 마사히로(40)에게 승계될 것입니다.
1940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아소는 도쿄 가쿠슈인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79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경제재정정책담당·총무·외무상 등을 지내다 2008년 총재 선거에서 승리, 92대 총리직에 앉았습니다. 이시바와는 당시 선거에서도 경쟁자로 만났죠. 이후 2021년 선거에서 기시다 현 총리를 물밑에서 돕고 자민당 부총재직에 임명됐습니다.
10월 16일 60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신임 총리와 아소 다로 자민당 최고고문의 ‘불편한 동거’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 한주 휴재했는데 기다려주신 독자분들께 감사합니다.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58~59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강남 코엑스에 ‘버추얼 유튜버’ 떴다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09/28/KGJMC6NB2VDHFITTF7A75TLRUQ/
신임 총리 당선에 ‘새우등’ 터진 日 최남단 가고시마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10/02/Z3VL2226BBBKVPQIWOTAUEYQ2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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