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일 도쿄에서 열린 '2024 SBVA 도쿄포럼'에서 강연하는 이준표 대표/SBVA 제공

“다들 인공지능(AI) 하면 챗GPT를 떠올리지만 그렇지 않다. 앞으론 인간의 눈·귀와 같은 인지(퍼셉션·perception)와 움직이는 ‘동작·작동(액추에이션·actuation)’에서 많은 창업 기회가 열릴 것이다.”

이달 2일 도쿄에서 만난 이준표(42) SBVA(옛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AI 시장에서도 아시아 기업들에 여전히 사업 기회가 열려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2000년 설립된 SBVA는 누적 운용 자산이 2조5000억원 이상인 데다, 300개 이상 스타트업에 투자해 한국에선 규모로도 ‘빅3′에 든다. 당근, 트릿지, 아이지에이웍스, 루닛, 크림, 네이버Z 등 한국 기업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의 아자이브, 고투, 싱가포르의 아이유노, 카로, 중국의 왕딩통, 송구어, 나이지리아의 오페이 등에 투자했다. 이 대표는 “서울대나 카이스트는 물론이고 도쿄대·난양공대 등 아시아의 테크 창업자들이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창업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되겠다”며 “앞으로 8년 내 아시아 최고의 벤처캐피털(VC)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에 최대 주주가 소프트뱅크에서 디에지오브로 바꿨고 올해 사명도 ‘SBVA’로 바꿨다. 디에지오브는 2000년대 게임회사 겅호를 창업해 ‘일본 거부 톱30′에도 드는 손태장이 창업한 회사다. 이 대표도 공동 창업자로 참여했다. 손태장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친동생이니, 말하자면 형이 동생에게 넘긴 셈이다.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중퇴한 이준표 대표는 대학 재학 중인 2001년 에빅사를 창업해 LG데이콤(현 LG유플러스)에 매각했고, 다시 2007년 엔써즈를 창업해 미국 기업에 매각한 연쇄 창업자다.

-챗GPT의 아버지인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와 지인이다.

“작년에 서울에서 ‘파이어사이드챗’ 행사를 열었을 때 샘 올트먼 대표를 초청했다. 2018년쯤 와이콤비네이터 대표였던 샘 올트먼을 도쿄로 불러, 손정의 회장에게 소개하는 점심 자리를 가졌다. 당초 미국 스타트업의 투자 협력을 논의할 자리였는데 샘 올트먼이 오픈AI 프로젝트를 얘기했다. 딱 8장짜리 자료로 설명했는데 손 회장이 그 자리에서 나에게 ‘원 빌리언 투자’를 지시했다.”

-성사됐으면 인공지능(AI) 판도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샘 올트먼과 투자 협의를 계속 진행했는데, 막판에 오픈AI가 외국 투자를 받을 상황이 안 되는 바람에 무산됐다. 솔직히 당시 투자 책임자로서 마음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너무 큰 금액이었다. 돌아보면 손정의 회장의 선견지명은 정말 대단했다. 성사됐다면 소뱅은 알리바바 못지않은 ‘리턴’을 받았을 것이다. 샘 올트먼은 당시 ‘오픈AI를 알아본 투자자’로 고마워했고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AI는 오픈AI 같은 미국 빅테크가 다 먹지 않았나.

“인간이 횡단보도에서 눈으로 녹색불을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두 발로 건넌다. 챗GPT와 같은 두뇌는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는 사업인 데다, 사실 꽤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론 인간의 눈·귀와 같은 인지와 ‘동작·작동’ 분야에서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국과 같은 아시아 스타트업이 노릴 자리란 말인가.

“예컨대 토모큐브라는 스타트업이 만드는 입체(3D) 광학 현미경은 인공지능의 인지 부분이다. 세포를 홀로그램 입체로 보여주는 현미경 기술인데, 이전과는 다른 ‘정보’를 인지할 수 있다. 미국에는 인간의 손과 같은 수준으로 감각을 인지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자율 주행 기술인 레이더나 라이다도 같은 맥락이다. 퍼셉션과 액추에이션 분야에는 어마어마한 기회가 있다.”

이달 2일 도쿄에서 만난 이준표 SBVA 대표./성호철 도쿄특파원

-SBVA는 인공지능에 얼마나 투자하나.

“작년 최대 주주가 바뀌었지만, 예전의 포트폴리오는 모두 그대로이고 펀드 자산도 여전히 2조5000억원 정도다. 올해 4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었고 2000억원은 글로벌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한국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한다. 1800억원 정도는 인공지능 스타트업에 투자할 것이다.”

-’아시아 넘버1′을 목표로 하고 있다.

“펀드 규모가 크다고 가장 좋은 투자자인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아시아의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가 글로벌 기업을 만들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투자 파트너가 되겠다는 의미다. 펀드의 주기가 8년 정도이니, 그 안에는 ‘아시아 넘버1′ 목표를 달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