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도쿄의 소속 사무실에서 만난 아오이 소라. /성호철 도쿄특파원

흰색 원피스를 입은 155cm의 아오이 소라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질문에 답은 막힘이 없었고, 유쾌하고 털털했다. 한때 일본과 한국·중국·태국 등 아시아에서 ‘인지도로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성인물 스타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43살이 된 아오이 소라를 지난달 26일 일본 도쿄의 소속 사무실에 만났다. 예전의 외모와 거의 변함이 없었는데도, “인터뷰 도중에 말하는 모습을 사진 찍겠다”고 했더니, “앗, 도중에요? 그럼 잠깐만요. 얼굴을 만들어야죠. 립스틱 바르는 정도밖에는 못하지만”하면서 농담을 던지며 웃었다. 중국에서 반일(反日) 데모가 극단이었을 당시를 묻는 질문엔 “정치와 엔터테인먼트는 분리되었으면 한다”며 “누군가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만난 중국인들은 모두 친구처럼 대해줬다”고도 했다.

쌍둥이 두 아들을 둔 아오이 소라는 “두 아들이 세 살 때까진 정말 육아가 힘들었다”며 “다섯살이 되니, 말이 안 통하던 우주인들이 인간으로 성장했다. 출산하고서 5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하고 야키니쿠에 갈 수 있었다. 살만 하다”고 했다. ‘한국에선 출산율이 0.7명까지 떨어졌다. 아이를 낳으면 여성의 삶이 황폐해진다는 인식도 적지 않다’고 했더니,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마음을 나는 조금 이해하긴 어렵다”며 “물론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나라를 위해 출산해야하는 식은 이상한 이야기지만, 아이를 좋아하는 나는 가능하다면 더 많이 낳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오이 소라는 불임으로 고생하다가 겨우 쌍둥이를 낳았고, 셋째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아오이 소라는 2002년에 ‘해피 고 럭키(happy go lucky)’라는 성인물로 데뷔했다. ‘파란색과 하늘’을 좋아해 ‘아오이 소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일본 성인물이 200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을 타고 한국·중국·태국 등에서 불법 유통되면서 인지도만 보면 아시아의 톱 스타 레벨이었던 특이한 여자 배우다. 현재도 중국의 웨이보 계정 팔로워는 1970만명에 달한다.

2018년에 결혼했고 이듬해 쌍둥이를 출산했다. ‘인터뷰 의뢰’를 했을 때 아오이 소라의 소속 사무소는 “성인물 배우는 은퇴한지 오래됐다. 관련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쌍둥이 엄마인 아오이소라의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이야기에 흔쾌히 인터뷰를 받아들였다.

참, 아오이 소라는 만 43세다. 인터넷에선 1983년생이지만, 실제론 1981년생이다. 아오이 소라는 인터뷰 도중, “이제 43살인데…. 참, 저 43살이예요. 41살이 아니라”라고 말했다.

두 아들을 안고 있는 아오이 소라. 아이들의 얼굴은 공개 하지 않아, 본인이 안보이도록 처리했다. /아오이 소라 제공

-한때 아시아에서 최고의 인지도를 가진 배우였죠.

“내가 해외로 진출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해외 일이 처음 들어온건 2008년 태국이예요. 해적판과 인터넷 덕분에 이름이 퍼졌어요. 해외팬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죠. 당시 중국에서 웨이보를 시작했는데 금방 팔로워가 금방 1000만명을 넘었어요. 지금은 약 1970만 명이예요.”

“2008·2009년쯤 한국에도 갔어요. 15년 전이니, 20대 때예요. 대한항공 탔는데 한국의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 아티스트를 보고 블로그에 코멘트했는데, 곧바로 한국 뉴스에 떴어요. 놀랐죠. 하지만 한국 기사의 댓글을 보곤, “(한국에는)네티즌이라는 사람들이 있구나”는걸 알았고, 그들의 댓글이 정말 무섭게 느껴졌어요. 출연 예정인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네티즌들의 비판 댓글 탓에 갑자기 출연이 취소됐어요. 한국의 TV에 성인물 배우 출신을 출연시키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당시엔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악플을 다는 한국 네티즌이 싫었을 것 같은데요.

“(무서웠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어요.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15년전이니, 역시 시대가 조금 빨랐지 않나. 그런 시기였어요. 국가 대 국가가 돼버리면. 국가의 짐을 대신 짊어질 생각도 없어요. 단지 저는 한 명의 인간으로 살고싶을 뿐이예요. 물론 애국심이란건 있지만, 다른 나라와 대항한다는 마음은 없어요. 다들 사이 좋게 살고 싶다는 감각이예요.”

-한때는 배우나 가수 활동도 했는데, 요즘은 뜸합니다.

“육아로 많이 바빴어요. 일을 일부러 피한 건 아니지만, 들어오는 일을 하는 정도예요. 최근엔 유튜브 출연을 하거나, SNS에 글과 사진을 올려요.”

“최근엔 (한국) 노라조의 멤버와 일본에서 같이 저녁했어요. 중국 활동할 때 함께 그룹했던 분들이예요. 그때 “다시 한국에서 같이 활동해보자”고 의기투합했는데, 그후론 진전이 없네요.”

-한국 활동할 생각이 있나요?

“한국에서 아직도 저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정말 좋아해요. 기회가 된다면 활동하고 싶어요. 한국어는 독학으로 배웠어요. 잘은 못하지만 글자를 읽을 수 있고, 인사를 할 수 있는 정도예요.”

-하정우 배우를 좋아한다고요?

“정말 좋아해요. 처음 본 하정우의 작품은 ‘추격자’라는 영화예요. 살인귀 역할을 했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엄청 몰입해 봤어요. 팬이예요. K-POP도 그렇고 한국 작품들은 퀄리티가 높아요. BTS는 ‘방탄소년단’이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봤어요. 처음 음악 들었을 때 멋졌어요.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BTS의 멤버들 외모도 멋있지만, 음악 자체가 정말 좋아요. 블랙핑크도 여자들이 동경할 만한 멋진 매력과 함께, 그 안에 귀여움도 있어요.”

-2012년 중국에서 반일(反日) 데모가 극심했을 때를 기억하나요. 당시 데모에서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는 중국 영토, 아오이 소라는 아시아의 배우’라는 구호가 나와, 외신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당시 반 년간 중국 방문을 자제했어요. 실제론 (중국에서) 누군가에게 욕설을 들은 적은 없어요. 주변 중국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가 지켜줄게요”라고 했죠. 뉴스를 보다가, 반일 데모 중에 ‘일본인은 사절이지만, 아오이 소라는 괜찮다’라는 가게 안내문을 봤어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나’하고 정말 놀랐어요. 정치와 엔터테인먼트는 분리되었으면 해요. 일본인이니까 (일본 국익을 위한)이런 발언을 해야 한다거나, 누군가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도 않아요.”

- 2018년에 결혼했고 쌍둥이의 엄마네요.

“두 아들은 만 5살인데, 3살 때까지는 정말 힘들었어요.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어려워 동생의 도움을 받곤 했어요. 4살이 지나면서 혼자서도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아이들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고요. 2,3살때는 정말 우주인이었어요. 뭐라고 해도 안들어요. 일본어를 모르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식. 지금은 ‘그만해!’라고 말하면 그만하니까요.”

“임신하고 야키니쿠 갔을때 ‘이제 아이들 둘이나 낳을테니 한동안 못오겠네’ 했어요. 실제로 혼자선 둘 데리고 어딜 못 갔어요. 최근에 5살이니 한번 가볼까 남편하고 상의하고 진짜 갔어요. 의외로 괜찮았어요. 5년만의 야키니쿠, 감격했어요.”

-여배우인데도 모유 수유했었다고 들었어요.

“모유 수유가 좋다고 해서 처음에는 해보려고 했어요. 모유가 충분히 나오지 않아, 포기했죠. 한 달 정도, 힘들게 유축해 조금씩 주었어요. 쌍둥이인데 한 명에게도 충분히 줄 수 있는 양도 나오지 않았어요. 두 명은 불가능했죠. 얘기들이 울면서 (먹을 것을) 원하는데, 괜히 (모유를) 하자고 할 필요까지 없지 않나. 분유로 바꾸었죠. 역시 모유 신화 같은 얘기가 있잖아요. 하지만 물리적으로 무리였는데, 조금은 나 스스로에게 열등감 같은 것도 있긴 했어요. 블로그에 그런 이야기를 썼더니, 주변 분들이 ‘분유도 영양분 충분하다’고 격려해줘서, 조금 나아졌어요.”

-임신 중에 ‘쌍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이를 가지려고 꽤 노력했어요. 치료를 겸해서 클리닉에도 다녔어요. 그래서 쌍둥이란 얘기보다는 임신에 엄청 기뻤어요. 쌍둥이라서 쇼크는 없었어요. 본래 20대때부터 아이를 갖고 싶어서, 꼭 결혼하겠다는 주의였어요.”

“아버지가 쌍둥이라서, 유전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정도예요. 쌍둥이라서 출산때 위험은 좀더 커지긴 하죠. 쌍둥이라도 이란성이라, 위험이 그나마 낮은 편이라. 단지, 나의 신장이나 체형을 고려할 때, 쌍둥이를 이 배에서 잘 키울 수 있을까는 걱정했어요.”

-한국은 출산율 0.7명입니다. 한국 여성들 사이엔 출산을 꺼리는 분위기도 없지 않은데요.

“예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했고 애초에 ‘아이를 안 낳는다’는건 생각에도 없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안 갖겠다는 생각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단지, 국가를 위해서 출산하라는건 이상한 이야기라고 느껴요.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물리적으로 출산이 어려운 경우도 있겠죠.”

“단지, 장래를 생각해서 ‘난자동결’은 꼭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몸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지기 전에 젊을 때 난자를 동결해두라는 조언은 하고 싶어요.”

-셋째도 낳을 계획인가요.

“실은 낳고 싶긴 했는데요, 이젠 물리적으로 어려워요. 나이도 있고. 불임치료라는것도 해봤습니다만. 한번 유산한 경험도 있고요. 15년전, 내가 20대때에는 전혀 난자동결과 같은 기술이 일본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이예요.”

-한때 최고의 유명세였지만 당신도 대중에게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그러니까 한창 활동할 때는 잊혀질까 봐 무서웠어요. 잊혀지는 존재가 되기 싫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생활이 훨씬 편해졌어요. 젊었을 때는 얼굴이 알려져, 시부야 나올 때 모자쓰고 마스크 쓰고, 길에서 얼굴을 가리고 다녔어요. 사람들이 혹시나 저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TV에도 거의 안 나가니, 사람들이 저를 잘 알아보지 못해요. 보육원에서 다른 엄마들과 인사할 때도 사람들이 아오이 소라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매스컴에서 잊혀졌다는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예요.”

-43살인데, 어떤 60세가 되고 싶나요.

“50세, 60세가 되어도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다만 ‘멋지다’라는 게 뭘까 생각해요. 20·30대에는 예쁜 언니 같은 분위기로 계속 살고 싶었어요. 40대가 되곤 생각이 변해요. 예전에 (남들 보고)’나를 따르라’였다면 지금은 ‘누군가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도, 아이들에게서 어머니로서 존경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임신했을 때나, 지금이나 다이어트는 해요. 임신했을때는 16kg이나 몸무게가 늘었었어요. ‘3kg만 빼자’, 다시 ‘3kg’만 하면서 살을 뺐어요. 50대, 60대에도 지금 몸매는 유지하고 싶어요. 다만, 예전과 다르게 근육을 키우고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어요.”

지난 9월 26일 도쿄의 소속 사무실에서 만난 아오이 소라. /성호철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