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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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지금 당장 지갑에 ‘500원 동전’이 섞여 있지 않은지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일본 TV아사히는 지난 21일 “(일본) 각지에서 ‘500원 동전’이 ‘500엔 동전’으로 둔갑해 부정하게 사용된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최근 도쿄에서 60년째 운영 중인 목욕탕 ‘키쿠노유(喜久の湯)’가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글이 시작이었습니다. 크기·생김새가 비슷한 일본 500엔과 한국 500원 동전을 나란히 둔 사진에 “매출을 세다가 확인했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다음부턴 조심해야겠다”는 글이 적혔죠.
키쿠노유 점장인 가시마 유사쿠씨는 TV아사히에 “500엔짜리 동전을 세다가 순간 위화감이 들어서 보니, 못 보던 동전이 섞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국어 글씨가 적혀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키쿠노유는 현금으로만 요금 지불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즉 이용객으로부터 500엔인 줄 알고 받았던 동전에 한국 500원 동전이 교묘히 들어가 있었다는 거죠.
일본 규슈(九州)에서 과일·야채를 파는 한 업장 사장도 비슷한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그는 키쿠노유처럼 소셜미디어에 500엔·500원 동전을 나란히 놓은 사진을 올리곤 “계산대가 혼잡할 때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라면 속을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는 TV아사히에 “과거 수차례 이런 피해가 있었다. 고의로 저지른 일인 것 같아 좀 속상하다”며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 손님에게 (거스름돈으로) 500원 동전을 주게 될까 무서울 정도”라고도 했습니다.
규슈 과일·야채 가게 사장님의 우려처럼, 실제로 500원 동전을 거스름돈으로 받아 뒤늦게 눈치 챘다는 피해자도 나왔습니다. 최근 편의점에서 거스름돈으로 500원을 받았다는 한 일본인은 “점원도 나도 전혀 몰랐다. 새삼 깨닫고 나서 보더라도 솔직히 구별이 잘 안 된다. (동전) 바깥쪽에 톱니무늬가 새겨져 있는 등 모양새가 너무 닮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500엔은 한화로 약 4500원. 500원보다 가치가 9배나 높지만 생김새는 실제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지름이 26.5㎜로 같고요. 무게는 500원이 7.7g, 500엔이 7~7.1g. 약간 다르나 일반인이라면 구별이 힘든 정도입니다. 가시마씨는 “고의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유감스럽다. 솔직히 다시 손님이 이것(500원 동전)을 가져와도 눈치를 채지 못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해당 기사엔 비슷한 피해를 호소하는 코멘트 3000여 개가 달렸습니다.
일본에서 500원 동전이 ‘가짜 500엔’으로 둔갑한 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500엔과 500원 동전은 우연히도 1982년 같은 해 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두 동전의 크기가 같은 점을 악용해, 500원 동전에 구멍을 뚫어 무게를 500엔처럼 가볍게 하고 자동판매기에 사용하는 수법이 유행했습니다. 심지어는 자판기에 500원을 넣고, 반납 레버를 눌러 500엔을 돌려받는 범행까지 난무했다고 일본 매체 민나노마네카츠가 보도했습니다.
1997년 일본 경찰이 전국에서 부정 사용으로 신고된 500원을 모두 압수했는데, 그 수가 무려 1만4000개였다고 합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00년 500엔 동전을 개편했습니다. 바깥쪽 톱니무늬 칼집을 181개로 바꾸고, 재질을 구리와 니켈의 합금으로 교체했죠.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로 피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단 게 증명됐습니다.
500원 동전뿐만 아니라, 2015년 무렵엔 100원 동전이 100엔으로 둔갑돼 쓰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두 동전은 크기는 약간 다르나 무게나 디자인이 비슷하단 점을 악용했던 것이었죠. 일본 아이돌 가수 다나카 레이나(35)씨가 그해 1월 자신의 블로그에 “(지갑에 있던) 100엔 동전의 상태가 이상하다”며 처음 피해를 밝혔습니다. 이후 일본 소셜미디어엔 “나도 포장마차에서 받은 거스름돈에 일본 동전과 비슷한 한국 돈이 섞여 있었다”는 글들이 속출했습니다.
2022년 9월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후쿠오카현의 한 편의점에서 한 남성이 일본 화폐에 대해 미숙한 외국인 점원에게 500원을 ‘옛 일본 동전’이라 속이고 기프트카드 등을 구매한 것이었죠. 피해액은 약 9000엔(약 8만1400원)이었습니다.
500원 동전을 500엔으로 속여 쓰는 행동은 당연하게도 불법입니다. 이노우에 유키 변호사는 “고의로 500원을 (점원에게) 낸다면 사기죄. 자판기 등 기계에 쓴다면 절도죄”라고 했습니다. 타카키 히로노리 변호사는 벤고시닷컴에 “(한국) 동전을 모르고 줬다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차액 지불 채무 등 민사상 책임이 생길 뿐”이라며, “하나 의도적으로 넘긴 경우엔 사기이득죄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10월 30일 62번째 방구석 도쿄통신은, 최근 한일 양국을 오가는 관광객이 늘어나는 상황에 때아닌 악재로 떠오른 ‘500원 동전의 500엔 둔갑’ 사태를 소개해드렸습니다.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60~61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자민당 대표 원수, 이시바·아소의 ‘불편한 동거’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10/16/MMMCJQMM2RE3BCO7XCG3PIQNCY/
도쿄 면허시험장에 중국인 관광객 ‘오픈런’하는 이유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10/23/QEIQ2D5NCBF5RKQRZNUDVJ4R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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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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