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좌단체 대원으로 활동 중 폭발물 테러범으로 수배돼 반세기를 숨어 살다 암 투병으로 일흔 살에 숨지기 직전 자수한 기리시마 사토시의 이야기가 영화로 공개된다고 일본 언론들이 8일 보도했다. 내년 3월 일본 전국의 극장에서 개봉 예정인 ‘도주(逃走)’다. 기리시마처럼 과거 일본 극좌 게릴라 단체 대원으로 활동하다 수배됐던 독립영화감독 아다치 마사오(85)가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1954년 히로시마현에서 태어난 기리시마는 1972년 도쿄 메이지가쿠인대 법학부에 입학한 뒤 극좌 테러 단체였던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에 가입했다. 이 단체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도운 전범(戰犯) 기업을 응징하겠다”며 1974~1975년 일본 주요 기업 본사와 공장을 대상으로 최소 아홉 차례의 폭발물 테러를 벌였다. 1974년 8월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중공업 건물 폭파 사건으로 8명이 사망했다.
기리시마는 1975년 4월 도쿄 긴자 한국산업경제연구소 폭파 사건에 가담했다가 꼬리가 잡혀 지명수배됐다. 동료 조직원들은 1975년 대부분 검거됐지만 기리시마의 행방은 50년 가까이 묘연했다. 그는 ‘우치다 히로시’란 이름으로 토목 회사 직원으로 신분을 세탁한 뒤 반세기 가까이 경찰 수사망을 피해다녔다. 가까운 술집을 자주 드나들며 친구를 사귀었을 정도로 일반인과 다름없이 생활했다고 전해졌다.
그는 지난 1월 일본 가나가와현 병원에 입원한 한 뒤 의료진에게 자신이 반세기 지명수배범인 ‘기리시마 사토시’라고 실토하고 출동한 경찰에 자수했다. 50년 도피행각에 지친 그는 “최후는 본명으로 맞이하고 싶다”며 자수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리시마는 자수 나흘 뒤 사망했다.
영화 ‘도주’는 기리시마의 반평생의 도피 생활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감독 아다치는 일본에서 가장 급진 성향의 영화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실제로 1970년대 중동 이슬람 세력이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을 찾아 반(反)이스라엘 해방 운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국제 의용병을 자처한 일본 ‘적군파’ 소속으로 무장 투쟁을 벌이다 국제 수배됐고, 1997년 레바논에서 체포됐다가 2000년 일본으로 강제 송환됐다.
감독의 이 같은 이력 때문에 영화가 동정적인 시각으로 자신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살아온 테러범의 행적을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아다치 감독의 전작 ‘레볼루션+1′은 2022년 9월 아베 신조 전 총리 암살범 야마가미 데쓰야의 일생을 그렸는데, 이 영화가 공개될 때도 범죄자를 미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적 있다. 논란이 일면서 영화를 개봉했던 극장 중 한 곳이 상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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