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일본은행(BOJ) 구내식당이 최근 일본 쌀을 포기하고 값싼 대만산 수입 쌀을 쓰기 시작했다. 햅쌀이 나오는 가을 이후엔 쌀 가격이 진정될 것이라던 일본 중앙은행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일본 언론은 “일본은행 직원들도 ‘레이와(令和·2019년부터 사용 중인 천황의 연호) 쌀 파동’을 피부로 실감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만 쌀은 일본 쌀과 식감이 비슷하다. 쌀 값 급등한 이유로는 폭염으로 인한 작년 쌀 생산량 감소, 지진으로 인한 사재기, 방일 관광객 증가 등이 꼽힌다.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일본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쌀 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63.6% 급등했다. 통계가 존재하는 1971년 이후 역대 최대 상승 폭이다. 이 신문은 “지난달엔 일본은행 본점의 구내식당도 조리에 쓰던 일본 쌀을 대만 쌀로 바꿨다”며 “일본은행의 눈앞에까지 쌀 파동이 닥쳤다”고 했다. 대형 수퍼마켓에서 대만산 수입 쌀(5㎏)은 2797엔(약 2만6100원)으로, 일본 쌀 평균 가격(3787엔)보다 26% 정도 싸다. 대만 농가는 여전히 일본 식민지 시절에 전해진 쌀 품종을 재배하는 경우가 많아 대만 쌀은 일본 쌀과 식감이 비슷하다.
금리 정책을 통해 물가를 조절해야 하는 일본은행은 지난해 여름까지도 쌀 파동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입장이었다. 지난해 여름 도쿄 등 주요 도시에선 쌀 공급 부족 탓에 일부 수퍼마켓에서 ‘가족당 1포대’ 같은 판매 제한이 등장했고, 가격도 20~50%씩 급등했다. 햅쌀이 공급되는 9~10월 이후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10월 햅쌀 도매가(60㎏·현미 기준)는 2만3820엔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만2700엔이었던 9월보다도 오히려 가격이 올라갔다.
일본은행 조사통계국은 원인 분석을 위해 쌀 도매업자들의 의견을 청취 중이다. 쌀값 폭등이 쌀 가공품(전년 대비 7.2% 인상·2024년 11월), 외식비(2.4%) 등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쌀 가격 폭등은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 시점을 결정하는 데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인 셈이다. 최근 일본에서 계속되는 고물가의 최대 요인으로 엔저(低)로 인한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이 꼽히는 가운데,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 1달러에 157엔 선인 엔저에도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서민들에겐 식재료 가격 급등에 따른 체감 물가는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다. 예컨대 지난달 양배추·상추·배추 가격은 과거 5년 평균과 비교해 각각 236%,138%, 95% 올랐다. 시장 조사 업체 제국데이터뱅크는 “올해 1~4월 가격이 오르는 식품의 품목 수는 지난해보다 60% 정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