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부 상태 시리아의 극빈층 청년들 ‘월 174만원’ 유혹에 아제르바이잔 전장으로<br>"‘보초’라며 고용됐으나 사실상 ‘총알받이’" 증언
지난 4일 이른 아침 터키 정부가 지원하는 시리아 반군인 시리아국민군(SNA) 대원 시신 50구가 시리아로 돌아왔다. 전사자들은 시리아에서 1700㎞ 떨어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선에서 숨졌다. 이 중에는 시리아 북서부 마라트 알 누만 출신의 무함마드 알 슈네(25)도 있었다.
아제르바이잔 측에 참전한 슈네는 지난 1일 저녁 아르메니아 저격수가 쏜 총탄에 절명했다. 9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었던 슈네의 가족들은 지금껏 그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터키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았다고 포린폴리시는 전했다.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영유권을 다투며 지난달 말 재점화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교전에 터키가 고용한 시리아 출신 용병들이 총알받이로 내몰리고 있다. 현재까지 양측에서 최소 260명이 숨졌는데, 이 중 5분의 1 가까이가 터키가 보낸 시리아 용병으로 추정된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터키는 이 교전에서 인종(튀르크계)·종교(이슬람)적으로 가깝고 언어 체계도 비슷한 아제르바이잔을 ‘형제국’으로 부르며 공공연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터키는 모든 자원과 마음으로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터키 ‘형제국’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 전장에 동원된 병력은 터키군이 아니라 시리아 청년들이었다.
그간 터키가 자국군 대신 시리아 용병을 뽑아 아제르바이잔에 투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이를 강력 부인해 왔다. 외신들은 “교전이 발발한 후 현재까지 시리아 용병 1500여 명이 아제르바이잔 전선에 투입됐다”고 전하고 있다.
시리아 청년들이 용병으로 나간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시리아 용병 1만7000여 명이 북아프리카 리비아에 파견돼 터키가 지원하는 정부군 측에 참전했다. 리비아 정부군에 맞서 러시아는 리비아 동부 군벌 세력을 돕고 있는데, 러시아는 여기에 시리아인 5000여 명을 용병으로 투입했다. 같은 시리아인인데 다른 편 용병으로 갈라져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 청년들이 용병으로 다른 나라 전장에 참전하는 것은 고국이 내전으로 황폐화했기 때문이다.
시리아에서는 2011년 3월 발발한 내전이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폭정에 대항해 반군이 봉기하면서 시작된 내전은 러시아·이란·터키 등 이해관계가 엇갈린 이웃 강대국들의 개입, 국제사회의 미온적 대처,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무장세력의 준동 등으로 갈수록 악화했다. 내전 장기화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리아 국민이 떠안았다. 총 38만명이 내전으로 희생됐으며, 560만명이 고국을 떠나 해외 난민이 됐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아직 시리아에 남아 있는 전체 인구의 80%인 1700만명이 하루에 1.9달러(약 2200원)로 생활한다.
시리아 젊은이들에게 선택지가 많지 않다. CNN은 “아제르바이잔으로 가면 월급으로 1500달러(약 174만원)를 받을 수 있다는 상관의 말을 듣고 동료 대원 대부분이 파견을 지원했다”는 익명의 시리아 용병 인터뷰 내용을 1일 전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용병으로 투입돼 사실상 총알받이나 다름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한 시리아 용병은 BBC에 “우리는 적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아제르바이잔 군복을 입고 소총을 쥐고 최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동료 대부분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고,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죽은 시리아 용병들의 유족에겐 위로금 명목으로 6만터키리라(약 900만원)가 지급된다고 한다. 이 돈도 받지 못할까 두려워 익명을 요구한 한 사망 용병의 유가족은 “터키 정부가 우리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고 포린폴리시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