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카스트로 형제의 ‘혁명 통치’가 62년 만에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 라울 카스트로(89)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가 16일(현지 시각) 시작된 당 대회에서 퇴임을 선언하고 직책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AP와 dpa통신 등이 보도했다. 일당 독재인 쿠바에서 공산당 총서기는 최고 권력의 자리다. 카스트로의 퇴장으로 20세기 중반 중남미를 휩쓸었던 공산·사회주의 혁명 1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지난 1959년 피델 카스트로(2016년 사망)가 동생 라울 카스트로와 함께 친미(親美)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혁명으로 집권한 이래, ‘카스트로’라는 성(姓)이 쿠바 정부와 당의 최고위직에서 모두 사라지는 것은 처음이다. AP는 “쿠바인들은 카스트로 가문이 국민의 모든 일상을 지배했던 시대가 62년 만에 종료되는 데 대해 흥분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카스트로의 후임에는 현재 명목상 국가 수반인 미겔 디아스카넬(61) 대통령 겸 국가평의회 의장이 맡게 됐다. 공산당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디아스카넬은 3년 전 카스트로의 후계자로 낙점된 충직한 인물이지만, 혁명 직후인 1960년에 태어난 ‘혁명 후(後) 세대’이며 개혁을 표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정한 의미에서 쿠바 정치의 세대교체가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카스트로 형제는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 등과 손잡고 반미(反美)와 제국주의 해방, 국가 주도 통제 경제를 내세워 집권한 뒤 의료·교육 전면 무상화를 추진했다. 에스파냐 식민지에서 ‘미국 부자들의 놀이터’로까지 전락한 쿠바를 단번에 사회주의 세상으로 탈바꿈시킨 카스트로의 혁명은 전 세계 좌파와 공산주의 세력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962년부터 이어진 미국의 제재로 쿠바 경제는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소련이 붕괴하면서 쿠바는 더욱 절박한 사지(死地)로 몰렸다.
이념으로 사회주의 천국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비참하고 배고팠다. 최근 이중통화제 개혁 여파로 물가가 500% 치솟으면서 생필품·의약품 품귀를 빚고 있고, 소련 붕괴 직후처럼 식량 배급 줄이 거리 곳곳에 늘어서고 있다. 젊은 반정부 시위대와 예술가들은 피델 카스트로의 유명한 구호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비꼬아 “거짓말은 그만하라. 조국 그리고 삶”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극심한 경제난에 불투명한 정권 변동기가 겹치면서 현재 쿠바 민심은 폭발 직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오바마 정부가 해제했던 쿠바 제재를 트럼프 정부가 되살린 데다, 코로나로 쿠바 최대 돈줄인 관광 산업도 초토화됐기 때문이다.
카스트로 형제를 두고 “형이 시(詩)라면 동생은 산문”이란 말이 있다. 동생 라울은 형 피델보다는 이념적 치장을 덜 중시하고 현실적인 측면이 강했다는 것이다. 다만 라울 카스트로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결함은 상당 부분 인정했으나, 스스로 고칠 역량은 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라울은 10여년 전부터 2선 후퇴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하면서 권력을 조금씩 이양했다.
그동안 카스트로 곁에서 묵묵히 후계 수업만 받아온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어떤 인물인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미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디아스카넬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로큰롤과 비틀스를 좋아하고, 카스트로 형제가 입던 올리브색 군복이 아닌 흰 전통 셔츠를 입고 다닌다. 특히 그는 쿠바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전면 도입했고, 정부 회의에서 태블릿 PC를 사용하고 트위터를 쓸 정도로 트렌드에 밝다고 한다. 윌리엄 르그란데 아메리칸대 교수는 AP에 “당분간 카스트로가 막후 통치를 할 가능성은 크지만, 디아스카넬이 개혁을 추진할 여력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디아스카넬은 지난 2월 대부분의 산업에 민간 기업의 활동을 허용하고, 카스트로 정권이 외환 통제를 위해 유지했던 이중통화제(국영기업과 국민이 쓰는 달러 대비 페소 환율을 다르게 하는 것)를 폐지하는 등 부분적 자본주의 개혁에 돌입했다. 쿠바 경제를 투명화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투자를 유치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