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이스라엘 전투기 폭격으로 붕괴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리말의 한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대원들이 6세 소녀 수지양을 구출하고 있다. 이 건물이 붕괴한 지 7시간 만이다. 외신에 따르면 수지양은 병원에서 아버지를 만났지만, 어머니와 형제₩자매 4명은 폭격 당시 사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17일 오전(현지 시각) 팔레스타인 자치령 ‘가자지구'에 대한 폭격을 8일째 감행했다. 42명의 최다 사망자가 나온 전날보다 강도 높은 공격이 이어지자 이스라엘을 향한 국제사회 비판 여론도 커지고 있다. 미국·유럽 등 전 세계 곳곳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스라엘 공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날 새벽 이스라엘군은 전투기 50대를 동원해 가자지구를 약 20분간 맹폭했다. AP통신은 “42명이 사망한 전날 폭격보다 범위도 넓고, 강도도 높았다”고 했다. 이스라엘군은 특히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 고위 사령관 9명의 자택을 공격했고, 이 중 이슬라믹지하드(PIJ) 가자 북부 지역 사령관 후삼 아부 하비드가 사망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무력 충돌 이후 팔레스타인 측에서만 최소 197명(어린이 58명 포함)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번 폭격으로 희생자는 200명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사망자는 10명이다.

5월 15일 (현지 시각)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 코플리 광장에 수천명이 모여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를 갖고있다. 이들은 이스라엘군에 대한 국제사회와 미국의 펀딩 중단을 주장했다./AFP 연합뉴스

연이은 공격으로 초토화된 가자지구는 극심한 식수·식량 부족에 전력난까지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 시설이 부족해 부상자 치료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2014년 ’50일 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진입해 전면전을 벌인 ’50일 전쟁' 당시 사망자는 2200명에 달했다.

여성과 어린이 등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명을 지켜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BLM(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PLM(Palestinian Lives Matter·팔레스타인인 생명도 소중하다)’ 구호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백인 경찰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개인의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요구가 커졌는데, 이번 무력 충돌 사태로 가자지구 사망자가 급증하자 무고한 민간인을 더 이상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외교 안보 차원이 아닌 ‘불평등’과 ‘생존권'의 문제로 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전통적으로 친(親)이스라엘 진영으로 분류되는 미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32) 하원 의원은 지난 13일 의회에서 “팔레스타인인은 살아남을 권리를 갖는가? 이를 믿는다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연설했다. 전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은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갖는다”고 한 말을 비꼰 것이다. 미 좌파 진영의 대부로 불리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17일 MSNBC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은 매년 40억달러 이상을 이스라엘에 지원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명령할 권리가 있다”고 일갈했다.

국제사회는 무력 충돌 중단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실을 보지는 못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6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충돌 중단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첫 화상 공개 회의를 소집했지만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해 “무고한 사람이 많이 죽었고, 그중에는 아이들도 있다”며 “끔찍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주말 동안 전 세계 곳곳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연대 집회가 이어졌다. 영국 런던에서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고 외치는 시위대가 집결했고, 스페인 마드리드 푸에르타델솔 광장에도 2500여 명이 모여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스위스 제네바 등에서도 이스라엘 공습 규탄 시위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