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21세기 최악의 내전‘으로 지난 10년간 약 50만명이 목숨을 잃은 시리아에서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각) 압승했다. 이에 따라 2000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알아사드는 4선에 성공, 오는 2028년까지 권력을 보장받게 됐다. 역시 독재자였던 부친 하페즈 알아사드의 재임 기간과 합칠 경우, 그의 가문이 58년간 집권하게 된다.

AP통신에 따르면, 알아사드는 이번 대선에서 전체 유효 투표의 95.1%를 얻었다. 살룸 압달라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2명의 다른 후보가 있었지만 둘 다 ‘어용 후보’로서 사실상 들러리였다. 시리아에서는 알아사드의 오랜 독재로 선거는 그의 장기 집권을 위한 요식행위로 전락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5국은 미리 이번 대선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는 터키는 이번 대선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알아사드는 1971년부터 2000년까지 집권한 부친 하페즈 알아사드의 뒤를 이어 2000년 권력을 잡았다. 시리아 다마스쿠스대 의대를 졸업하고 런던에서 안과 전문의 과정을 이수하던 알아사드에게 1994년 삶을 바꿔놓은 일이 생긴다. 후계자인 형 바실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급히 귀국한 알아사드는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2000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육군 원수, 집권 바트당 총재 등 급조한 감투를 쓰고 대선을 치렀다. 후보는 알아사드 한 명뿐이었고 99.7%의 찬성으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는 취임 초 서방 유학파답게 국영 기업 민영화, 정치범 석방, 부정부패 추방으로 개혁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슬람 보수 세력과 군부의 저항을 받자 집권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개혁을 중단했다. 오히려 장기 집권 토대를 만드는 데 힘쓰기 시작했다. 알아사드는 2007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부자 세습 통치에 국민들의 반감이 거셌다.

결국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반군이 봉기했다. 당시 10대 학생들이 담벼락에 알아사드를 비판하는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가혹 행위를 당한 것이 도화선이었다. 분노한 시리아 국민 100만명 이상이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 젊은이들이 총칼을 들고 속속 반군에 합류했다. 2012년 반군이 제2의 도시 알레포를 장악하면서 알아사드 정권은 전체 영토의 4분의 1만 통치할 수 있을 정도로 밀려났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권 퇴진을 요구했지만 알아사드는 이를 거부했다.

알아사드는 권력을 지탱하기 위해 강력한 반미 노선을 표방하며 러시아·이란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수세에 몰렸던 알아사드는 2015년 러시아군 개입을 계기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알아사드의 정부군은 반군 진압을 위해 사린, 염소 가스 등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잔악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내전에 빠진 틈을 노려 극단주의 테러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영토의 일부를 잠식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혼란은 가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전으로 인한 시리아 사망자는 약 50만명으로 추산된다. 일부에서는 6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기도 한다. 거주지를 잃고 떠돌게 된 사람이 1100만명에 달하고, 550만명이 국외로 떠났다. 내전 발발 직전 2200만명에 달하던 시리아 인구는 1700만명으로 줄었다. 시리아 경제는 초토화됐다. 식량·전기 부족, 물가 폭등, 의료 체계 붕괴를 겪고 있다. 전체 국민의 80% 이상이 빈곤층이다. 유엔은 전체 내전 피해를 4000억달러(약 446조원)로 추산했다. 나라가 초토화되는 동안에도 알아사드의 부인 아스마는 서방에서 온라인 주문으로 명품 쇼핑을 즐겨 ‘시리아판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시리아 내전은 아직도 끝날 기미가 없다. 알아사드 정권은 시리아 영토의 70%가량만 통치하는 중이다. 반군은 북서부에서 항전하고 있고, 별개로 쿠르드족이 북동부를 장악하고 독립 국가 건설을 꿈꾸고 있다. 알아사드를 돕는 러시아·이란과 반군을 돕는 터키는 지난 5일 휴전에 합의했다. 하지만 완전한 내전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18년에도 휴전을 했다가 7개월 만에 다시 전투가 벌어진 전례가 있다.

알아사드는 4선에 성공했지만 앞날이 탄탄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초토화된 가운데 미국의 경제 제재 수위가 높아져 알아사드 정권의 목을 조르고 있다.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시리아 문제에 대한 개입을 꺼렸지만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다른 접근법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에는 러시아·이란의 지원도 충분하지 않아 알아사드가 정권을 지탱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