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의 피살 사건으로 중남미 지역의 정세 불안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 5월 모이즈(오른쪽에서 둘째) 대통령이 부인 마르티네 모이즈(왼쪽에서 둘째) 여사와 함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열린 국기 제정 기념식에 참석했을 당시의 모습. /AP 연합뉴스
(포르토프랭스 AFP=연합뉴스) 피살된 카리브해 빈국 아이티의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의 사저 주변에서 7일(현지 시각) 경찰관이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모이즈 대통령은 전날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사저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숨졌으며 영부인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의 대통령 피살 사태가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유엔은 이로 인해 난민 증가 등으로 중남미 지역에 정치 불안이 확산할 가능성을 우려, 8일 안전보장이사회를 개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조브넬 모이즈(53) 아이티 대통령은 7일 새벽 1시쯤(현지 시각)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사저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격으로 살해됐다. 부인 마르티네 모이즈 여사는 중상을 입은 후 이날 저녁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마이애미 AP=연합뉴스) 7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라이더 외상 센터'에 전날 괴한들의 총격으로 숨진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의 부인 마르티네 여사가 이송되고 있다. [마이애미 헤럴드 제공]

클로드 조제프 임시총리는 이날 긴급 각료회의를 거쳐 아이티 전역에 군사 계엄령과 함께 2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도 폐쇄됐다. 뉴욕타임스는 “아이티 국민들은 불안에 떨며 라디오 앞에 몰려들어 뉴스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티 경찰은 이날 밤 “달아난 용병(암살범) 중 4명을 총격전 끝에 사살하고 2명을 체포했다”며 “이들에게 인질로 붙잡혔던 경찰 3명도 구출됐다”고 밝혔다. 아이티 당국은 일제히 암살 용의자들을 ‘용병(mercenary)’이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그 이유나 이들의 구체적 신원은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모이즈 대통령이 야권과 격렬히 대립해왔고, 반군과 무장 갱단의 봉기가 계속됐다는 점에서 이들이 고용한 용병이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하다.

아이티 대통령이 피살된 7일 사저 인근에서 용의자 여러 명이 "미국 마약단속국 작전이다. 물러나라"면서 경호원들을 제치고 진입하는 장면. 미국 마이애미헤럴드가 주민 제보를 받아 게재한 영상이다. /트위터

암살 용의자들은 현장에서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을 자칭했다고 한다. 미 마이애미헤럴드는 당시 주민이 찍은 영상에서 소총을 든 용의자 4~5명이 미국식 영어로 “DEA 작전 중이니 물러서라”라고 말하며 대통령 사저로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미 DEA가 미국으로 마약이 들어오는 중남미 관문 중 하나인 아이티의 마약 밀매를 감시하기 위해 포르토프랭스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아이티 대통령 암살범들은 DEA가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치트 에드먼드 주미 아이티 대사도 “암살범들은 DEA 요원으로 위장한 전문 용병들인 것 같다. 자기들끼리는 스페인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이티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레올어다.

(포르토프랭스 AP=연합뉴스) 작년 2월 모이즈 대통령이 수도 포르토프랭스 외곽에 있는 사저에서 언론과 인터뷰하는 모습.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혐오스러운 행위 앞에 모든 아이티 국민이 단결해 폭력을 배척해달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긴박하게 움직여 8일 긴급회의를 열고 아이티 사태를 논의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극악무도한 행위를 규탄하며 아이티 영부인의 회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며 “미국은 아이티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이번 범죄로 (아이티와 주변 지역이) 불안정과 폭력의 소용돌이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아이티에서 정부의 급격한 연료비 인상 조치에 반발하는 과격 시위가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의 퇴진 요구로까지 번졌다. 연료 가격 인상에 대한 시위가 벌어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거리에 연기가 자욱하다.

그동안 아이티가 안정돼야 한다는 원칙하에 모이즈 대통령 체제를 지지해 온 미국과 중남미 국가들은 이번 사태로 무장 세력 간 폭력 사태, 난민 증가로 번질까봐 우려하고 있다. 특히 남부 국경의 불법 이민자 급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남미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온 바이든 미 행정부는 아이티발 악재에 당황하는 분위기다. 아이티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미니카공화국은 국경을 즉시 폐쇄하고 경비를 강화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남미 콜롬비아의 이반 두케 대통령은 “미주기구(OAS·아메리카 대륙의 협력을 위한 기구)가 아이티에 민주 질서 회복을 위한 팀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티

모이즈 대통령은 바나나 수출업자 출신의 정치 아웃사이더로, 취임 후 자신의 임기 문제를 두고 야권과 충돌을 벌여왔다. 모이즈 대통령은 2015년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부정선거 시비가 일며 예정보다 1년 늦은 2017년 2월 취임했다. 야권은 모이즈 대통령 임기(5년)가 2016년부터 시작돼 올해 2월 끝난 만큼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모이즈는 취임 후부터 5년이라고 하며 물러나지 않았다. 야권이 대통령 퇴진 시위를 계속하자 모이즈 대통령은 지난 2월 쿠데타 시도를 적발했다며 대법관 등 야권 인사 23명을 전격 체포했다.

지난 2010년 1월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은 규모 7.0의 강진으로 25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이티 지진은 남쪽 캐리비언 판과 북쪽 북아메리카 판 사이에 자리한 ‘엔리키요 플랜틴 가든 단층’ 지대에서 두 지각이 충돌하면서 발생했고, 당시 지진으로 30만호 이상의 주택이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었고, 150만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이들 중 약 8만명은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난민으로 남아있다.

아이티는 세계 최초로 흑인 노예가 세운 독립 공화국이지만 지난 200년간 정정 불안과 극도의 빈곤으로 신음해왔다. 스페인에 이어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던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1804년 독립에 성공했으나, 프랑스가 100여년간 근대화 배상금이란 명목으로 수탈을 계속했다. 1915~1934년엔 미 군정이 실시됐다. 1950~80년대 30여년간 뒤발리에 가문의 독재가 이어졌고 이후에도 군사 쿠데타와 무장 세력 봉기가 끊이지 않았다. 독재 시절 산림을 다 베어버려 작은 자연 재해에도 큰 인명 피해를 낳고 있다. 2010년 25만명이 사망한 아이티 대지진 피해는 아직도 복구되지 않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인구 60% 이상이 하루에 2달러 이하를 벌어서 먹고 살고 있다. CNN을 비롯한 주요 외신 매체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아이티의 정세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졌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