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선 1차 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상파울루에서 노동자당 대선후보 룰라 전 대통령이 마지막 거리유세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룰라의 귀환.’ 중남미 최대 국가 브라질에서 2일(현지 시각)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7) 전 대통령의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전망이 나온다. 2000년대 브라질을 이끌며 중남미 좌파의 대부(代父)로 불렸던 룰라가 복귀하면, 인구 2억의 브라질뿐만 아니라 중남미 정치 지형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진보 노동자당(PT) 후보로 나선 룰라 전 대통령과 보수 자유당(PL) 소속 자이르 보우소나루(67) 현 대통령의 양강 구도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룰라의 승리가 유력하다고 주요 외신 매체들이 보도했다. 룰라의 여론 지지율이 50% 안팎으로 보우소나루를 크게 앞서면서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해 승리를 확정 지을 가능성이 높다고 현지 매체들과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오는 30일 1·2위 후보를 두고 결선 투표가 치러진다.

지난 1일 브라질 산타 카타리나주에서 대선 재선에 나선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자유당 관계자들과 함께 거리유세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번 브라질 대선은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이념 대립’이란 평가 속에 좌우 정당 지지자 간 팽팽한 대립과 긴장 속에 치러졌다. 대선 전날까지 수도 브라질리아와 상파울루 등 각지에서 양 후보가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며 11년 만의 룰라 복귀냐, ‘열대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우파 정권 연장이냐를 두고 세 대결을 벌였다. 룰라는 2일 투표에서 완승해 승부를 조기에 확정 짓는다고 자신한 반면, 보우소나루 측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선까지 선거를 끌고 가 막판 뒤집기를 노린다는 전략을 구사했다.

11년만의 귀화을 노리는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이 대선 하루 전인 1일 상파울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차 투표에서 승리를 확정지을 것을 자신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룰라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최근 3년여간 중남미에 속속 들어선 중도 좌파 정부 수립 물결, 즉 ‘2차 중남미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사상 최초로 중남미 주요 6개국(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콜롬비아·칠레·페루)에 일제히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룰라 집권 시 이웃 국가들과 협업해 좌파 정치·경제·사회 어젠다를 강화할 전망이다. 룰라는 부자 증세를 통한 재정 확충과 사회복지 강화, 엘리트주의 혁파 등을 공약하며 2000년대 초반의 ‘룰라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빈농의 아들이자 노조 지도자 출신인 룰라 전 대통령은 2002년 당선돼 이후 8년간 브라질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1차 중남미 핑크 타이드’를 이끌었다. 당시 실용 중도좌파의 기치를 걸고 이념과 진영을 초월한 경제·사회 정책을 구사, 2002년 세계 13위였던 브라질 경제를 2010년 7위로 끌어올렸다. 브라질 빈곤 인구를 4000만명 줄이고 월드컵과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해 룰라는 2011년 퇴임 당시 지지율이 87%에 이르기도 했다. 좌파를 표방했지만 반미(反美)나 극단적 사회주의와는 거리를 뒀다. 재임 당시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대선 전날인 1일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룰라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지 집회를 갖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룰라는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물러났지만, 이후 좌파 진영 전체가 연루된 부패 수사와 호세프 탄핵 사태 속에 룰라도 뇌물 수수 혐의로 22년형을 선고받고 2018부터 1년 6개월간 복역했다. 그러나 지난해 브라질 대법원이 “수사가 편파적이었다”며 룰라에 대한 유죄 판결을 취소, 대선 등판 길을 열어줬다. 이후 현 보우소나루 정권 심판론과 맞물려 룰라는 내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지켜왔다. 룰라는 이번 선거운동에서 넬슨 만델라,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에 준하는 정치 탄압의 희생자를 자처하며 “아무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 나는 더 강해졌다”며 화려한 재기를 자신해 왔다.

브라질은 팬데믹 대응 실패 여파로 경제가 초토화되며 빈곤선 아래 인구가 2배 급증했다. 지난 1일 리우 데 자네이루의 도시 슬럼가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현재 브라질은 코로나 팬데믹 대응 실패 여파로 경제가 붕괴해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에 달한다. 실업률은 9%를 넘는다. 빈곤선(poverty threshold) 아래 인구가 팬데믹 이전보다 2배 많은 3300만명에 달하며 인구의 절반이 넘는 1억2500만명이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다. 또 보우소나루의 환경 난개발 정책으로 인한 열대우림 아마존 파괴 등이 국제문제화됐다.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는 이 같은 불황과 사회 불안이 안정적 성장을 구가했던 룰라 향수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일 브라질 대선 전날 리우 데 자네이루를 상징하는 '구세주 그리스도상'이 "평화 속에 선거를 치르기를"란 문구로 불밝혀져 있다. 보우소나루 정권의 대선 불복에 따른 소요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브라질 정치권이 극도로 분열돼 있어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는 후보들의 대선 결과 승복 여부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여론조사에서 뒤처지자 전자 투표 시스템 등 선거 전반에 부정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선 전날까지도 “선거 패배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지지자들은 미리 ‘군사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군사 쿠데타 혹은 2021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지지자들의 1·6 의사당 난입 사태 같은 국가기관 상대 폭동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