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나를 지지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두 개의 브라질은 더는 없다.”
브라질 최초 3선 대통령이 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 당선자는 30일 저녁(현지 시각) 당선이 확정되자 이렇게 말했다. 역대 가장 분열된 선거에서 최소 득표 차로 신승(辛勝)한 그의 고민이 묻어나는 수락 연설이었다는 평가다.
룰라는 이번 대선 승리까지 수년간 정치적 고초와 피 말리는 접전 등 여러 고비를 넘어야 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인생 역정과 비슷하다. 특히 이번 대선에선 ‘룰라 향수(鄕愁)’를 타고 초접전 승부를 승리로 마무리했다.
1945년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룰라는 7세 때부터 땅콩 장사와 구두닦이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고, 14세 때부터 상파울루 인근 금속 공장에서 일하다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1960년대 공장 동료였던 첫 부인을 산업재해성 질병으로 잃고 노조 활동에 투신했다. 1980년대 브라질 사상 최대 규모 파업을 주도하며 전국적 지명도를 얻은 뒤 노동자당(PT)을 창당했고, 1986년 연방 하원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강성 기조를 내려놓은 룰라가 ‘실용 좌파’를 내걸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2003~2010년 브라질은 연평균 4%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기업인 출신을 러닝메이트로 세우고 보수와 진보 정책을 적절히 혼용한 결과, 외환보유액이 그의 집권 중 10배 늘어 브라질은 만성 채무국에서 채권국이 됐다. 빈곤율과 영아 사망률도 급감했다. 2010년 퇴임 당시 그의 지지율은 85%에 육박,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라는 말도 나왔다.
2014년 노동자당 핵심 인사들에 대한 부패 의혹 수사가 시작되고, 그의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당한 뒤, 룰라는 뇌물 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구속돼 2018년부터 1년 반 복역했다. 지난해 연방대법원이 재판 절차를 문제 삼아 실형 결정을 모두 무효로 선언해 족쇄가 풀린 룰라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코로나 실정(失政)을 심판하겠다며 분열주의에 성난 민심에 올라타 세 번째 대통령직 도전을 선언했다.
최근 1년 이상 여론조사에서 1위를 놓치지 않았던 룰라는 지난달 2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그의 과거 부패 혐의와 좌파 정책에 염증을 느낀 보수층이 결집하며 막판까지 고전했다.
이번 대선에서 룰라는 부자 증세와 최저임금 인상, 사회복지 강화, 엘리트주의 혁파 등을 공약하며 서민층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보수·중도층의 ‘룰라 반감’이 강한 것으로 확인된 데다, 의회와 지방정부 권력을 여전히 자유당이 장악해 여소야대 구도가 펼쳐지는 만큼, 그의 진보 정책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또 2000년대 집권 당시보다 세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경제정책 운용에도 제약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간발의 차로 재선에 실패한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지지층, 군부가 대선에 불복해 폭력 사태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대선 결과는 내가 이기거나, 살해당하거나, 체포되는 것 세 가지 중 하나”라며 불복을 예고해온 보우소나루는 31일 새벽까지 승복 선언을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