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최대국 브라질의 ‘룰라 3기’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12년 만에 권좌에 복귀한 남미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8)는 1일(현지 시각)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4년 임기를 시작했다. 브라질 최초의 3선 대통령이다.
룰라의 취임 첫 일성은 “무너진 브라질을 재건하겠다”였다. 2003~2010년 첫 집권기에 이뤄낸 브라질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브라질의 양적·질적 성장이 지난 10여년간 후퇴했다”며 “(앞으로) 경제의 바퀴가 다시 돌 것이다. 브라질은 다시 세계 경제의 선두에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대선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모으겠다는 ‘국가 통합’ 구상도 밝혔다. 그는 심화한 불평등과 빈곤층에 대해 언급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룰라가 집권한 2000년대 초 브라질은 7%대 경제 성장률과 세계 6위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자랑하며 황금기를 구가했다. 당시 미국이 기준금리를 낮추며 경기 부양에 나서 브라질 같은 신흥국의 차입과 외자 유치가 용이했고, 원자재 시장도 호황이었다. 하지만 룰라 퇴임 이후 브라질 GDP 성장률은 곤두박질쳐 1%를 밑돌았다. 올해 예상 성장률도 0.6%에 그치고 있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현재 미국발 금리 인상 등 각국 긴축으로 인한 침체 위기, 브라질의 막대한 부채 누적 등으로 룰라는 전혀 다른 경제적 여건에 놓였다”며 좌파 정부의 전매특허인 재정 지출 여력이 적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대선 이후 계속되는 정치 분열상과 관련, “개인적 구상에 국가를 복종시키려 했던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복수심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오류를 범한 이들은 법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쿠데타 시도에 대한 처벌을 예고했다. 이날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등 대도시들은 룰라 취임 축하 파티와 반대 시위로 양분됐다.
끝내 대선 승복을 하지 않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이날 룰라 취임식에도 불참했다. 지난달 30일 미 플로리다로 떠난 보우소나루는 한 달 이상 머물면서 자신을 향한 새 정부의 권력 남용 관련 수사 향방을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브라질 대통령 취임식에선 전임 대통령이 후임자에게 어깨띠(sash)를 직접 둘러주는 게 전통인데, 이날은 시민 대표들이 보우소나루 역할을 대신했다. 14세 때부터 쓰레기를 수거해 생계를 이어온 여성 환경미화원과 원주민, 장애인, 흑인 소년 등이 나섰다. 앞서 룰라는 첫 내각 인선에서 보수당을 제외한 중도·좌파 9개 정당 대표를 대거 포함시켜 사실상 대규모 연정을 꾸렸다. 장관 37명 중 30%인 11명을 여성으로 채워 여성 장관 비율을 역대 최대로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