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새벽(현지시간) 발생한 규모 7.8의 지진으로, 튀르키예와 맞닿은 시리아 북서부에서도 지금까지 2150명 이상이 숨졌다. 아직도 수백 명이 건물 잔해에 깔려 있다.
그러나 알레포ㆍ하마ㆍ라타키아 등의 도시가 있는 이 지역엔 국제사회의 구조ㆍ원조의 손길이 거의 닿지 못한다. 이 지역에서의 구조 활동은 지역 민간인들로 구성된 ‘시리아민방위대(Syria Civil Defense)’에 의해 이뤄진다. ‘화이트 헬멧(White Helmet)’으로 알려진 이들이다. SCD 소속 한 봉사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잔해 속에서 사람들이 소리지르는 것을 듣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뱌사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는 2021년부터 이 반군 세력이 장악한 이 시리아 북서부에 외부 구호단체가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국경 통로를 한 개만 남겨 놓고 모두 끊었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유일하게 남은 튀르키예에서 이곳으로 이르는 ‘바브 알-하와(Bab al-Hawa)’ 국경 통로를 통해 지원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이번 지진으로 이 통로로 이르는 길마저 파괴되고 폐쇄된 것이다. 국제 구조ㆍ구호팀과 물자가 들어갈 길이 없어졌다.
이 탓에, 7일까지 이 국경 통로의 튀르키예 쪽에는 건축 자재와 구조 물자를 실은 차량들이 늘어섰지만, 길이 막혔다. 시리아 쪽 재난 지역엔 중장비가 부족하고, 오랜 내전 탓에 의료진도 많이 떠났다.
◇아사드, 반군 지역에 외부 원조 못 닿게 아사(餓死)정책 펴
시리아 전체 국토의 4%에 불과한 북서부는 이번 지진 이전에도, 2011년부터 시작한 내전으로 인해 이미 폐허가 된 지역이다. 사회기반시설의 65%가 파괴돼 방치됐고, 인구 410만 명 중 90%가 국제 사회의 원조에 의지해 사는 국내 난민들이다.
알레포와 이들리브 등의 도시가 있는 북서부는 수도 다마스쿠스의 지배를 받는 지역과, 튀르키예의 영향 하에 있는 반군,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족 민병대, 유엔과 안보리가 ‘국제테러집단’으로 지목한 이슬람 지하드 세력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의 세력권으로 또 나뉜다.
아사드 정권과 이를 지원하는 러시아는 HTS에게 국제사회의 원조 물자가 가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끌어내 기존에 이곳에 닿을 수 있었던 국경 통로 4곳 중에서 바브 알-하와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쇄했다.
러시아는 작년 말에도 남은 한 개 통로를 6개월 연장 유지하는 안보리 결의안을 비토(veto)했다가, 지난 달에 결국 승인했다.
아사드 정권의 저의는 수도 다마스쿠스를 통해서만 반군 지역에 외국의 원조품이 들어가게 해, 누가 무엇을 얼마나 받는지 철저히 통제해, 궁극적으로 반군 세력과 동조자들은 굶주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튀르키예에서 시리아로 직접 통하는 ‘바브 알-하와’ 통로는 반군 지역 주민들에겐 ‘생명선’이었다. 그런데 현재로선 바브 알-하와에 접근하는 것조차 엄청난 고난길이 됐다.
당장은 이 지역에 위치한 국제 구호단체들이 그간 전쟁으로 대량 난민이 발생하고 재난이 끊이지 않았던 경험을 토대로 미리 비축해 놓은 구호품이 있지만, 오래 갈수는 없다.
◇시리아는 국제사회에 원조 요청도 안 해
아사드 정권은 8일까지 국제사회에 원조 요청도 안 했다. 아사드 정권은 지진 피해 지역이 반군과 터키 영향권 하에 있으니까,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되레 국제사회가 시리아에 내린 경제 제재 조치를 풀어달라고 했다. 이 경제 제재는 아사드 정권이 내전 중에 양민을 학살하고 살인 가스로 살해하는 등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러 내려진 조치다.
미국과 나토(NATO),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시리아에 구조ㆍ원조 팀을 보내겠다고 밝혔지만, 시리아는 반응이 없다. 지금까지는 유일한 아사드 정권의 후원세력이라 할 이란이 6일 70톤 가량의 식량과 텐트, 의료품을 공수(空輸)한 것이 전부다.
아날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이 7일 러시아를 비롯한 모든 국제사회는 아사드에게 시리아의 북서쪽으로 가는 통로를 열도록 영향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