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신화 연합뉴스.

22일 미국과 카타르, 이스라엘 정부는 4일 간 이스라엘군이 가자 공격을 멈추고, 하마스는 최소 50명 이상의 인질을 석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딜(deal)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이어 빨라야 24일이 돼야, 휴전과 인질 석방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첫 단계에서 풀려나는 인질은 여성과 어린이들로, 여기엔 미국인 여성 2명과 아기 1명도 포함돼 있다. 이스라엘 측은 수감된 팔레스타인인 죄수 150명을 석방하기로 합의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이번 인질 석방 딜이 발표되기까지 지난 5주 간 “극도로 고통스러웠던(미 행정부 고위관리의 표현)” 협상 전말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딜의 성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도 매우 중요했다. 이스라엘군의 가자 공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1만2000명을 넘어서고(하마스 발표), 민주당 내에서도 막대한 팔레스타인 희생자 숫자에 놀라 휴전 압박이 거센 상황이었다.

지난 19일 발표된 미 NBC 방송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의 지지율은 40%로 추락했다. 바이든의 외교정책 방향과 관리 능력을 지지한 비율은 33%로, 전달 조사보다 8% 포인트 하락했다. 그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인질들을 구출하고 이스라엘군의 잠정 휴전을 끌어내야 했다.

◇하마스 공격 수 시간 뒤, 카타르가 백악관 접촉

10월7일 테러집단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지 수 시간 뒤, 카타르가 백악관에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 가능성을 알려왔다. 카타르는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 등 일부 수뇌부 인물들에게 망명처를 제공하고 있지만, 미국의 주요 중동 우방국이기도 하다. 또 공식적으로는 외교 관계가 없는 이스라엘과도 백 채널(back channel)을 유지하고 있다.

11월11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이슬람협력기구(OIC) 정상회의에 참석한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로이터 연합뉴스

카타르는 백악관 측에 소수의 협상팀을 구성해서, 카타르ㆍ이스라엘과 비밀리에 협조할 수 있기를 원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중동조정관인 브레트 맥거크와 NSC 수석법률가인 조슈아 겔처에게 이 일을 맡겼다. 처음엔 다른 부처는 전혀 알지 못하고,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앤서니 블링컨 국무장관 정도만 아는 ‘비밀 셀(cell)’이었다.

맥거크는 매일 아침, 카타르의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과 통화했다. 그 결과는 설리번 보좌관을 통해 바이든에게 보고됐다. 설리번은 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최측근 참모 2명과 계속 접촉했다.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은 240여 명. 여기엔 어린이 33명, 하마스 공격 이후 실종된 미국인 14명 이상, 키부츠 농장에서 일하던 태국인 노동자 20여 명도 포함돼 있다. 이스라엘군은 11월16일 가자 시티의 알시파 병원 인근에서 2명의 인질 시신을 수습했다.

◇첫 모녀 인질 석방으로, 카타르 채널 신뢰 얻어

철저한 불신과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전개 속에서, 인질 석방은 난항을 거듭했다. 그러나 10월23일 하마스는 모녀(母女)인 이스라엘 인질 2명을 석방했다. 백악관은 카타르 채널이 더 많은 인질 석방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11월21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 시민들이 하마스와 협상해서 약 240명에 달하는 인질부터 먼저 구해내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이스라엘 측에선 다비드 바르니아 모사드(해외정보기관) 국장이 협상의 전권을 쥐고, 미 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과 인질 석방안의 윤곽을 세우기 위해 접촉했다. 바이든은 네타냐후와 10월20일, 23일, 25일 연거푸 통화한 것을 포함해 모두 13번에 걸쳐 인질 석방과 잠정 휴전 문제를 놓고 직접 접촉했다.

◇하마스의 ‘인질 협상’ 반응 이틀 뒤, 이스라엘군 가자 진입

하마스가 처음 반응한 것은 10월25일.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풀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그때까지도 인질이 살아있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을 연기할 만큼 하마스의 반응이 신뢰성이 높지는 않다고 봤다.

이스라엘군은 10월27일 지상군 투입을 시작했고, 이후 3주 동안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를 점령해가는 동안, 미국과 카타르, 이집트 간에 협상은 계속됐다. 바이든은 직접 카타르 국왕에게 전화해, 1단계에서 여성ㆍ어린이를 석방하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죄수들을 풀어주는 윤곽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1단계에서 모든 여성과 어린이 인질을 석방하고, 이들의 생존과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마스는 50명 석방은 보장하지만, 석방의 기준조차 밝히기를 거부했다.

◇ 네타냐후, 미 협상대표 소매 잡고 “이 딜 꼭 필요하다”

11월 9일 번스 CIA 국장과 바르니아 모사드 국장은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타밈 국왕과 석방 합의안의 문구를 검토했다. 3일 뒤인 12일, 바이든은 타밈 국왕에게 “50명의 신분을 미리 확인할 정보와 이름이 없다면, 협상을 계속 할 근거가 없다”고 통보했다. 타밈 국왕은 “협상안이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곧 하마스는 풀려날 인질 50명을 선정하는 기준을 통보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이 기준대로라면, 석방 인질이 50명 넘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50명을 훨씬 웃도는 숫자의 석방을 원했다. 11월 13일 바이든은 네타냐후와 통화해, “일단 이 안(案)을 받고, 추가 석방을 위해 노력하자”고 설득했다. 두 사람은 대략의 안에 합의했다.

같은 날, 맥거크 백악관 중동조정관도 이스라엘에서 네타냐후를 만났다. 힘든 협상을 마치고 나오는데, 네타냐후가 맥거크의 팔을 잡았다. 네타냐후는 “우리는 이 딜이 꼭 필요하다”며, 최종 합의 조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타밈 카타르 국왕에게 한 번 더 전화해 줄 것을 간청했다.

◇알시파 병원 공격 이후, 하마스 연락 끊어

하지만 딜이 거의 성사되려는 시점에, 이스라엘군은 지하에 하마스 지휘부가 있다고 보는 가자 시티의 알시파 병원에 진입했다. 하마스는 모든 대화를 끊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병원 내부를 탐색하지 말고,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병원이 계속 가동되게는 하겠다고 밝혔다. 이 병원 안팎에선 하마스가 파놓은 땅굴과 비축한 무기들이 발견됐다.

11월22일 이스라엘군 병사가 가자 시티 내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 지하에 테러집단 하마스가 구축한 지하 땅굴을 탐색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하마스는 여전히 ‘5일 휴전’을 요구했다. 11월20일 바이든은 타밈 국왕에게 다시 전화했다. “마지막 기회이고, 시간이 다 됐다”며, 하마스는 ‘4일 휴전’을 수용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다음날 맥거크 중동조정관은 타밈 국왕과 6쪽짜리 석방안 문구를 다시 검토했다. 3명의 미국인을 포함해 여성과 어린이를 우선 석방하고, 앞으로 추가 석방 가능성을 예상하는 문구를 넣었다. 타밈 국왕은 그날 밤 하마스에 이 문안을 통보했다.

21일 맥거크는 카이로에서 이집트 정보당국 수장인 압바스 카멜과 만나고 있을 때에, 하마스가 거의 모든 조건을 수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다음날 아침, 하마스는 카타르에 하마스 지도부가 이 딜을 승인했다고 통보했다.

◇이스라엘 내각 강경파도 “인질 석방” 국내 압박 속에…

이스라엘 내각도 이어 그날 저녁 7시간 격론 끝에,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을 비롯한 매파는 전쟁의 동력(動力)이 떨어지고, 휴전 기간 중에 하마스가 다시 결집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그들의 우선 순위는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악의 테러를 저지른 ‘하마스 박멸’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내에서 계속 커지는 “인질부터 구하라”는 압력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동의했다. 이스라엘 내 6개 병원에 석방된 인질들을 맞을 준비를 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 22일 한밤중에 인질 석방안이 합의된 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이번 딜은 미국인 인질을 집으로 데려오려는, 미 정부 전반에서 일하는 헌신적인 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외교와 결의를 증언한다”며 “이제 모든 과정이 완전히 이행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