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일몰(日沒)부터 14일 일몰까지의 하루는 이스라엘이 건국 76주년을 맞은 날이었다.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과 1948년 건국 전쟁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수 차례 싸웠지만, 번번이 졌다.
1991년의 제1차 걸프전쟁에선 이집트가 미국 주도의 연합군에 2개 기계화 사단을 보탰지만, 이집트군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미국이 이집트군을 제치고, 직접 상대해야 했다.
사우디의 경우, 미국의 군사적 지원 속에 중동 국가들을 이끌고 2015년 3월 예멘 내전에 끼어들어 폭격과 해상봉쇄를 했지만 결국 수렁에 빠졌고 아직까지도 예멘 반군 세력과 공식적인 휴전을 맺지 못했다.
중동 아랍국가들의 국방예산이 적은 것도 결코 아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걸프협력회의(GCC)에 속한 사우디아라비아ㆍ쿠웨이트ㆍ아랍에미리트ㆍ카타르ㆍ오만ㆍ바레인 6개국과 이집트ㆍ요르단 등 8개 아랍국가들의 국방비는 연간 1200억 달러를 넘는다고 밝혔다.
이는 작년에 테러집단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인해 국방예산이 뛴 이스라엘(274억 달러)의 4배가 넘는다. 또 나토(NATO) 30개국의 작년 국방예산 3800억 달러와 비교해도, 아랍 8개국의 전체 국방예산은 결코 적지 않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작년 국방예산은 미화(美貨)로 483억 달러였다.
아랍 8개국은 또 합쳐서 94만 4000명의 병력, 4800대의 전차, 1000대 가량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아랍과 앙숙인 이란의 병력은 61만 명이다.
이와 관련, 이코노미스트는 “아랍국가들의 군사력이 그토록 비효율적인 것은 예산이나 장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산의 대부분을 별로 쓸 데가 없는 멋진 무기 구입에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영국의 군사전문가 폴 콜린스는 이 잡지에 “아랍국가들이 직면한 것은 후티 반군들과 같은 세력의 비대칭적 위협인데, 전투기와 같은 번지르르한(vanity) 무기에 돈을 쓴다”고 말했다. 킹스칼리지런던의 안드레아스 크리그는 “아랍국가들이 서방 판매국들의 서방의 첨단 전투기를 구입하는 것은 판매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군사적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서방 군사 강국들과의 외교 일환으로 돈을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8년 4월 카타르는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는 압박과 함께 이웃의 아랍국가들로부터 무역 제재 등의 왕따를 당했다. 이후 모두 250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F-15, 영국의 타이푼,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 등 고가의 전투기 96대를 구입했다.
그러나 카타르의 상비군은 2만 7500명에 불과하고, 공군은 10%도 안 된다. 3종의 서로 다른 전투기를 조종하려면 수백 명의 조종사가 신규로 필요하지만, 카타르의 연간 조종사 배출 능력은 30명 수준이다. 또 F-15는 타격 전투기(strike fighter), 타이푼과 라팔은 공중전에 특화된 전투기다.
이에 앞서, 아랍에미리트가 16억 달러, 바레인이 38억 달러 어치의 F-16을 사들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년간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입한 해외 무기 액수의 54%는 전투기였다고 밝혔다. 전투기를 구입하면, 이를 유지하는 데만 추가로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또 2022년 12월에는 사우디가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미 의회가 對사우디 무기 판매에 제동을 걸면서, 프랑스에서 라팔 전투기를 100~200대 구매하려고 한다는 프랑스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그런데 원유를 생산ㆍ수출하는 아랍국가들에 진짜 필요한 것은 원유ㆍ화물 수송을 보장할 해군력의 증강이다. 멋진 고가의 전투기에 집착하면, 해군력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카타르가 이탈리아에서 주문한 7척의 전함을 주문하려면 660명의 수병이 추가로 필요한데, 이는 카타르 해군 병력의 4분의1에 해당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아랍국가들의 해군력은 기껏해야 해안 경비 수준”이라며 “해상 첨단 방공(防空) 체계를 위한 조기경보ㆍ요격 시스템도 없어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 능력은 보잘 것 없다”고 밝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랍국가들은 스스로 해군력에 투자하기 보다는, 미국과 영국에 해상 방위를 의존했다.
아랍 군주들이 ‘효율적인’ 군대를 키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자국군이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들 군주는 육해공 합동작전이나 훈련을 위해 필요한 자율성을 군 지휘부에 부여하기를 꺼린다. 결국 군사연습이라는 것도 고도로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고, 따라서 전투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아랍군주들이 믿는 것은 자국군이 아니라, 왕실의 엘리트 근위대다. 사우디는 13만 명의 방위군이 왕족들을 경호하는 개인 보호병력으로 존재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부에선 아랍 국가들의 병력을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의 평화유지군으로 배치하자고 하지만, 이들은 이런 거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보수적 씽크탱크인 아메리칸엔터프라이즈인스티튜트(AEI)의 중동 전문가인 케네스 폴락은 “같은 아랍국가들끼리도 서로 매우 의심한다”고 말했다. 2014, 2018년에 걸프협력회의 군사동맹체를 결성하자는 안이 제기됐지만, 작은 나라들은 큰 이웃나라들에게 군 통제권을 이양하는 것을 꺼려 이 방안은 흐지부지됐다.
아랍국가들은 자체적인 군사동맹체를 결성하기 보다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 약속을 확보하는 것에 더 우선 순위를 둔다. 이 지역의 어느 나라도 미국의 후원 없이는 전쟁을 치르는 것이 불가능해, 정보ㆍ정찰ㆍ감시ㆍ지휘통제ㆍ재급유 시설센터를 제공하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려 한다.
몇몇 아랍국가들은 2022년부터 미국 주도 하에 자국의 개별적인 레이더 탐지 시스템을 이스라엘과도 함께 연결하는 느슨한 지역 방공(防空) 네트워크에 비밀리에 참여하고 있다.
또 화석 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변하면서, 중동의 아랍산유국들은 또 인공지능(AI) 연구센터와 같이 첨단 군사기술 쪽으로 사회와 국가경제를 전환하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걸프의 아랍국가들은 멋진 군사 장비에 투자하는 것이 민간 경제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는 이들 나라의 군사력 평판을 올리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