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물질 품은 코뿔소 뿔.

뿔을 약용(藥用)으로 사용하려고 코뿔소를 마구잡이로 살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근 코뿔소 20마리의 뿔에 소량의 방사성 동위원소(radioisotopes)를 시범적으로 넣기 시작했다고,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비트바테르스란트대(Wits Univ.)가 최근 발표했다.

지난달 25일 남아공 비트바테르스란트대 과학자들이 수면 유도된 코뿔소의 뿔에 소량의 방사성 물질을 투입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비트바테르스란트대에서 ‘라이소토프(Rhisotope) 프로젝트’를 주도한 제임스 라킨 교수 팀은 3년간의 실험을 거쳐 20마리의 살아 있는 코뿔소의 뿔에 소량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투입했으며, 앞으로 6개월 간 혈액 검사 등의 면밀한 관찰을 통해 코뿔소의 안전을 확인하고 이 같은 방사성 물질 투입을 확산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25일 밝혔다.

소량의 방사능 물질을 투입하는 방법은 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밀렵 대상인 코끼리, 천산갑 등에도 적용하는 것이 검토된다. 코끼리와 더불어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천산갑은 고기와 온몸을 덮은 비늘이 중국과 베트남에서 진미(珍味)와 약재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비늘은 가죽 제품의 소재로 쓰인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매년 2만 마리의 아프리카 코끼리와 20만 마리의 천산갑이 밀렵된다.

코뿔소 뿔에 주입된 방사선동위원소의 방사선량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방사능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어서, 코뿔소의 건강이나 환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코뿔소를 잠재운 뒤에 드릴로 뿔에 구멍을 내서 방사성 물질을 넣는다.

그러나 코뿔소 뿔을 약용(藥用)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독성을 지니게 된다. 또 코뿔소 뿔에 들어간 소량의 방사성 물질은 국제 밀거래 시 항구, 공항 등의 전세계의 국경 검문소에 설치된 약 1만1000여 개의 방사선 탐지 모니터에 포착되게 된다.

전세계에는 흰코뿔소 1만6800여 마리, 검은코뿔소 6500마리 등 약 2만3300마리가 있으며, 최대 서식지인 남아공에는 검은코뿔소 2000마리, 흰코뿔소 1만3000마리가 산다.

코뿔소 뿔은 의학적으로 아무런 가치나 효능이 없다. 그런데도 중국과 베트남 등지의 전통의학에서 매우 효험이 있는 약재로 남용되며, 세계 곳곳에서 신분을 과시하는 장식품으로도 인기가 높아 밀렵이 성행한다.

국제코뿔소재단에 따르면, 남아공에서는 작년에 499마리의 코뿔소가 살해됐다. 라킨 교수는 “20시간에 한 마리 꼴로 코뿔소가 살해된다”고 말했다. 코뿔소에겐 최악의 해였던 2008년엔 남아공에서만 한 해 1만 마리 가까이 밀렵됐다. 최대 수요국은 중국과 베트남이다.

비늘과 고기 탓에, 매년 20만 마리가 밀렵되는 천산갑. 비늘은 의학적 효능이 전혀 증명되지 않은 약재와 가죽제품의 외장을 장식하는 용도로 밀매된다./세계자연기금(WWF)

코뿔소 뿔이 인기가 높다 보니, 국제 암시장에서 종종 금이나 백금, 다이아몬드, 코카인보다도 비싸게 거래된다. 작년에 1kg 당 코뿔소 뿔의 가격은 2만 5000달러(약 3474만 원)였고, 한때는 6만 5000달러까지 치솟았다. 라킨 교수는 “라이소토프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최종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코뿔소 뿔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국경을 넘는 밀거래를 적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해, 뿔을 미리 잘라내거나 뿔을 염색해 밀렵된 뿔인 것을 알리고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 등이 동원됐다.

뿔에 방사능 물질을 투입하는 방법은 반감기(半減期) 때문에 5년에 한 번씩 이 방사성동위원소를 다시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18개월에 한 번씩 뿔을 잘라내는 것보다는 비용이 적게 든다고 말했다.

남아공의 림포포 주에서 부모가 살해된 아기 코뿔소들을 돌보는 ‘코뿔소 고아원’을 운영하는 아리 밴 디벤터는 BBC 방송에 “아마 이 방법으로 코뿔소 밀렵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에서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