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지도자인 아히야 신와르(61)는 현재 가자(Gaza) 지구의 지하 터널을 빠져나와 여장(女裝)을 하고 난민들 틈에 섞여 움직이고 있다고,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고위관리들이 말했다.

신와르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거점으로 한 테러집단 하마스의 사실상 최고 실권자로, 작년 10월 7일의 이스라엘 기습 테러를 총기획한 인물이다. 신와르는 7월 31일 이스라엘 테헤란에서 하마스의 명목상 최고 지도자였던 이스마일 하니예가 살해된 뒤, 하니예가 맡았던 하마스 정치 지도자 직위까지 승계했다.

지난 14일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장 밖에서,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하마스의 최고 실권자인 아히야 신와르의 사진을 들고 있다. 그는 작년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테러를 총괄 기획했다./로이터 연합뉴스

그는 현재 이스라엘과 미국 정보기관이 합동으로 전세계에서 쫓는 테러범 중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지만, 신출귀몰하게 번번이 체포망을 빠져나갔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그의 소재 파악을 위해 4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이스라엘은 신와르 체포나 살해는 하마스 조직을 무너뜨리는 ‘최후의 일격’이 될 것으로 본다.

IDF에서 신와르를 추적하는 제 98사단의 단 골드푸스 준장은 지난 25일 영국 신문 익스프레스에 “약 10일 전에도 가자의 한 터널에서 그의 지하 사령부를 급습했지만, 불과 수 분 차이로 놓쳤다”며 “(마시던) 커피는 여전히 뜨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신와르가 이후 여장을 하고, 가자의 난민들 속에 섞여 공개된 장소에서 안 보이게 숨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국내 대테러 첩보기관인 신베트[샤바크]에서 3개의 신와르 추적팀을 이끄는 샬롬 벤 하난은 “우리가 불과 수분 간격으로 신와르를 놓친 적도 한 번 이상”이라며 “신와르는 지하 터널이나 시설물에 한 번에 24~36시간 밖에 머물지 않는다. 그 역시 우리가 첨단 기술을 동원해 지하 위치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단 한 번만 실수해도 당장 잡힌다는 것을 알아 계속 움직인다”고 말했다.

하난도 이 신문에 “기술과 휴민트(인적 정보)를 이용해 찾지만, 신와르가 뻔히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숨어 지낸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익스프레스는 “가자에서 활동하는 이스라엘 정보원은 추적 용의자를 만나면 악수를 하거나 피 한 방울을 채취해 즉석에서 DNA를 분석할 수 있는 기구를 갖추고 있어 용의자가 이동하기 전에 즉각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고 보도했다.

◇미국, 지표 투과 레이더 제공하며 지원

뉴욕타임스는 최근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보관리 20여 명을 인터뷰해, 미국이 지표면을 투과하는 레이더를 제공하는 등 신와르 추적을 위해 이스라엘 정보당국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priceless) 지원”을 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신와르를 제외한 다른 하마스 수뇌부를 살해하는 데 결정적인 정보를 많이 제공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10개월 넘게 억류된 미국인 8명을 구출하는 데 자원을 쏟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양국 협조는 종종 미국의 “일방적인 지원”이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초기에 통신 감청하려고, 가자에 일부러 연료 공급

이스라엘ㆍ미국 합동 추적팀은 작년 10월 전쟁 초기에만 해도 신와르의 셀룰러폰과 위성폰의 통신 신호를 감청했다. 그러나 그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었다.

작년 11월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스라엘 국내 극우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전시설 연료를 가자 지구에 반입하는 것을 허용했다. ‘인도주의적 지원’을 원하는 국제사회의 압력도 있었지만, 계속 신와르가 전자통신 라인을 사용하도록 유도해 감청하려는 의도였다.

당시만 해도, 감청을 통해서 신와르가 히브리어 매체를 정기적으로 읽고 저녁 8시에는 꼭 이스라엘 TV를 시청하는 등 신와르가 지하에서 보내는 일과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작년 10월10일 마지막으로 찍힌 하마스 지도자 아히야 신와르의 뒷모습.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테러 3일 뒤에, 가자 지구의 한 터널에서 가족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하마스의 터널 CCTV 카메라에 찍혔다./이스라엘방위군(IDF)

IDF는 지난 2월에는, 신와르가 가자 지구 남쪽 도시인 칸 유니스의 지하 터널에서 아내와 3명의 자녀를 앞세우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동영상을 확보해 공개하기도 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테러한 지 3일 뒤로, 하마스가 터널에 설치한 CCTV 카메라에 그의 뒷모습이 1분간 찍혔다. 신와르는 아디다스 슬리퍼를 신고 가방을 들었고, 어린 딸은 인형을 쥐고 있었다.

모습이 드러난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신와르는 작년 11월 이후 일체의 전자통신 사용을 중단했고, 그의 모든 메시지는 최측근 2,3명이 점조직으로 인편(人便)으로만 외부에 전달했다.

◇인편 통한 메시지 전달에 3주도 걸려

은신 이동하는 신와르가 인편으로만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카타르 도하와 이집트 카이로에서 진행되는 평화 협상은 더욱 진전을 보기 힘들게 됐다.

모든 협상 내용은 반드시 신와르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신와르의 뜻이 인편으로 협상팀에 도달하기까지는 3주도 걸린다. 과거에는 수일 걸렸는데, 하니예가 테헤란에서 살해된 뒤에는 더욱 느려졌다. 또 중간에 여러 점조직을 거치다 보니, 신와르의 메시지는 짧고 분명하다고 한다.

인편을 통한 의사소통은 오사마 빈라덴과 같은 테러조직 수괴들이 쓰던 방법이다. 그러나 빈라덴은 미군에 사살(2011년 5월)되기 전에 이미 활동이 휴면(休眠) 상태였다. 그러나 신와르는 인편으로 지금도 계속 이스라엘군에 대한 공격 지시를 내린다.

지난 1월 31일 이스라엘과 미국은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쳤다. 가자 남부 칸 유니스의 한 지하 벙커를 급습했지만, 신와르는 수일 전에 그곳을 떠났다. 서류 뭉치와 약 13억 원에 달하는 이스라엘 화폐(셰켈)를 남겼다.

최근 신와르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진행 중인 평화 협상 조건에 자신의 ‘안전 보장’을 추가했다고, 이집트 고위 관리는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최고위 참모들 모두 살해돼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하마스 지도부와 무장병력인 알카삼 여단의 최고위직 여러 명을 살해했다. 알카삼 여단의 총사령관이자 10월7일 기습 테러의 집행자였던 모하메드 데이프가 7월 13일 이스라엘 공습에 죽었고, 카타르 도하에서 활동하던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도 테헤란에서 7월 31일 폭사(爆死)했다.

올해 살해된 테러집단 하마스의 최고 수뇌부. 왼쪽부터 이스마일 하니예 정치 지도자, 모하메드 데이프 알카삼 여단 총사령관, 마르완 이사 여단 부사령관

지난 3월엔 알카삼 여단의 부(副)사령관이었던 마르완 이사도 공습을 받아 죽었다. 데이프와 이사는 신와르에 이어, 가자 하마스 조직의 넘버 투, 넘버 쓰리였다.

이제 신와르 한 명 남았다.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의 ‘모양새’라도 갖추려면 신와르를 반드시 잡거나 죽여야 한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신와르가 며칠에 한번은 터널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신와르는 지상으로 나올 때에도 포착되지 않았다.

현상금이 10만 달러였던 ‘넘버 투’ 데이프는 신와르처럼 신중하지 못했다. 터널 밖으로 나오는 간격이 더 잦았고, 규칙적이었다. 미국이 그의 위치를 족집게처럼 짚었다.

데이프가 그렇게 칸 유니스의 난민촌 밖으로 나왔을 때 이스라엘 공군이 즉각 폭격했고, 90명의 가자 난민이 함께 죽었다.

이스라엘 첩보기관 신베트의 하난은 “데이프를 살해할 때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 번 확인했고, 총리가 ‘고(go)’ 명령을 내렸다”며 “결국 신와르도 그렇게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