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족 혈통의 뉴질랜드 언어학자가 영어에 밀려 사어화되어가고 있는 자국의 토착 언어 마오리어를 되살리기 위해 한류의 전파 방식을 적극 참고하자는 주장을 펼쳐 주목받고 있다.
뉴질랜드 청소년들에게 한국 가요와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점을 참고해 마오리어로 된 대중문화 창작물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학자는 적어도 대중문화 분야에 있어서 세계언어로 확고한 지위를 가졌던 영어의 위상이 한국어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고도 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과대학 마오리어 연구소의 레이철 카아아이-마후타 박사는 최근 호주 인터넷 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마오리어를 멋지게(cool) 만들기-한류에서 배울 수 있는 언어 부흥’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마오리어는 뉴질랜드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원주민 마오리족의 토착 언어다. 원주민의 권익이 강화되면서 일선 학교에서 정식으로 가르치고 있고, 정부와 공공기관에서는 영어와 마오리어를 병기하고 있다.
하와이·사모아·쿡제도·마오리 혈통을 가진 카아아이-마후타 박사는 이런 공공 차원의 보급만으로 쇠퇴해가는 마오리어를 되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한다.
그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뉴질랜드 청소년들이 흠뻑 빠져든 한국 대중문화였다. 박사는 한국 가요에 빠져들면서 한국어에 한국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갖게 돼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한 오클랜드 출신 청소년을 만난 경험을 예로 들면서 “이 사례에서 마오리어의 되살릴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주목한 점은 “이른바 한류(Korean Wave)가 적어도 대중문화언어로서는 10대들 사이에서 영어의 영향력을 앞서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2015년 발표됐던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해 “청소년들 사이에서 영어가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반면, 마오리어는 그럴 기회가 없었고, 주로 교과서를 통해서만 학습됐다”고 했다.
청소년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유롭게 쓸 기회가 적다보니 생활 언어로 보급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진단이다. 박사는 마오리어 부활의 여부는 10대 청소년들의 일상속으로 파고드느냐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하자면, 친구끼리의 우정, 농담, 감정표현을 주고받는 비공식적인 일상 언어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사는 “사춘기 10대 청소년들은 유행을 선도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마오리어의 가치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마오리어의 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박사는 그러면서 “(영어와 달리) 뉴질랜드에는 10대 들을 위한 마오리어 소설, TV프로그램, 가요, 게임 등이 많지 않다”며 “한국어를 배운 한국 가요 팬과 만난 뒤 마오리어도 한국어처럼 유행을 만들고 팬덤을 만들어내는 10대 또래그룹을 파고들어가 부활의 물꼬를 틀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사는 “한류로 인해 대중문화에서는 영어가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모국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로서의 지휘가 도전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 가요와 드라마의 세계적 인기, 아카데미 최초의 비영어권 작품상 기생충의 사례를 언급하며 “언어는 더 이상 장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그룹 방탄소년단이 등장하는 한국어 교재 ‘BTS와 함께하는 한국어’가 시중에 출간된 점을 예로 들면서 “이는 한류의 인기로 인해 한국어 학습자가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카아아이 마후타 박사의 기고는 한국대중문화 확산을 통해 ‘소프트 파워’ 영향력을 높이려는 한국 정부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참고하자는 제언으로 끝난다. 박사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활용한 한국의 문화 수출 전략을 소개하면서 “한국이 전계에서 가장 멋진(the coolest) 문화를 만들어내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의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마오리어로 된 대중문화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마후타 박사는 “언젠가는 마오리어로 된 음악이 팝차트에 진입하고, 내 넷플릭스 드라마 목록에 마오리어 작품이 포함되며, 영화 기생충이 그랬던 것처럼 마오리어로 된 영화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