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신'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60)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다.
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각) 60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별세한 마라도나. 26일 마라도나 시신이 안치된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 주변에는 수만 명의 조문 인파가 길게 줄을 늘어섰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오전 6시 조문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밤부터 카사 로사다 앞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린 팬들도 있었다. 줄은 수㎞까지 더욱 길어졌다.
내부엔 아르헨티나 국기와 마라도나 선수시절 등번호 10번이 적힌 유니폼이 덮인 고인의 관이 놓여있고, 추모객들이 그 앞을 지나며 성호를 긋거나 힘차게 손뼉을 치기도 하고, 유니폼이나 꽃을 던지면서 키스를 날리기도 했다.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몰리다보니 사고도 발생했다. 이날 조문 마감 시간인 오후 4시 30분을 앞두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팬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면서 경찰이 제지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이 진입을 통제하려하자 성난 팬들이 돌 등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 등을 동원해 해산을 시도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부인과 함께 관저에서 헬기를 타고 카사 로사다에 도착해 조문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것뿐이다. 국민에게 이렇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얼마나 될까. 고맙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궁은 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문시간을 저녁 7시까지로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혼란은 계속됐고, 마라도나의 관이 안전상의 이유로 카사 로사다 내부의 다른 장소로 옮겨지기도 했다. 결국 마라도나 시신은 7시가 되기 전 카사 로사다를 떠나 장지인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베야 비스타 공원묘지로 운구됐다. 이 공원묘지는 먼저 세상을 떠난 마라도나의 부모가 안장된 곳이기도 하다.
카사 로사다 근처 5월 광장(플라사 데 마요)도 국기와 마라도나 유니폼을 두르고 “디에고”를 외치는 팬들로 가득 찼다. 5월 광장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팬들이 모여 환호하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마라도나는 7경기 출전 5골 5도움으로 MVP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달 만 60세를 맞았던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다. 그는 지난 3일 경막하혈종으로 뇌 수술을 받고 일주일 만인 11일 퇴원해 통원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었다. 마약과 알코올의존증 전력이 있는 마라도나는 앞서 두 차례 심장마비를 겪었는데, 세 번째로 찾아온 심장마비를 넘기지 못했다. 마라도나는 브라질 축구 황제로 불리는 펠레(80)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축구 선수로 꼽힌다. 키는 165㎝로 작지만 근육질 몸에서 뿜어내는 스피드와 힘을 바탕으로 화려한 드리블, 감각적인 슈팅, 정확한 패스 능력 등 축구 선수로서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키워나갔다.
마라도나는 198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나폴리로 이적하면서 팀을 변모시켰다. 이탈리아 리그 만년 중하위권이었던 나폴리를 1986–1987시즌에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8–1989시즌엔 당시 유럽 최고 권위의 클럽대항전이었던 유럽축구연맹(UEFA)컵까지 들어 올렸다. 1990년 나폴리에서 열린 이탈리아월드컵 준결승 때 나폴리 시민 일부가 조국 이탈리아 대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보카주니어스에서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한 뒤 은퇴했다.
이날 베야 비스타 묘지에선 유족과 가까운 지인들만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묘지 밖도 추모 인파로 가득 찼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실은 26일부터 3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곳곳엔 ‘D10S’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D10S’는 신을 뜻하는 스페인어 ‘DIOS’에 마라도나의 등번호였던 ’10′을 넣어 표기한 것이다. 시민들은 ‘축구의 신’을 이렇게 배웅했다. ‘혼자 90분을 지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선수’란 찬사를 받았던 전설은 세상을 먼저 떠난 부모님 곁에서 영원한 잠에 들었다.